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입장에서도 이번 유해 송환은 의미가 작지 않습니다. 한국과의 과거 앙금을 완전히 털어낸다는 인장입니다. 이제 더이상 6.25 전쟁을 통해 서로간에 형성된 빚은 완전히 없어졌다는 확인서입니다. 무엇보다 한국과 한발 더 다가섰다는 뜻이 큽니다.
동아시아에서 일본과의 패권 경쟁, 세계 양강으로서 미국과의 신경전을 벌이면서 중국에게 한국은 액면가 이상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한국이 미·일의 동맹체제에 공고하게 묶여 있을 경우 중국으로서는 매우 갑갑한 형국입니다. 한국이 중국의 편을 들어주지 않더라도 상관 없습니다. 중국과 미·일의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중립적 위치로 갈수록 2배의 이익입니다. 그만큼 상대방은 마이너스고 중국에게는 플러스입니다.
좀 더 본격적이고 공식적인 취재 요청이 필요한가? 그래서 우리나라 외교부와 국방부를 통해서 더욱 강력한 취재 요청을 전달했습니다. 뜻 깊은 행사이니 만큼 유해를 인도받은 중국측이 어떻게 안치하는지 취재해 한국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다고요. 역시 한참 대답이 없더니 결국 '안된다'였습니다.
그것으로 포기하면 대한민국 기자가 아니죠. 중국 외교부와 상당한 '관시(인맥)'가 있는 분께 부탁을 했습니다. 공식적으로 어려우면 비공식적인 취재라도 하게 해달라. 처음에는 이 인사도 "좋은 행사인데 되지 않겠어. 걱정하지마."라며 호기롭게 부탁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난감한 목소리로 '도저히 어렵겠다'며 미안하다는 말만 되돌려줬습니다.
마지막으로 중국중앙방송, CC TV측에 청을 넣었습니다. 해외 매체의 취재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중국 국내 매체의 취재 결과를 받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선양 혁명열사릉에 유해가 안치되는 모습을 자막 없는 깨끗한 화면으로 제공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의외로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찍어오는 대로 송출하겠다고 선선히 대답했습니다. 부정적인 대답만 듣는데 이골이 나있던 차라 거의 감동 받을 지경이었습니다.
실제 당일 오후 일찍 촬영 화면을 보내줬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한국군이 중국군에 유해를 건네주는 한국에서 찍은 화면이었습니다. 급하게 CC TV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보내준 화면은 우리도 촬영한 내용이다. 아니 우리가 찍은 것이 더 많다. 진짜 필요한 것은 중국 선양에서 안치되는 모습이다. 그 화면은 언제 보내주나?
대답이 요상했습니다. 선양 혁명열사릉에서 취재와 촬영을 마쳤다는 연락을 현장 취재팀으로부터 받았다. 다만 보내준 화면을 사용할지를 놓고 상부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방송을 한다는 결정이 나오면 바로 화면을 보내주겠다. 그리고는 감감 무소식이었습니다. 이후에는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선양 혁명열사릉에서 촬영한 화면은 쓰지 말라는 지시가 나왔나 봅니다.
중국 정부를 잘 아는 분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상당히 최고위층에서 나온 결정일 것이라고.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말입니다.
가장 큰 부분은 역시 북한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중국군 유해는 사실상 북한을 도와 우리나라와 싸우다 숨진 군인들입니다. 그런 군인의 유해까지 주고 받는 모습을 북한이 절대 곱게 볼 리 없다는 것이죠. 실제 북한은 중국과 우리나라가 수교를 맺는 모습을 보면서 중국의 반대마저 물리치고 핵개발에 들어갔습니다. 그토록 우리와 중국의 접근을 싫어합니다.
예전보다는 많이 약해졌지만 중국은 항상 우리와 북한에 대해 계량적 균형을 맞추려고 합니다. 즉 우리에게서 유해 송환을 받았으면 북한과도 그와 비슷한 교류가 있어야 합니다. (실제 유해 송환 당일 중국 정부는 북한내 중국군 묘역을 대규모로 정비하고 개선할 것이라는 발표를 했습니다. 한국과의 유해 송환에 맞춰 북한과도 비슷한 교류를 한 셈입니다.) 그렇다고 북한에 묻혀 있는 11만의 중국군 유해를 돌려받을 수도 없습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이번 일을 조용히 처리하고 싶은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해외에 파병됐던 중국군의 유해를 대규모로 송환 받는 첫 사례라는 점도 부담입니다. 중국은 과거 해외에 파병돼서 숨진 군인의 유해는 그 나라에 안장하는게 원칙이었습니다. 미국 등 서방이나 우리나라의 개념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심지어는 마오저뚱 주석의 큰아들인 마오안잉 역시 6.25전쟁 당시 숨졌던 북한 땅에 묻혀 있습니다.
당시 중국 군당국에서는 마오 주석의 큰아들인 만큼 유해를 중국으로 들여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마오 주석이 강하게 반대했다고 합니다. '내 아들만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만큼 이번 유해 송환은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중국 군당국의 입장에서는 예외를 널리 알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항미원조' 전쟁 자체를 이슈화 하고 싶어하지 않는 점도 걸림돌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6.25전쟁은 '잊혀진 전쟁'입니다. 중국 역시 '항미원조 전쟁'을 웬만해서는 이슈화하지 않습니다. 승부가 나지 않아 서로 자랑스러울 것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고, 괜히 미국과의 껄끄러운 옛 기억을 끌어내기 싫어서도 그렇습니다. 따라서 이번 유해 송환 역시 결국 항미 원조 전쟁의 부산물인 만큼 대대적인 보도를 할 유인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유해 송환 요구가 비등할까봐 걱정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해외에서 송환되지 않은 채 그 나라에 묻힌 중국군의 유해가 십수만에 이릅니다. 세계 각지에 있는 이들의 유해를 해당 가족들이 왜 송환받고 싶어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유해 송환이 그런 유족들의 바람에 기름을 붓는 것 아닐지 걱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은 한식 이전에 송환을 끝내자고 우리에게 제안해놓고 정작 유해를 안장할 장소를 다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선양의 매서운 겨울을 무릅쓰고 공사를 하다보니 얼어붙은 땅을 파고 강추위속에서 건물을 짓기 어려워서 그랬다는 전언입니다. 어떻든 중국 입장에서는 완전히 공사가 끝나지 않은 모습을 전인민, 나아가 전세계에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해석됩니다.
100%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그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각 나라마다 관행이나 관례, 집중적으로 고려하는 점은 다 다른 법이니까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가 공들여 보낸 중국군의 유해가 정작 중국에서는 어떻게 대접 받고, 어떻게 안장됐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됐습니다. (한 방송사에 나온 능원 모습은 기존 묘역을 촬영한 것입니다. 이번에 새로 조성되는 묘역의 모습이 그와 같을 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묘역 조성 공사가 완전히 끝나 말끔하게 단장된 뒤 한국 등 해외 언론에 공개할지 지켜볼 일입니다.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