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말에 'ねじれ(네지레)’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모순' '뒤틀림' '어긋남' 정도로 해석 가능합니다. 요즘 일본 정치관련 기사에 곧잘 등장합니다. 특히 아베 내각에 대한 여론조사 보도에서 이 'ねじれ'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아베 정권 주요 정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인데, 내각 지지율은 여전히 50~60%를 유지하는 상황.
아베 내각 정책은 싫은데도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하는 희한한 상황을 'ねじれ'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차례로 발표되고 있는 일본 주요 언론들의 월례 여론조사 결과를 한번 보시죠.
먼저 지난 11~12일 진행된 교도통신 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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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내각을 지지한다"는 답변이 무려 59.8%입니다. 지난달 조사보다 2.9% 포인트 상승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주요정책에 대한 평가는 압도적으로 '부정적'입니다.
◆ 소비세 증세 이후 일본 경제 전망을 묻는 질문에
"불안하다" 67.5%.
◆ 원전 재가동을 골자로 한 에너지기본계획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 53.8%
◆ 집단적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해석 변경 움직임에도
"반대한다" 52.1%
◆ 무기수출의 길을 연 무기수출 3원칙 폐기에도
50.4%가 "반대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요미우리 신문이 지난 11~13일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비슷합니다.
◆ 아베노믹스의 성패를 결정할 '소비세율 인상(5%→8%)'과 관련한 조사에서,
"소비세 인상에 경제적 부담을 느낀다"는 답변이 75%에 이릅니다. 소비자 물가가 한달 만에 3.5% 뛰었다는 보도를 감안하면, 소비세 인상에 대한 일본사람들 불만이 얼마나 큰지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
그런데도 "아베 내각 지지한다"는 응답이 58%에 이릅니다.
주요정책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압도적인 상황에서도 내각 지지율은 60%에 육박하는 상황. 일본 언론들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위의 교도통신 설문 문항 중 하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아베 내각을 지지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입니다.
1위는 "다른 적당한 인물이 없어서"로 29%입니다. 지난달 조사보다 7.1%포인트 상승했습니다.
지난달 1위였던 "경제정책(아베노믹스)에 대한 기대"는 20.8%로 2위로 밀려났습니다.
아베 내각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는 것은 결국 대안부재라는 얘깁니다. 이와부치 일본대 교수는(정치학) "유권자가
아베 정권의 우경화정책에 문제를 느끼고 있지만, 대항할 정당이나 정치가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소극적인 지지를 보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몇해 전까지 집권당이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지리멸렬한 일본 민주당. 지금은 50~60대가 된 과거 노동운동, 학생운동 세력에 한정된 사민당과 공산당. 전혀 대안세력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빈자리를 오히려 '일본 유신회'같은 극우세력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 지난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 '탈원전'을 내걸고 뭉쳤던 '고이즈미-호소가와 연합'의 등장도 이런 대안부재 상황과 무관치 않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설문 문항의 기술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분석도 있습니다.
도쿄신문(일본 주요 언론가운데 가장 진보적인 매체)의 15일자 6면 박스기사가 그것인데요. 처음에 나오는 지지율 문항과 이후에 이어지는 질문들의 연관성이 별로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ねじ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관련성이 떨어지는 질문으로 구성된 기술적 결함 때문에 '맥락없는 숫자들'이 나오게 됐다는 분석입니다.
사이타마대학 마츠모토 교수는(정치의식론)
"내각 지지율에 대한 첫 문항과, 이어지는 개별정책에 대한 찬반이 '맥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개별 정책에 대한 찬반 문항에는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 여부를 적극적으로 판단할 요소가 많지 않다"는 겁니다. 마츠모토 교수는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 여부, 즉 '적극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문항으로 질문을 바꾼다면, 아베 내각 지지율은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습니다.
혹시나 해서 덧붙입니다. 아베 내각의 의외로(?) 높은 지지율이 마음에 안 들어서 쓰는 글이 아닙니다.(물론 마음에 든다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지만...) 그보다는
"여론조사 보도, 어떻게 읽는 것이 합리적일까"라는 고민의 연장선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여론조사 보도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결과로 제시된 '숫자'보다 '질문의 순서' '질문 문항의 맥락'을 더 꼼꼼하게 확인해야만 가치있는 정보를 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쓰고 보니 시청자와 독자에게 할 얘기가 아니라 동료 기자들에게 했어야 할 얘기군요. 함께 고민해 나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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