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명동사건' 이듬해인 지난 1977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재야인사들의 처리 문제를 놓고 치열한 물밑 신경전을 벌였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부설 국가안보문서관리소가 최근 공개한 기밀 해제 문건을 보면 지난 1977년 5월 26일 필립 하비브 당시 미 국무차관과 리처드 스나이더 주한 미국대사는 카터 대통령의 지시로 박 대통령을 접견하고 주한미군 철수 문제 등을 논의했습니다.
하비브 차관은 이 자리에서 주한미군 철수와 한국의 인권문제를 연계하지 않는다는 미국 정부의 방침을 확인했습니다.
이어 한국의 안보 문제와 관련해 독단적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은 물론 철군과 관련해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카터 대통령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의회에서 주한미군 철수와 후속 지원방안 등에 대한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매우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서 박 대통령에게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우회적으로 당부했습니다.
대신 한국의 인권 문제에 대해 공론화하지 않는 것은 물론 박 대통령과의 접견 내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한국 정부의 입장을 고려해 명동사건을 공개적으로 문제삼지 않되 체포된 재야 지도자들의 석방을 외교채널을 통해 압박한 셈입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명동사건이 인권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 뒤 명동사건의 용의자들은 헌법과 현행법을 위반했으므로 적법한 절차에 의해 재판을 받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압박으로 이들에 대해 관용을 베풀 경우 이들이 다시 법을 어길 수 있고 추가 체포 사태가 가능하다며 난색을 보였습니다.
다만 명동사건 용의자들에 대한 관대한 처분이 카터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일정기간이 지나 상황이 잠잠해지면 모종의 조치를 취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카터 대통령에게 한국의 인권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비브 차관을 통해 전했습니다.
이런 접견 내용은 스나이더 대사가 이튿날 국무부에 보낸 기밀 외교전문에 포함됐습니다.
'3·1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도 불리는 명동사건은 1976년 3월 1일 명동성당에서 개최된 3·1절 기념미사를 빌미로 정부가 재야 지도자들을 대거 구속한 사건입니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함석헌, 문익환, 함세웅 등 유신체제에 반대한 재야인사들이 기소돼 국제사회에서도 이슈가 됐습니다.
하비브 당시 차관이 박 전 대통령을 접견한 뒤 약 7개월만인 같은해 12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주교도소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고 이듬해 연말 특별사면으로 석방됐습니다.
국가안보문서관리소는 보고서에서 당시 카터 행정부의 핵심 동아시아 정책 가운데 하나는 주한미군 철수였다면서 직접적으로 이와 연계하진 않았지만 군부독재에 의한 인권침해도 이슈였고, 박 전 대통령은 투옥한 재야인사들의 석방을 용납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박정희-카터, 명동사건 직후 'DJ 석방' 신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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