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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회의원 217명은 부적격 방통위원을 추천한 걸까?

[취재파일] 국회의원 217명은 부적격 방통위원을 추천한 걸까?

김수형 기자 sean@sbs.co.kr

작성 2014.03.28 14:03 수정 2014.03.28 18:5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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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량 상임위 미방위에 떨어진 ‘원자탄’

 바람 잘 날 없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 다시 한 번 큰 일이 일어났습니다.
법안도 전혀 통과 안 되고, 불량 상임위라는 놀림을 하도 많이 받아서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을만한데, 이번 사안은 차원이 달라 보입니다. 워낙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여야 모두 당황하고 있고, 국회 사무처도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제대로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법제처와 국회입법조사처가 같은 사안에 대해서 정반대의 얘기를 하고 있어 기자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방통위 상임위원으로 야당이 추천했던 고삼석 후보자에 대한 자격 시비 논란입니다. 어떤 분은 이번 사건을 불량 상임위인 미방위에 떨어진 원자탄이라고 표현하더군요.

■ 15년 방송·통신 분야 경력 논란…법제처 "자격 요건 미달"

 이번 사건은 법제처에서 고삼석 후보자의 경력이 방통위원의 자격 요건에 해당되는지 유권해석 결과가 나오면서 벌어졌습니다. 방통위는 민주당이 고 후보자를 추천하기 전 국내 대형 로펌들에 자격에 대한 법률 자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회 보좌관, 청와대 행정관, 대학 겸임 교수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고 후보자에 대해 로펌들의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방통위원이 되기 위해서는 방송·통신 업계에 15년 이상 몸담은 경력이 있어야 하는데, 고 후보자의 경력이 이에 해당되느냐 논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방통위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법률 유권해석 권한이 있는 법제처에 공식 질의를 했고, 법제처는 고 후보자가 삼임위원으로 부적격이라고 판정했습니다.

 내용을 좀 들어다보겠습니다. 법제처는 고 후보자가 근무한 미디어미래연구소 경력 5년 4개월만 방송통신 업무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국회의원 보좌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 중앙대 객원교수 경력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방통위 설치법 5조1항4호에 보면 <방송·언론 또는 정보통신 관련 단체나 기관의 대표자 또는 임직원의 직에서 15년 이상 있거나 있었던 자>로 돼 있는데, 미디어연구소 경력 말고는 이 조항에 넣을게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여기서 ‘관련 단체’가 뭐냐는 게 쟁점입니다. 법제처는 국회나 청와대 홍보수석실을 방송, 언론 또는 정보통신 관련 단체로 볼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야당은 이 경력을 인정해 고 후보자가 방송, 언론 정보통신 관련 단체에 18년 11개월 근무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제처의 이런 해석을 근거로 방통위는 지난 24일 국회에 다른 방통위원을 추천해달라고 서류를 보냈습니다.

■ 엇갈린 해석…국회입법조사처 "국회 해석이 우선 존중돼야"

 하지만 어제(27일) 입법조사처는 정반대의 해석을 내놨습니다. 방통위는 정치적 중립성과 소수자를 보호하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야당 몫 추천을 명확하게 정해놨다며, 야당이 추천한 사람이 결격 사유에 해당되는 사람만 아니면 야당에 추천권한이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결격 사유'라는 것은 정당에 소속된 사람이거나, 임명 3년 전까지 언론사나 통신사에 근무했던 사람 등을 의미합니다. 고 후보자는 이런 결격 사유가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방송 통신 관련 단체 경력에 청와대와 국회 경력을 넣을지는 추천당사자인 국회의 해석이 우선 존중돼야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게다가 대통령은 이 추천에 구속된다고도 해석해놨습니다. 야당은 고 후보자의 방송, 통신 분야 경력이 충분히 15년을 넘는다고 봤기 때문에 국회 입법조사처의 판단으로는 대통령이 임명을 거부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겁니다.

■ 박근혜 대통령의 '고삼석 임명 거부'…가늠하기 어려운 정치적 파장

 해외 출장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신임 방통위원 임명 재가를 하면서 고삼석 후보자만 거부했습니다. 아직까지 정확한 이유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법률적인 문제가 있다고 논란이 일고 있는 만큼 야당이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유권해석 권한이 있는 법제처의 의사를 존중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런데 국회 입장에서 보면 참 난감한 일입니다. 입법부가 표결까지 마친 인사 추천안을 법제처의 의견을 수용해 기존 상임위원 후보자를 철회하고 다시 추천해야 하는 ‘대공사’가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입법부의 표결을 행정부 소속인 법제처의 판단으로 스스로 번복하게 되면, 국회가 생기고 처음 있는 일이 됩니다.

 여기서 국회 표결 과정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은 고삼석 방통위원 후보자에 대해서 무려 217명이 동의해 추천안을 가결했습니다. 240명이 국회에 나왔으니까 무려 90.4%에 달하는 압도적인 찬성표였습니다. 당연히 야당 의원들은 물론 여당 의원들 대다수가 찬성 했습니다. 개개의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이 그것도 대부분 동의한 인사청문안을 번복하려면 그게 걸맞은 명분과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 왜 표결이 다 끝난 이후에 뒤늦게 자격 시비를 거는 것일까

 방통위가 국회 표결이 지난 이후에 뒤늦게 자격 시비를 거는 이유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방통위는 시민단체의 민원이 있어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요청했다고 하는데, 답변이 궁색합니다. 후보자의 경력 사항이 변하는 것도 아니고, 방통위가 의지만 있었다면, 국회에 인사추천 동의안이 상정되기 전에 법률적 판단을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표결이 다 지난 이후 재추천을 요구했다는 거는 담당 부처로서 책임을 소홀히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게다가 국회 상황이 오해 받기 딱 좋아 보입니다. 바로 원자력방호방재법이 진통 끝에 결국 처리가 무산된 직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라망신이라는 말까지 해가며, 대통령이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원자력방호방재법을 처리하기 위해 여당이 백방으로 노력하기는 했지만, 야당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하고 있고, 여당은 야당이 해도 너무 한다며 원망하고 있습니다. 야당도 뒤늦은 주장으로 선거를 앞두고 발목 잡는 이미지를 덧씌우려한다고 화가 나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야당 추천 방통위원에 대한 문제제기는 법 통과 무산 때문에 벌어진 일종의 정치적 보복 아니냐는 오해를 살 여지가 있습니다.

■ 여당 의원들은 찬성표를 던지기 전에 왜 문제제기를 못했나

 여야 국회의원 217명의 표는 결코 작은 의미가 아닙니다. 국회의원이 찬성표를 던진다는 것은 정치적인 책임을 진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후보자에 대한 검증은 물론 법률적인 중대한 하자가 있다면 여당 국회의원이라도 사전에 문제제기를 해 안건 상정을 막든가, 아니면 적극적인 반대를 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표결을 통해서 국회는 후보자에 대해서 검증과 동의를 끝냈다는 의사 표시를 한 것입니다.

■ '고삼석 사태'…여야의 선택은 뭘까

 야당은 고삼석 후보자를 다시 추천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자격에 하자가 없다고 판단하는데다, 방통위에서 재추천 요구를 한다고 해서 그 의견을 순순히 받아들여, 다른 후보자를 내세운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미 행정부와 입법부의 의견도 갈리는 사안을 원내지도부에서 수용하기가 쉽지 않아보입니다. 오히려 이걸 계기로 결사항전을 택할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야당이 초강수를 둔다면 4월 국회에서도 기초연금법 등 다른 상임위에까지 걸려있는 법안은 물론 원자력방호법, 단말기 유통법 등 시급한 민생 법안도 줄줄이 멈춰 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당장 다음달 1일로 잡힌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청문회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대통령이 귀국하고 임명 재가 거부의 자세한 이유가 밝혀지면 알려질 것으로 보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최악의 국회 상황까지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 결국 정치의 문제…원내지도부는 ‘협상 최약체’라는 오명을 벗어야

 고삼석 후보자 문제는 시작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정치적인 사안'으로 보입니다. 법률적인 사실관계를 떠나서 국회가 법제처의 의견을 수용할지를 판단하는 것부터 정치적인 결단입니다. 그 이후에 야당이 상임위원 재추천을 과연 할 건지도 매 순간순간 정치적인 판단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여야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을 거 같다고 판단됩니다. 방통위의 업무 공백을 최소화한다는 기본 원칙 위에 시급한 현안에 대해서는 한발씩 물러서는 전략적 협상이 필요합니다. 대통령이 해외 출장 중이기 때문에 오해가 있는 부분이나, 법률적으로 잘못 전달된 부분이 있다면 여야가 협상을 통해 해답을 내놓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6월 지방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도 극단적으로 나가는 것보다는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파행으로 얼룩진 국회로 역대 협상 최약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여야 원내지도부는 지혜로운 협상 결과를 내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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