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거짓'이 담겨 있었던 보도자료
언론은 여러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비판과 감시의 기능이 있지만, 정보 제공의 기능도 있습니다. 언론은 산재돼 있는 정보 가운데 전문가, 서적, 논문을 비롯해 신뢰할 수 있고 의미 있는 정보를 찾아 대중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중에는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언론에 제공하는 보도자료도 포함돼 있습니다.
보도자료는 공공기관이나 기업, 단체가 언론을 통해 보도하고자 하는 내용을 언론사에게 제공하는 자료입니다. 보도자료는 공신력 있는 기관이나 단체의 내부 검토를 거친 '공식적인' 자료입니다. 특히 정부부처나 공공기관에서 매일 쏟아지는 보도자료는 중요한 정보입니다. 보도자료를 통해 정책이 국민들에게 알려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의미 있는 정보가 공개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기사도 서울연구원의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보도자료 제목은 '서울시민 1명이 하루에 물 286리터 소비'였습니다. 서울시민이 한 명이 하루에 286리터 물을 사용하는데, 이는 뉴욕, 런던, 도쿄를 비롯한 세계 주요 도시의 물 사용량보다 더 높은 수준이라는 내용이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물의 날을 하루 앞두고 나온 자료인 만큼 가치가 있었습니다. 세계 주요 도시의 물 사용량을 비교해 놓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자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이 '거짓'으로 확인됐습니다. 서울연구원은 어처구니없게도 분석대상의 기준조차 확인하지 않고 분석했습니다. 서울연구원이 제시한 286리터는 서울의 전체 물 사용량을 기준으로 계산한 값입니다. 그런데, 비교했던 다른 도시의 물 사용량은 가정용과 소규모 사업장의 사용량을 계산한 값이었습니다. 서울연구원은 서울시민의 하루 물 사용량을 가정용과 소규모 사업장 기준으로 다시 계산해 보면 190리터라고 뒤늦게 밝혔습니다. 서울연구원이 보도자료에서 서울시민보다 물을 적게 쓰고 있다고 한 상하이나 도쿄는 오히려 서울시민보다 물을 더 많이 쓰는 도시였던 겁니다.
황당한 일은 또 있습니다. 뉴욕과 워싱턴을 비롯해 미국의 도시의 물 사용량 단위는 갤런입니다. 하지만, 다른 도시들은 리터입니다. 그런데 서울연구원은 갤런을 리터도 환산하지도 않았습니다. 1갤런은 3,785329리터입니다. 서울연구원이 50리터라고 밝힌 워싱턴DC는 서울과 비슷한 약 190리터이고, 140리터라고 밝힌 뉴욕은 무려 약 530리터입니다. 서울연구원이 보도자료에서 물 사용량이 서울에 비해 절반에 불과하다고 했던 뉴욕이 오히려 서울보다 물을 약 3배나 더 쓰고 있는 게 사실인 겁니다.
ㅇ "돈을 주고 자료를 받아야 하는데요…"
서울연구원은 보도자료를 발표하면서도 각 도시별 정확한 물 사용량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서울연구원은 IWA 보고서라는 자료를 인용해 세계 주요 도시들의 물 사용량을 비교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연구원의 보도자료에는 세계 주요 도시들의 물 사용량이 200~250리터, 뉴욕과 런던 상하이는 100~200리터로 구간으로만 표시돼 있었습니다.
서울연구원이 IWA에서 공개한 표에 있는 도시별 대략적인 구간에 서울시민의 하루 물 사용량 데이터를 대충 끼워 맞춰 자료를 내놓았다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입니다. 실제로 취재과정에서 각 도시별 물 사용량 정보를 요청을 했습니다. 서울 연구원에서는 IWA에 돈을 주고 상세한 자료는 받지 않아 당장 알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결국 서울연구원에서 주요 도시에 대한 대략적인 추정치만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도자료는 연구원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기자단에게 배포할 수 없습니다. 내부 결재과정을 분명히 거쳤을 겁니다. 내부 결재과정에서 아무도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안일함과 나태함이 자료를 분석한 한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방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