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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의원님들 보고서 수준은? 베끼고 대필하고…

의원님들, 누가 봐도 이건 아닙니다!

[취재파일] 의원님들 보고서 수준은? 베끼고 대필하고…
6.4 지방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6대 지방의회, 이제 임기 말입니다. 그런데 적잖은 의회에서 임기 말 외유성 출장을 가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집니다. 출장이 끝나면 보통 한달 안에 의회 홈페이지에 보고서를 올려놓는데, 여기서 착안해 봤습니다. 보고서를 통해서 임기말 출장 실태를 살펴보면 어떨까 하고 말입니다.
의원 보고서_500

서울 은평구의회 의원 4명은 지난 1월 21일 4박 6일 일정으로 태국 시찰을 다녀왔습니다. 개인당 180만원을 지원받았는데, 최근 의회 홈페이지에 시찰 보고서가 올라왔습니다. 시찰을 다녀온 한 의원은 후기를 제출했다면서 행정 직원이 취합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취합은 직원이 했지만, 마음대로 올릴 수는 없다면서, 전문적인 내용이 담겼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기도 했습니다.

보고서를 볼까요? 17페이지 가운데 5페이지까지는 일정과 연수자 명단, 태국에 관한 일반적인 설명이 담겨있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바로 찾아볼 수 있는 국가 현황, 지형 등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런데 황당한 건 후기입니다. 마지막 3페이지가 문젭니다. 지난해 태국을 다녀온 안동시 의회의 보고서와 후기 부분이 거의 똑같습니다. 문단 순서를 바꾸고, 일부 문단을 추가한 것을 제외하고서는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은평구 의회 연수 후기의 두번째 단락입니다.

태국은 입헌군주제로 왕이 있고 수상이 있다. 현재 국왕은 라마9세인데 60년을 넘게 왕권을 유지하고 있다. 태국 국민들의 국왕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사랑의 표현은 거리거리에 내걸린 현수막, 광고탑 등에서 쉽게 엿 볼 수 있었다. 온통 라마 9세의 초상화다. 젊은 시절의 모습에서부터 현재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모양과 크기도 다양하였다.

지난해 공개된 안동시 의회 보고서에서는 이런 부분이 실려 있습니다.

  태국은 왕이 있고 수상이 있다. 현재 국왕이 라마9세인데 60년을 넘게 왕권을 유지하고 있다. 태국 국민들의 국왕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사랑의 표현은 거리거리에 내걸린 현수막, 광고탑 등에서 쉽게 엿 볼 수 있었다. 온통 라마 9세의 초상화다. 젊은 시절의 모습에서부터 현재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모양과 크기도 다양하였다.

‘다른 그림 찾기’ 같지 않습니까? 첫 문장에 ‘입헌 군주제로’ 라는 문구가 들어간 것 말고는 토씨하나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식의 베끼기는 3페이지 내내 계속됩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 내에 큰 변화와 많은 성과를 내기는 힘들다 할지라도 한가지 테마에 대한 완벽한 견학(무엇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문제점과 개선방안 및 토의)으로 연수 목적 극대화에 노력하였으며, 이번 연수의 경험이 향후 우리지역 발전과 구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할 것을 스스로 다짐해 보며 각자의 맡은 분야에 대한 관심과 안목으로 배움의 지식을 안고 돌아왔다.
의원 보고서_500

은평구 의회 보고서의 마지막 문단입니다.

  비록 짧은 시간 내에 큰 변화와 많은 성과를 내기는 힘들다 할지라도 한가지 테마에 대한 완벽한 견학(무엇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문제점과 개선방안 및 토의)으로 연수 목적 극대화에 노력하였으며, 이번 연수의 경험이 향후 우리지역 발전과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할 것을 스스로 다짐해 보며 각자의 맡은 분야에 대한 관심과 안목으로 배움의 지식을 안고 돌아왔다.  끝.

이번 것은 안동시 의회의 보고서 마지막 부분입니다. 괄호 안에 들어가는 설명까지 같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구민과 시민의 차이입니다.  아! 한가지 차이점이 더 있습니다. ‘끝’이 붙었느냐, 안 붙었느냐, 이 차이도 있습니다. 그저 어이가 없는 겁니다. 이렇게 통으로 3페이지를 가져온 거니 말입니다.

의회를 찾아가 의원 후기를 취합했다는 공무원과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왜 이렇게 똑같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황당합니다. 보고서가 완결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방문 지점별 소감 외에 전체 연수 후기가 필요한데, 이 후기는 작성해서 준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보고 본인이 느낀 것과 비슷하게 표현된 부분을 가져왔다는 설명입니다. 보고서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베끼기를 했다는 말이죠. 기본적으로 의원들이 보고서를 직접 작성하지 않고, 또 공무원이 작성한 것조차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 상황이다보니 이런 황당한 상황이 벌어고 있는 것입니다. 구의회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 그저 헛웃음만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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