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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칼럼] 코소보와 크리미아

[논설위원칼럼] 코소보와 크리미아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친 러시아계가 우세한 크림 반도에 러시아군이 진주하고, 우크라이나 군 병영을 포위하는가 하면, 친 러시아계 민병대가 사실상 치안을 장악한 상태라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크림 자치정부는 3월 16일 러시아 귀속을 묻는 주민 투표를 실시한다고 밝혔습니다. 크림 반도의 인구 구성은 러시아계 60%, 우크라이나계 24%, 타타르계 13%라고 연합뉴스는 전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체로 보면 우크라이나계가 77.8%, 러시아계가 17.3% (CIA WORLD FACTBOOK)이지만 크림 반도는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해 러시아계가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입니다. 아마도 주민 투표가 이대로 진행된다면 러시아로 귀속하자는 의견이 다수를 이룰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과가 뻔해 보이는 투표를 앞두고 유럽연합 등이 반발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3월 6일 발표한 성명에서 '크림 자치정부의 최고위원회의 투표 결정이 우크라이나의 헌법 질서에 반하며, 따라서 불법이다'라고 강력히 규탄했습니다. 3월 12일에는 G-7 까지 가세해 러시아에 대해 우크라니아 법과 국제법에 위배되는 크림 자치공화국 지위 변경 시도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러시아는 '크림 반도가 자신들의 운명을 독립적으로 결정할 권한을 존중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3월 4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오직 크림 반도 주민 만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밝힌 것과 같은 기조입니다.

지금 상황은 크림 자치정부가 투표를 통해 러시아 귀속을 선언하거나 우크라이나에서 독립된 별도의 정부를 선포한 뒤 러시아가 이를 지지하는 형식, 또는 장기적으로 러시아에 병합하는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연히 우크라이나는 반발할 것이고, 크림 자치정부와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충돌이 이어지면 유럽연합 등 서방은 우크라이나 정부를 지지할 것이고, 러시아는 크림 자치정부를 지원할 것입니다. 또 한 차례 서방과 러시아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몇 년 전 있었던 코소보 독립의 데자뷔라 할 수 있습니다. 2008년 2월 17일 코소보 의회는 세르비아에서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코소보는 세르비아에 속해 있었지만 인구 중 92%가 알바니아계이고, 세르비아계와 보스니아계, 터키계 등을 다 합쳐야 8% 정도에 불과합니다. 코소보는 90년대 말 세르비아와 독립전쟁 까지 치렀습니다. 영토 문제에 역사적인 상징성 까지 겹쳐 절대 코소보를 독립시킬 수 없다는 세르비아에 맞서 압도적 다수인 알바니아계가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한 것입니다.

당시 상황을 볼까요? 세르비아의 후원국인 러시아는 절대 독립을 용인할 수 없다고 나섰습니다.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아직도 코소보를 독립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 유럽연합은 코소보 독립을 지지했습니다. EU의 장관 격인 커미셔너 올리 렌은 2008년 2월 20일 유럽의회 연설에서 코소보의 독립을 축하하면서 유럽연합 각국에 조속한 승인을 촉구했습니다. 세르비아에 대해서는 역사적 중요성은 이해하지만 이제 그것은 과거로 묻어 두고 미래를 바라보라고 요구했습니다.

지금과 비교해 보면 코소보와 크림 반도의 상황은 서로 진영만 바뀌었지 똑같은 상황으로 보입니다. 유럽연합이 지지한 코소보 독립, 러시아가 지지하는 크림 자치정부 독립,

다시 상황을 돌려 볼까요? 코소보 독립 당시 코소보 내 세르비아계가 모여 사는 미트로비차에서는 격렬한 반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국제중재기구가 들어서면서 점차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국가 승인이 발빠르게 이어졌습니다. UN의 중재로 독립이 국제법적으로 적법한 지를 따져 보자고 제안해서 국제사법재판소가 개입했고, 국제사법재판소는 2010년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했습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코소보를 인정한 국가는 110개국에 이릅니다. UN 회원국 193개국 중 108개국이, EU 회원국 28개국 중 23개국, NATO 회원국 28개국 중 24개국, 이슬람 협의체(OIC) 53개국 중 35개국이 코소보를 국가로 인정했습니다. 한국은 독립한 지 한 달 쯤 지나서 2008년 3월 28일에 코소보를 국가로 인정했습니다. 이제는 세르비아도 주권 국가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관계 정상화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런 시나리오대로 라면 크림 반도의 독립도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벌써 부터 크림 자치정부가 독립하더라도 승인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또 코소보와 크림 반도는 상황이 다르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코소보는 당시 명백한 위협이 존재했지만 크림 반도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한 국가 또는 한 지역의 운명이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주변국들의 계산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코소보 독립을 지지했던 유럽연합은 지금 크림 자치정부의 행보에 강한 유감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반면 코소보 독립 당시 절대 독립을 허용할 수 없다고 했던 러시아는 지금은 지역민이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마치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가 부활한 모양새인 데, 이런 주장도 그 때 그 때 달라진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김인기 논설위원 대
러시아는 내부에 다양한 민족 문제를 품고 있습니다. 체첸 전쟁이나 조지아 전쟁이 모두 민족 문제 때문에 발발했습니다. 서로 이웃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도 민족 문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역시 구 소련권의 국가로서 러시아가 챙길 수 밖에 없는 나라들입니다. 특히 아르메니아 같은 경우는 쿠르드족 문제 까지 겹쳐 민족 문제가 발생하면 상황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나라입니다. 이런 속에서 러시아가 대놓고 민족 자결 운운하면 그 결과는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오랫동안 겪어 왔지만 약소국의 운명이 강대국들의 이해 득실에 따른 희생양이 돼 왔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우리는 지금 다시 한 번 냉혹한 국제 정치의 현실을 눈 앞에서 보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운명이 어떻게 될 지, 크림 반도의 운명은 또 어떻게 될 지 주의 깊게 지켜 봐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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