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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혁명 성지'에서 '한류 메카'가 된 후난성

[월드리포트] '혁명 성지'에서 '한류 메카'가 된 후난성

임상범 기자 doongle@sbs.co.kr

작성 2014.04.13 09:2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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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월드리포트] 혁명 성지에서 한류 메카가 된 후난성
중국을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무엇보다 "중국이 하나의 나라라는 편견부터 버리라"는 충고를 종종 듣습니다. 타이완과 특별행정구인 홍콩과 마카오를 제외하고도 31개의 시·성·자치구로 구성된 중국은 성 하나의 인구가 남북한 합친 것보다 많거나 그 면적이 한반도의 몇 배나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렇다보니 지역에 따라 다른 역사와 언어, 풍습, 기질을 가진 다양한 중국인들을 접하고 그들을 이해하는 일은 어렵지만 의미있는 작업입니다.

오늘은 먼저 '혁명의 성지'에서 '한류의 메카'로 탈바꿈한 장강(양쯔강) 중류의 후난성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동정호 남쪽에 자리해 이름 붙여진 후난(湖南)성은 춘추전국 시대에는 초(楚)나라가 있던 지역으로, 현대 중국사에서는 '국부'로 불리는 마오쩌뚱(毛澤東)과 문화 혁명으로 숙청당하기 전까지 2인자였던 전 국가주석 류사오치(劉少奇), 그리고 6.25전쟁 때 개입한 중공군 최고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의 고향으로 널리 알려진 곳입니다. 이들 외에도 1949년 건국 직후 공산당 지도부의 절반 가까이가 후난성 출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혁명가들을 배출했습니다.

마오의 고향 사오산(韶山)이 있는 샹탄(湘潭)시는 다시금 불고 있는 마오에 대한 향수에 힘입어 매년 5천만 명이 넘는 이른바 '홍색관광객'들이 찾고 있는데 이런 면에서도 후난성은 붉은 '혁명의 성지' 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샹탄 시에서 북쪽으로 1시간 남짓 올라가면 후난성의 성도인 창사(長沙)에 도달합니다.

창사 시내 한 복판에 위압적인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 데 바로 후난위성TV(이하 후난TV) 본사입니다. 일개 지방 방송이 뭐 대단할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후난TV는 중국 내 시청자 선호도 조사에서 국영인 CC-TV 채널 1을 제외하고 가장 영향력 있고 건강한 채널로 선정된 중앙방송에 버금가는 지방 방송입니다. 시청률 면에서도 여러 프로그램이 전국 단위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데 눈여겨 볼 대목은 그 대부분이 한류에 힘입은 성과라는 사실입니다. 

후난TV는 지난 2005년 드라마 '대장금'을 중국 내에서 가장 먼저 수입해 방영한 한류의 진원지이기도 합니다. 최근 들어서는 '중국판 나는 가수다'(我是歌手)', '중국판 아빠 어디가' 등 한국에서 성공한 프로그램들의 포맷을 차용한 예능프로그램을 제작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한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중국 대륙을 뒤흔들고 있는 '별에서 온 그대'의 중국판 리메이크가 후난TV에 의해 제작될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습니다. 

이처럼 '혁명의 성지' 후난성이 한류의 메카로 떠오른 배경은 무엇일까요?

먼저 역사적으로보면 일제로부터 우리나 중국이나 함께 고통 받던 20세기 초를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당시 일제를 피해 대륙을 떠돌아야 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37년부터 38년까지 창사에 임시 청사를 마련했던 적이 있습니다.

중일 전쟁 발발로 국민당과 공산당 간에 2차 국공합작이 진행 중이던 시기로 임시정부를 이끌던 김구 선생과 후난성 출신인 마오쩌뚱 간의 지지와 교분이 창사 임정의 보이지 않는 배경이 됐다는 학계의 주장도 있습니다.

후난성은 이후 줄곧 한국인과 한국에 대해 상당한 호감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분위기는 일본과의 갈등 국면 때 마다 중국에서 가장 극렬한 반일 시위를 벌이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니다.

다음으로 경제적인 배경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개혁개방에도 불구하고 연안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됐던 내륙의 후난성에 처음으로 대규모 생산 공장을 세운 게 바로 우리나라 기업이었습니다.

1998년부터 약 10년간 LG의 브라운관 공장이 가동되면서 후난성의 일자리 창출과 세수 증대에 상당한 기여를 했고 그 때 고마움이 한국에 대한 호감을 한층 더 끌어 올린 계기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공장이 있던 그 일대의 도로명을 아예 한국명으로 붙여주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우리와 비슷한 음식문화와 기질도 한 몫 했습니다. 중국 8대 요리로 꼽히는 후난의 요리를 상채(湘菜)라고 부르는데 맵고 짠 자극적인 풍미로 우리나라의 음식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후난 사람들은 김치는 물론이고 한국의 다양한 매운 음식들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혁명가들의 후예답게 기질도 호방하고 화끈한 게 어딘가 우리와 닮아 있습니다. 게다가 7천만 명이나 되는 후난 사람들의 상당수가 광둥성 등 공업지대로 나가 노동자로 일해 번 돈을 고향으로 송금하다보니 소비 성향이 웬만한 대도시 못지 않아 연예, 오락 등 문화에 대한 욕구가 높아 트렌드의 첨단에 있는 한류에 쉽게 빠져든다는 것이 중국 현지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한류의 메카로 손색없는 후난TV가 요즘 한류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는 후문입니다. 중국 공산당 서열 6위인 왕치산 중앙기율검사위 서기가 전인대 공식 석상에서 "우리는 왜 '별 그대' 같은 드라마 못 만드냐"고 한탄한 이후 중국의 방송프로그램을 관장하는 광전총국(新聞出版廣電總局)으로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자국의 프로그램 경쟁력을 높이라는 왕 서기의 주문을 한류에 대한 보복으로 해석한 겁니다. 한국에서 판권을 사오는 프로그램의 갯수와 한류 프로그램의 방영 시간을 제한하기 시작한 중앙 정부의 눈치를 뒤늦게 알아차린 후난TV에서는 어느새 '한류'가 금칙어가 됐다고 합니다.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문화적 우월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한류를 문화 침략으로 몰아가려는 중국 당국의 옹졸한 대응에 맞서는 길은 끊임없이 우수한 컨텐츠를 생산하는 길 밖에 없음을 다시금 곱씹어 봐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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