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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안락사 이어지는 코펜하겐 동물원

[취재파일] 안락사 이어지는 코펜하겐 동물원

유덕기 기자 dkyu@sbs.co.kr

작성 2014.04.01 08:3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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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가족이 있었습니다. 각각 16살, 14살인 수사자와 암사자 부부는 새끼 두 마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코펜하겐 동물원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25일 이 사자 가족을 한꺼번에 죽였습니다. 3살짜리 수사자를 들여와야 한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동물원은 새로 올 수사자와 젊은 암컷 두마리를 엮어 새로운 사자 가족을 만들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새로 생길 가족이 지낼 공간이 없었습니다. 동물원은 늙은 사자 부부 가족을 죽여 새로운 무리를 위한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동물원은 늙은 사자 부부는 곧 죽을 것이고, 새끼 사자들은 새로 온 수사자에게 잡아먹힐 것이니 안락사 시켰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동물원은 지난달에는 ‘마리우스’라는 이름을 가진 기린을 안락사 시켰습니다. ‘근친교배 가능성’ 때문입니다. 성숙한 마리우스와 교미할 수 있는 같은 동물원 안의 암컷 기린들이 모두 마리우스와 친척관계였습니다. 근친교배는 유전병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잇따라 안락사된 동물들이 모두 건강한 상태여서 코펜하겐 동물원은 비난 세례를 받았습니다. SNS에서는 장 문을 닫으라는 비난부터 “연쇄도살자”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세계적인 비난에도 동물원은 담담합니다. 동물원이 행한 모든 안락사는 EAZA (유럽 동물원 수족관 협회:European Association of Zoos and Aquaria)의 규정을 따랐거나, 그 규정을 근거로 결정했다고 설명합니다. EAZA는 유럽 전역에서 340개 넘는 동물원이 가입된 권위 있는 협회입니다. 회원 동물원들은 EAZA의 규정에 따라 시설과 동물들을 관리합니다. 

 EAZA는 동물의 종 다양성 확보와 동물 복지를 위해 노력해 왔다고 자부하는 협회입니다. 근친교배를 지양해 유전적 질환을 줄여왔다는 겁니다. EAZA는 1828년 부터 지금까지 동물원에 수용된 동물들의 탄생과 죽음을 기록해 왔는데, 이 기록을 바탕으로 종 다양성을 확보해 왔습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코펜하겐 동물원을 포함해 EAZA 소속 동물원에 있는 700마리 가까운 기린 가운데 대부분이 마리우스의 친척입니다. EAZA는 마리우스가 암컷 기린과 교미해 새끼를 두게 된다면 근친교배로 인한 유전적 질환을 가지고 태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마리우스를 암컷들과 교미하지 못하게 떼어 놓았으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동물원의 공간과 재원은 한정돼 있습니다. 회원 동물원이 아닌 단체나 개인에게 마리우스를 넘겼다가는 서커스에 동원되는 등 학대를 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EAZA는 안락사를 종 다양성과 동물의 복지를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EAZA 회원 동물원에서는 한해 적어도 3천마리 넘는 동물이 질병이나 근친교배 가능성, 그리고 공간 부족 등의 이유로 안락사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EAZA도 약점이 있습니다. 영국의 동물보호단체인 CAPS(사로잡힌 동물보호협회 :the Captive Animals' Protection Society)의 임원 리즈 타이슨이 미국의 CNN방송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EAZA는 회원 동물원들의 백사자 교배를 알았지만 어떠한 제재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온몸이 흰털로 덮인 백사자는 근친교배에 의한 희귀 돌연변이입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EAZA는 백사자끼리의 교배를 금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영국의 웨스트미들랜드 사파리 공원과 파라다이스 야생공원이 백사자를 교배시켰습니다. 

EAZA와 코펜하겐 동물원이 마리우스와 사자의 생존을 위해 노력을 다했느냐는 의문도 남습니다. 영국의 BBC방송은 코펜하겐 동물원이 마리우스의 안락사를 예고하자 영국의 요크셔 야생공원을 포함해 유럽 동물원들 몇 곳이 코펜하겐 동물원측에 마리우스를 입양하겠다는 제의를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코펜하겐 동물원은 근친교배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마리우스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요크셔 공원은 수컷 기린이 들어올 공간이 충분했습니다. 요크셔 공원 관계자는 코펜하겐 동물원의 결정에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CAPS의 타이슨은 이 모든 것을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백사자는 쉽게 볼 수 있는 기린이나 사자와 달리 관람객들로부터 인기가 많은 동물이라고 말입니다. 마리우스나 사자들이 관람객들로부터 인기 있는 동물이었다면 쉽게 안락사 시킬 수 없었을 겁니다. 근친교배도 눈감아줬을지 모릅니다. 공간을 새로 만들어서라도 동물원들은 서로 마리우스와 사자를 데려가려 했을 겁니다.  

동물이 새로 태어나도록 방치해 두는 것도 문제입니다. 동물원의 공간은 한정돼 있는데도 말입니다. 뻔히 친족교배 하게될  마리우스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늙은 사자 부부 사이에서 새끼 사자들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굳이 안락사를 시킬 필요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 동물의 탄생은 제어되지 않고 있습니다. 자연 그대로 번식을 방치한 것인지, 관람객들로부터 인기 있는 어린 동물들을 보유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인지는 동물원이 입을 열지 않는 한 추측만 있을 뿐입니다.

여기까지가 지난 달 있었던 마리우스 안락사 이후 코펜하겐 동물원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들 입니다. EAZA와 CAPS의 공격과 수비를 보다보면 근원적인 질문들이 고개를 내밉니다. 종 다양성을 이유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동물을 죽여도 되는 건가? 사람에게 그런 권리가 있는가? 라는 의문입니다. 제한된 공간 속에 동물을 몰아넣어 근친교배 환경을 만든 것 역시 사람 아닌가라는 질문도 이어집니다. 이는 2백여 년 전부터 우리의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장소가 되어버린 동물원이라는 존재가 온당한가라는 근원적인 논쟁과 맞닿아 있기도 합니다. 코펜하겐 동물원의 안락사가 계속해서 언론으로부터 관심을 받는 이유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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