새벽 5시쯤, 바람은 초속 15미터 이상, 파도 속도 역시 초속 15미터, 파도 높이는 무려 4.6미터로 거의 '폭풍' 수준의 악천후였습니다.
문제는 이 강한 파도가 아리아케호의 왼쪽 뒷편을 강하게 때리면서 시작됐습니다. 왼쪽 뒷편이 강한 충격을 받으면서 배 앞머리가 왼쪽으로 급선회를 했고, 배 왼쪽에 실렸던 화물이 오른쪽으로 밀려내려간 겁니다. 결국 오른쪽이 심하게 기울어지면서 순식간에 배는 통제불능이 됐습니다.
배는 제 갈길을 잃고 그대로 90도 엎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해안가여서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배 안의 화물이 흩어졌다는 증언도 일치하고, 배가 갑자기 기울어져 균형을 잃었고 그 때문에 피해가 커졌다는 점이 똑같습니다."
세월호 사고 당시 화물차 기사들은 급선회를 하자마자 컨테이너 같은 화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실제 사고 현장 화면을 보면 화물이 쏠려 바다로 내려오는 모습이 종종 눈에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하역업체들은 규정에 맞게 고정시켰다고 해명했지만 쏠려 내려온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고정장치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제대로 고정되지 않았다면 급선회할 때 배 안의 화물이 한쪽에 몰리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놀라운 것은 아리아케호의 사고 항적도와 세월호의 사고 항적도가 좌우 방향만 다를 뿐 너무나도 똑같다는 것입니다.
공길영 한국해양대 교수의 분석입니다. "기울어진 선박은 제대로 돌아오려는 복원성이 있습니다. 오뚝이처럼 말이죠. 복원성을 유지하려면 선박 밑바닥에 밸러스트 워터(평형수)를 채워야 하고 화물도 제대로 고정시켜야 합니다. 안 그래도 화물선에 비해 무게 중심이 높은 여객선인데 증축까지 한 상태라면 더 불안합니다. 정원은 몇 백명 늘어나서 좋아졌을지 모르지만 선박의 복원성은 급격히 나빠지게 됩니다. 또 선체를 조금 가볍게 하면 속도가 빨리 나니까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선 일부러 평형수를 안 채웠을 수도 있습니다. 화물도 제대로 고정이 안된 상태라면 운항 관리를 제대로 안하고 화를 자초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고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꼭 확인할 점이 정리됩니다. 평형수 보충 등 안전 관리를 제대로 했나, 화물은 잘 묶었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왜 '급선회'했나.
아리아케호는 악천후 탓으로 판명됐는데 '세월호의 급선회 원인'은 아직 아무 것도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한 점의 의구심도 남지 않는 정확한 조사가 진행돼야 합니다. 일본에서 일어난 '쌍둥이 사고'의 조사 과정은 물론 그들이 내놓았던 개선책을 다시 살펴보는 것도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