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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국인 美계좌 자동 통보…정작 떨고 있는 사람은?

[취재파일] 한국인 美계좌 자동 통보…정작 떨고 있는 사람은?
FATCA.
패트카? 펫카? 아직은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조금은 생소한 이 말은 <Foreign Account Tax Compliance Act.> 의 약자입니다. 우리말로는 <해외금융계좌신고법> 정도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 법은 우리나라 법이 아닙니다. 미국법입니다. 미국 영주권자나 시민권자, 또는  미국 내 납세 의무가 있는 거주자의 해외 탈세를 방지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2010년에 만든 법입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미국 국세청이 다른 나라의 금융기관으로부터 해외에 금융계좌를 갖고 있는 미국 영주권자, 시민권자, 법인의 금융 정보를 받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서 미국은 해당 국가와 먼저 상호 협정을 맺어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와도 조약 체결을 위해 막판 조율 중입니다. 상반기 안에 체결될 것으로로 보이는데 올해 7월 1일부터 본격 시행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만 미국과 조약을 맺는 게 아니고 이미 G20 국가끼리 상호 협의한 내용입니다.

이 제도의 내용은 겉으로는 간단해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시행 된다고 가정하면, 미국은 한국 금융기관으로부터 오는 6월 30일 계좌 잔고를 기준으로 개인은 5만 달러, 법인은 25만 달러를 초과하는 계좌를 가진 미국 납세자의 정보를 받게 됩니다. 7월 이후 신규 개설 계좌도 앞서 말한 기준에 따라 통보됩니다. 개인이 신고하는 게 아니라 금융회사가 계좌 정보를 미국 국세청에 통보하는 겁니다. 반대로 우리나라도 미국으로부터 한국인의 계좌정보를 넘겨받습니다. 연간 이자가 10달러 이상 발생하는 계좌가 통보 대상입니다. 시행은 올해 7월이지만 정보 교환 시점은 내년 9월입니다. 즉 2015년 9월부터 한국과 미국의 국세청은 1년에 한 차례씩 그동안 갖지 못했던 새로운 과세 자료를 교환하게 되는 겁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한국인 가운데 미국 은행에 계좌가 있는 사람이 주요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일부 언론이 그랬고 저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많이 달랐습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가장 타격(?)이 클 사람은 한국에 연고를 둔 미국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들이었습니다. 미국에 계좌를 가진 사람 가운데 연간 10달러 이상 이자를 받는 한국 거주자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미국은 사실상 제로 금리인 상황인데다가 계좌 유지료를 떼기 때문에 이자를 10달러 이상 받으면서 한국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한국에 5만 달러가 넘는 계좌를 가진 미국 사람은 그 숫자가 꽤 된다고 합니다. 은행권에서는 자녀 유학을 위해 학비 절감을 위해서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획득했다가 현재는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고액 자산가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는 시간이 꽤 흘러 영주권이나 시민권 취득 사실도 잊은 채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한국사람’이 꽤 많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의 경우 한국에서 세금 내고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미국 세무당국이 외국에 고액의 금융 계좌를 가진 미국인으로 판단하게 되는 겁니다. 또 미국에 이주한 우리 교포 가운데 한국에 금융 자산을 남겨둔 사람들도 FACTA 시행 이후엔 미국 국세청에 한국의 금융 정보가 고스란히 넘어가게 됩니다. 물론 지금까지 미국 국세청에 성실히 신고해 왔던 사람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경제 활동의 베이스캠프가 한국이었던 사람은 자칫 세금 폭탄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나라보다는 오히려 미국 한인 사회에서 이 문제가 더욱 중요한 이슈로 다뤄지기도 했습니다.

달러 캡쳐_500
그렇다면 처벌 수위는 어느 정도일까요? 정지열 외환은행 준법지원부 차장은 한마디로 “계좌 잔고의 전액을 모두 세금이나 벌금으로 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동안 내지 않았던 미신고 금액에 대한 세금과 이자에 가산세까지 납부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처벌 기준은 상당히 세분화돼있고 수위도 엄격합니다. 고의성 여부에 따라 개인은 물로 금융 회사도 처벌 대상이 됩니다. 미국은 세법 적용이 엄격한 만큼 정말 말 그대로 계좌 잔고를 고스란히 가산세와 벌금으로 낼 수도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형사상의 책임도 묻을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최근 서울 강남의 은행이나 금융권 PB센터에는 FACTA 관련 문의가 쏟아진다고 합니다. 제도 시행 이전에 현금을 인출해서 골드바나 다른 현물 자산으로 바꾸려는 사람들과 아예 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포기하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역외 탈세 방지를 위한 법 때문에 한국 내 자산이 빠져나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겁니다.

원래 이 제도는 미국이 인도를 겨냥해서 만든 제도라고 합니다. 미국의 IT업계에서 성공한 인도인들이 축적한 재산을 미국에서 소비하지 않고 인도로 다시 갖고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여기에 역외 탈세를 막아 세수를 늘리려는 세계 각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적용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겁니다.

현재 한미조세협정에 의해 한쪽 국가에서 세금을 납부한 것에 대해서는 다른 국가에서 그것을 감안해 세금을 징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쪽에서 이중과세 되는 점은 없습니다. 한국 납세자든 미국 납세자든 한국법이나 미국법에 따라서 의무 신고 사항에 대해서 정확히 신고하면 큰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그동안 신고하지 않았던 경우라면 국적 포기나 현금 인출 같은 극단적인 방법보다는 금융 전문가와 상담을 통해 적절한 대응 방안을 찾는 게 좋습니다. 세금 폭탄에 떨기 보다는 정정당당한 납세자가 되는 것이 올바른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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