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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그런 남자'vs'그런 여자'…김치녀 논란 음악으로

[취재파일] '그런 남자'vs'그런 여자'…김치녀 논란 음악으로
                                                   <브로 '그런 남자' 中>
 
'한번 눈길만 주고 갔는데 말없이 원하던 선물을 안겨주는 남자'
'훌쩍 떠나고 싶을 때 너를 태워 바다로 쏘는 그런 남자'
'키가 크고 재벌 2세는 아니지만 180은 되면서 연봉 6천인 남자'
....
 이런 남자가 실제 있을까요...? (아차, 전 여자입니다)
 신인가수 브로의 '그런 남자'란 노래입니다. '하나만 해도 훌륭한 남자다'라면서 듣고 있는데 갑자기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그런 남자가 미쳤다고 너를 만나냐 너도 양심이 있을것 아니냐'
'뭔가 애매한놈들이 자꾸 꼬인다는건 너도 애매하다는 얘기야'
'약을 먹었니 미쳤다고 너를 만나냐 나도 인생을 좀 즐겨봐야지'
....
 그렇죠, 전 현실적입니다. 그런 남자가 만약 있다면, 그 남자 자신과 인류를 위해, 저보다 훌륭한 여자랑 만나고 싶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재밌기도 하고 아이디어가 파격적이다 싶어, 피식 웃어 넘겼습니다. 브로의 뮤직비디오는 절절한 보컬의 발라드곡에 카카오톡 대화 메시지가 곧 가사로, 그 무엇보다 가사에 집중하게끔 만들었습니다. 지난주 발표 직후 인터넷에서 크게 인기를 끌더니 2,30대 남성들의 지지를 받으며 음원차트 정상에 올라있더군요.

 그런데 한번 더 보니 살짝 기분이 나쁘려고 합니다. 가사를 다시 보면 '아무 능력도 없는 여자들이 모든걸 가진 왕자님만 원한다'는 시각이 깔려있습니다. 얼마 전 온라인 상에서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과도하게 의존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김치녀'라는 말이 논란이 됐었는데, 그 김치녀를 염두에 두고 부른 노래인게 분명합니다. 김치녀를 비꼬는 내용인데,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시각으로 만들어진 노래라는 게 더욱 그렇습니다. 가사가 워낙 적나라하다보니 가수가 어떤 해명을 해도 와닿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남자친구가 '키 180에 연봉 6천인 남자'면, 좋죠. 관심을 보인 물건에 '말없이 선물을 안겨주는 남자'면, 당연히 좋죠. 그렇다고 그런 남자만을 기다리거나, 남자가 당연히 그래야 한다며, 당당하게 얘기하는 여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연애를 마치 로또(?)처럼 생각하는 여자들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노래는 그냥 노래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웃어 넘길 수 있습니다.  

김치녀 취파_265
                                                <벨로체 '그런 여자' 中>
 
 그런데 어제 오전 '그런 여자'라는 곡이 나왔습니다. '그런 남자'에 맞서는, 반박하는 노래입니다. 똑같은 멜로디의 발라드 곡으로 여성그룹 벨로체가 가사만 바꿔 불렀습니다. 뮤직비디오 형식도 똑같습니다. '그런 남자'의 대화 상대 아이디가 'chanNel', 즉 명품을 좋아하는 여자였다면, '그런 여자'의 상대는 'Banz', 외제차에 푹 빠진 남자입니다. '함께 맛있는 밥을 먹어도 가끔 말없이 계산하는 여자', '기념일을 지나쳐도 환하게 웃으며 모든 걸 이해해주는', '성형하지 않아도 볼륨감이 넘치는 너를 위한 에어백을 소유한 여자', '성격좋고 강남미인은 아니지만 건전한 일 하면서 내조 잘하는 여자'....그렇죠, 그런 여자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외모 지상주의에 빠진 남자들의 환상은 '미쳤다고 너를 만나냐'라는 가사로 일갈해버렸습니다. 남자들도, 물론 기분 나쁠겁니다.

 그런 여자가 나오면서 그런 남자는 더욱 탄력을 받아 오전부터 몇몇 음원 사이트의 실시간 음원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가수 브로는 '이렇게 인기를 끌 줄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 얼굴없는 가수 컨셉이다 보니 전화로 통화했습니다. 재밌게 해보자, 노래는 진지하게 해보자, 이런 전략이 맞아 떨어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남자들에게는 목 끝까지 차오르지만 여성에 대한 불만 같은게 있다, 여자에게 잘 해주지 못하면 쪼잔한 남자로 보이기 쉽다, 가사의 내용은 거의 픽션이지만, 우리 주변에 흔한 얘기다' 곡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보컬은 더욱 절절했나 봅니다.

 신인 가수의 노이즈 마케팅일 수도,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에 꼭 담아보고 싶던 솔직한 한마디였을 수도 있습니다. 벨로체의 그런 여자도 역시 재밌다는 반응도 있지만, 관심받기 위한 몸부림이란 시각도 만만치 않습니다. 가사가 원색적이고 여기에 격하게 반응하는 네티즌들의 댓글 덕분에, 그냥 재미만 볼 수 있는 수준은 지난 것 같습니다. 

 오후 들어 가수 이선희 씨가 데뷔 30주년을 맞아 발표한 15집의 타이틀 곡 '그중에 그대를 만나'가 다른 몇몇 음원사이트 실시간 음원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오전 내내 왠지 모를 씁쓸함에 이 소식이 반가운 건 저 뿐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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