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김중수 한은 총재의 'How to minimize mistakes'

[취재파일] 김중수 한은 총재의 'How to minimize mistakes'
김중수 총재가 이달 말 한국은행을 떠난다. 언론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비춰진 김총재의 모습은 백발에 인자함을 갖춘 노교수의 모습이다. 그러나 김중수 총재는 명석함과 특유의 뚝심, 신념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추진력으로 가는 곳마다 큰 파장을 일으켰다. 신임 이주열 한은 총재가 김중수식 인사를 비판하고 나설 정도로 한국은행 안에서도 4년 동안 개혁의 채찍을 놓지 않았다. 그의 임기 종료와 함께 공과에 대한 이야기가 벌써 흘러나온다. 파리 특파원으로 근무할 때 경제수석을 거쳐 OECD 대사로 부임한 김총재와 교분을 쌓을 기회가 있었다. 가까이서 본 김중수 총재의 모습을 돌이켜보고자 한다. 김총재는 개성이 강한 만큼 적도 많아 이 글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 소개하는 몇몇 에피소드가 인간 김중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김중수 연합 500
#에피소드1. '왜 주말에 이메일을 안 열어보나?'…OECD 공무원들 대해부

끈적한 샹송과 포도주가 말해 주듯 파리는 조금 느리고 느슨한 도시다. 그런 파리에 와서 김중수 대사는 회오리 바람을 일으켰다. 각 부처에서 OECD에 파견나온 공무원들은 3년 임기를 재충전의 기회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외교 현안이 없는데다 서로 출신 부처가 다르다보니 간섭하거나 통제받을 일도 없다. 수장인 대사도 굳이 그들의 자유를 빼앗으려 들지 않았고, 이런 전통은 OECD 파견직을 황금 보직으로 만들어 놓았다. 김중수 대사는 부임하자마자 이런 OECD 대표부를 개혁하기로 마음먹는다. 금요일 오후면 슬그머니 사무실을 빠져나가 여행갈 채비를 하는 공무원들을 모질게 다그쳤다. 대사가 금요일 오후에 이메일을 통해 업무 지시를 했는데 다음주 월요일에서야 이메일을 열어보는 사태가 반복되자 '국민 세금으로 녹을 먹는 공무원의 자격이 없다'며 호통쳤다. OECD 각 세션에서 열리는 세미나, 포럼에 반드시 참석해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고, 외국어 실력이 부족한 공무원들은 자료 해석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뒤 또 한번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김중수 대사가 OECD 대표부 파견 공무원들의 역할과 개인별 장단점, 개선해야 할 점을 담은 보고서를 직접 작성해 회람시킨 것이다. 내용이 궁금해 가까운 외교관에게 부탁해 문서를 구해 보았다. 수십 페이지 짜리 보고서는 논문이나 다름 없었다. 내용 사이사이에 각주까지 달린 OECD 대표부 대해부 논문이었다. 김중수 대사의 카리스마에 포도주에 젖어 있던 파리의 공무원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한국에서 파견나오기로 예정돼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소문이 퍼지기에 이르렀다. 김대사가 한국은행의 수장을 맡게 됐을때 그곳에서 근무하는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너희들 죽었다고 복창해라. 불도저같은 지휘관이 간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은행에 들어서자마자 김총재는 개혁의 시동을 걸었고, 수십년 만에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에 한은 내부를 뒤흔들어 놓았다.

#에피소드2. 축의금 200유로를 거절한 김 대사

김중수 대사는 파리 재임 기간 중 외동딸을 시집보냈다. 공직에 앉아 경사를 알리기 부담스러웠는지 몇 안되는 특파원들에게도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파리 특파원 간사를 맡고 있던 나는 소식을 전해 듣고 타사 특파원들과 논의해 최소한의 축의를 전달하기로 했다. 한사람당 30유로씩 거두어 OECD 대표부에 전달했다. 김 대사는 한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예고도 없이 우리 집에 찾아 왔다. 늦은 밤이라 집 앞 브라서리에서 맥주 한잔 하기로 하고 나갔더니 그는 손에 흰 봉투를 들고 서 있었다. 대뜸 내 손을 잡으며 성의만 받겠으니 축의금을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옥신각신 시작된 대화는 자정을 넘어까지 계속되었다. 김 대사는 축의금 200유로를 받을 수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공직자로서 자신의 위치, 혼사를 치르기로 한 방식에 어긋난다는 점, 축의금을 내지 않은 다른 사람들과의 형평성... 경제학자 아니랄까봐 정말 치밀한 논리로 나를 굴복시키고 봉투를 되돌렸다. 그러면서 사람 사는 이야기가 이어졌고 일 밖에 모를 것 같던 김 대사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매사에 논리와 명분을 앞세우는 김 대사의 스타일이 딸의 혼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김중수
#에피소드 3. 골프는 How to minimize mistakes!

사람을 질리게 할 정도로 분석하는 습관은 골프장에서도 유효했다. 해외생활이 대개 그렇듯 마땅한 사교의 장이 없는 파리에서 우리 돈 5~6만원이면 즐길 수 있는 골프는 훌륭한 친교의 수단이다. 파리 근교에서 김중수 대사와 몇차례 라운딩을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무릎이 안 좋아 압박 붕대를 두르고 나온 김 대사는 후반으로 갈수록 걸음걸이가 힘들어 보였다. 캐디도 없고 골프백도 수레에 실어 직접 끌어야 하는 환경이라 힘에 부쳐 보였지만 플레이에 최선을 다했다. 자기 버릇 남 주지 못한다고 했던가... 김 대사는 골프장에 나와서도 관찰하고 연구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자신의 샷이 끝나면 동반자의 스윙을 면밀히 들여다 봤다. 정확성은 좀 떨어지지만 장타자 소리를 듣는 내 스윙도 분석의 대상이었다. 라운딩이 끝나고 클럽하우스 식사 자리에서 그의 강의가 시작된다. '조 특파원이 장타를 칠 수 있는 이유는 백스윙보다 길게 뻗어주는 피니시에 있다...' 친절하게 동반자 3명의 장단점을 분석해 준 뒤에는 골프에 대한 일반론 강의로 들어간다. 골프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잘 칠 수 있는가, 골퍼의 멘탈은 어떻게 변하나... 그 중에 아직도 잊어버리지 않고 있는 말이 있다. '골프는 How to minimize mistakes 이다'. 실수를 최소화 하는 것, 그것이 골프에서 이기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고 보니 다리가 아픈 김 대사는 18홀 내내 자신의 핸디캡을 감안하며 실수를 줄이는 게임을 펼쳐 90대 스코어를 만들어 냈다.

김중수 총재는 OECD 대사가 자신의 14번째 직장이라고 했다. 15번째 직장인 한국은행에서 김 총재는 4년 중 1년 가까이 해외출장을 다니며 한국은행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철밥통을 깨겠다며 가장 보수적인 조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한은의 조직, 인사 개혁을 추진했다. 주요 보직에 발탁인사를 강행하면서 내부의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러나 기준금리 운용 방식 등을 살펴보면 섣부른 시장 개입보다는 신중한 행보를 견지했다. 글로벌 경제위기 직후인 지난 2010년 국제 금융시장 불안과 국내 물가상승 압력이 커졌을 때 기준금리를 선제적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시각이 많았다. 그런데도 김 총재는 금리를 동결해 비판에 직면했다. 경제 정책은 항상 상대성을 갖고 있지만 큰 흐름을 보면 그의 정책 기조는 골프의 원리와 같은 'How to minimize mistakes'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말대로 재임기간 4년의 공과는 훗날 정확히평가될 것이다. 이제 야인으로 돌아가는 그가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경제의 훌륭한 조언자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