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월드리포트] 고분고분 쫓겨나지 않자 불 질러…中 '술렁'

[월드리포트] 고분고분 쫓겨나지 않자 불 질러…中 '술렁'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절을 배경으로 합니다. 농기계의 발명은 농장의 대형화, 기업화를 부릅니다. 그 땅에서 땀과 정성을 심어 경작하던 중소 농민들은 줄줄이 쫓겨납니다.
방화4
너도 나도 젖과 꿀이 흐른다는 캘리포니아로 몰려가지만 낙원의 모습을 한 지옥일 뿐입니다. 땅을 빼앗긴 농민들은 날품팔이 일꾼으로 전락합니다. 이들에 대한 차별과 착취를 보다 못한 전직 목사 케이시가 파업을 주도했다가 농장측 고용인에 의해 머리가 으깨져 죽습니다. 땅을 기반으로 자신의 삶을 건설하고 영위하던 '인간'은 산업화의 거대한 흐름 속에 하찮은 일개 '부품'으로 변해 소모되고 버려집니다. 계속 '인간'이기를 고집하다가는 케이시 목사와 같이 제거됩니다.

작가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묘사된 철거 현장은 우리의 머리와 가슴을 벼락 같이 후려칩니다. 온 식구가 아침 밥상에 둘러앉은 자리에 갑자기 굴삭기가 지붕과 벽을 무너뜨리며 쳐들어옵니다. 한 가족이 인생을 꾸리고 행복을 꿈꾸던 공간은 돈 앞에서 한낱 치워져야할 쓰레기가 되고 맙니다. 천금보다 귀하다는 인간의 존엄성은 자본의 논리 구조 속에서는 검불 같이 가볍습니다. 돈과 힘이 없는 '인간'들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비명과 신음을 내뿜다가 스러져갑니다.

중국 산둥성 핑두시에서 지난 21일 새벽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임시 가건물 한 곳에 불이 나 머물던 지역 농민 1명이 숨지고 3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자신이 농사를 짓던 땅이 수용되는데 반대해 그 땅에서 농성을 벌이던 중이었습니다. 불은 누군가 일부러 지른 것이었습니다. 중국 사회가 술렁거렸습니다. 공안 당국은 철저한 수사를 약속했습니다.

4일 밤낮을 강도 높게 조사한 끝에 중국 경찰은 어제(26일) 짧은 중간 수사결과를 내놨습니다. 방화와 관련해 7명의 용의자를 체포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지역 주민 이모씨 등 4명은 실제 불을 놓은 혐의입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방화를 사주한 혐의로 부동산개발회사 대표와 해당 지역 관청의 주임, 이들의 지시를 전달한 연락책이 포함됐습니다.
방화3
신문과 방송,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이들을 상대로 정확한 사건의 자초지종을 조사하고 있다고만 전했습니다. 그래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마을은 부동산 개발업체와 지역 관청의 주도로 개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땅을 수용하는 중이었습니다. 토지 수용비와 농작물에 대한 보상비도 책정됐습니다. 일부 농민은 이미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반대하는 농민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문제의 땅에 천막을 치고 농성 겸 감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때문에 사업 진척에 방해를 받게 되자 천막에 불을 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이들을 죽이려 했는지, 겁만 주려 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 농민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3명은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분노의 포도'에 케이시 목사처럼. '난쟁이까 쏘아올린 작은 공'의 난쟁이처럼 '제거'된 셈입니다.

혹자는 그렇게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중국이든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는 것은 산업 구조의 변화와 발전 과정에 불가피하게 벌어지는 희생이고 불운일 뿐이라고요. 애초에 합법적 절차에 따른 정당한 토지 수용에 대해 불법적인 방법으로 항거한 책임도 없지 않다고요. 과연 그런가요?

농민들에게 자신의 농토는 하나의 세계입니다. 그 안에서 삶을 계획하고, 꾸리고, 좌절하고, 재기하고, 힘을 얻어왔습니다. 그런 세계를 갑자기 허물어 버린 뒤 돈 몇푼을 쥐어주고 다른 세계를 새로 만들라고 합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보상금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이들이 천지개벽하는 아픔을 극복하고 새로 자신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법에 따라 정당하게 수용했다면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주민을 불을 질러 쫓아내는 것은 너무 잔인합니다. 자본주의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추악한 괴물이라는 욕을 먹게 되는 이유입니다.

방화2
이런 일은 '중국'이라 벌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과거에 경험 했고, 현재도 우리 땅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 모습이 대형 할인마트에 밀려나는 구멍가게 주인이든, 미군 기지 조성으로 강제 이주되는 평택 주민들이든 말이죠. 부디 산업화나 도시화, 효율화 등의 거대 담론으로 분칠만 하지 말고 그 안에 실제 살아 숨쉬는 '인간'을 보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