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오히려 그냥 걸어가고 싶어요"
남산 1호 터널을 지나 명동으로 가는 1.8km 구간의 삼일로라는 도로가 있습니다. 이 구간은 강남에서 강북으로 진입하는 진입로이다 보니 차가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출근시간이면 당연히 정체가 더 심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버스전용차로가 더 밀린다는 겁니다. 버스전용차로에는 버스들이 길게 줄을 늘어 서 있고, 일반차로 차들을 오히려 더 원활히 소통하는 모습이 매일 아침 반복되고 있습니다. 취재팀이 실제로 버스를 타봤습니다. 남산 1호터널 전 옛 단국대학교 입구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무작위로 한 대 탔습니다. 버스는 남한 1호 터널을 지나면서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버스전용차로로 들어가면서 거의 멈췄습니다. 일반 차로의 차들은 버스 옆을 유유히 지나갔습니다. 버스전용차로로 1km 이동해 명동성당입구역에 도착하는데 10분 걸렸습니다. 함께 출발한 취재팀의 차량은 2분 30초 만에 같은 거리를 이동했습니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남산 1호터널만 지나면 오히려 걸어가고 싶다고 푸념을 늘어놨습니다.
서울시에 의뢰해 이 구간의 차량 이동속도를 분석해봤습니다. 3월 첫째 주의 오전 7시부터 9시까지의 평균 속도를 계산해 보니 버스전용차로는 10.6km/h가 나왔습니다. 반면에 일반차로는 14.7km/h가 나왔습니다. 이 곳 뿐이 아니었습니다. 서울의 주요 도심 3곳을 추가로 더 분석했더니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강남역을 중심으로 강남대로는 버스전용차로가 16.6km/h, 일반차로는 21.7km/h, 서울역을 중심으로 한강대로는 버스전용차로가 13.6km/h, 일반차로는 23.9km/h, 신촌역을 중심으로 하는 양화신촌로는 버스전용차로가 14.2km/h, 일반차로는 20.6km/h로 분석됐습니다. 서울 주요 도심의 버스전용차로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겁니다.
차가 밀리는 건 도로가 소화할 수 있는 차보다 더 많은 교통량이 몰리기 때문입니다. 서울 도심의 버스전용차로에 정체가 더 심한 것도 이 구간의 버스전용차로가 소화할 수 있는 적정 교통량보다 버스가 많기 때문입니다. 서울시와 전문가들은 버스전용차로가 제 기능을 하려면 한 버스정류장에 한 시간에 150대가 진입하는 게 적정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체가 심한 삼일로에 있는 명동성당역 버스정류장에는 한 시간에 214대가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서울시는 분석하고 있습니다. 다른 버스정류장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결국 버스가 너무 많다 보니 버스전용차로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삼일로에 있는 명동성당역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 역에는 30개 노선의 버스가 운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22개 노선인 73%가 경기도 광역버스입니다. 남산 1호터널을 지나는 광역버스만 하루에 2천대입니다. 그리고 신촌 인근을 지나는 광역버스도 800대에 달합니다. 인천이나 경기도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광역버스는 모두 176개 노선 2,341대로 서울시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65.7%가 서울역과 강남역과 같은 도심으로만 집중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이렇게 경기도나 인천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광역버스들이 너무 서울 도심으로만 집중되다 보니 이 구간 버스전용차로의 정체가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또, 최근 3년 사이에는 M버스라고 불리는 광역급속버스 366대가 서울 도심 노선에 집중되면서 정체를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고 인천이나 경기 광역 버스를 서울로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신도시가 생기면서 수도권에서 서울로 들어오려는 수요가 계속 발생하고 그들을 위한 교통편을 마련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인천이나 경기도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서울시와 경기도, 국토부가 논의하고 있는 대안이 환승센터입니다. 서울 도심까지 광역버스가 들어오는 지금의 관행에서 벗어나 서울진입구간에 환승센터를 만들자는 겁니다. 서울시는 이미 광역버스 환승 교통체계가 구축돼 있기 때문에 환승한다고 교통요금이 더 드는 것도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환승센터는 광역버스는 서울 진입구간까지만 와서 회차하고 이용객들은 여기서 서울 지하철이나 버스로 목적지까지 이동하게 하자는 겁니다. 대표적인 환승센터가 사당역입니다. 수원이나 경기 남부지역에 오는 광역버스는 사당역까지만 오고 회차합니다. 이용객들은 이곳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주로 강남지역에 있는 목적지까지 이동합니다. 서울시는 이런 환승센터를 더 확산시키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기도나 인천시는 반대입니다. 시민들이 불편하다는 이유입니다. 광역버스를 타는 이유가 조금 차가 밀려도 한 번에 원하는 도심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중간에 내려서 서울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 행위 자체가 불편을 초래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사당역과 같은 곳은 2호선으로 강남진입이 편하지만, 명동이나 을지로와 같은 지역은 서울 지하철이나 버스로 진입하기가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광역버스가 고속도로를 타고 한남대교를 건너서 회차를 하고 도심으로 진입하지 않으면 당장 삼일로와 같은 구간의 정체는 어느 정도 해소될 겁니다. 하지만, 이 지역에는 지하철이 1호선 밖에 없는데다, 서울 시내버스로 갈아타려면 최소 10분에서 20분 정도 걸리는데 아침 출근시간에 시민들에게는 큰 불편이라는 겁니다.
ㅇ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서울시민이라면 환승센터에서 광역버스가 회차하고 서울시내에 있는 지하철이나 버스로 이동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경기도나 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해야 하는 이용객들은 다소 편하게 다닐 수 있던 광역버스가 없어지고 환승해야 한다면 당장 불만일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시는 서울시민의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경기도나 인천시는 경기도민이나 인천시민의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국토부는 광역화로 인한 교통문제에 대해서 누구의 편을 들 수도 없습니다. 시간만 흐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간만 보내고 있는 동안 모두가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경기도나 인천에서 서울로 오는 버스들은 장거리를 이동하는데다 서울 도심에서는 밀려 배차간격이 길다 보니 이용객들은 버스를 오래 기다려야 하고 만원 버스에서 힘들게 장시간을 이동해야 합니다. 버스회사들도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시민들이 버스를 타면 차가 밀리니 버스보다는 지하철이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다 보니 서울시내 버스회사들의 적자로 세금으로 매년 2천억 원의 보조금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버스 이용객 모두가 정체로 길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10년간의 버스전용차로는 이 광역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서로 자기들의 입장만 계속 반복하다가는 더 이상 발전이 없습니다. 경기도나 인천에서 들어오는 광역버스와 이 버스를 이용하는 이용객들이 서울 도심까지 들어오지 않고 다른 교통수단으로 환승한다고 해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서울시내 버스 노선도 함께 조정해야 할 겁니다. 버스 전용차로의 효과가 어느 정도 검증이 된 만큼 정체가 심한 구간 주변 구간을 중심으로 버스전용차로를 확대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특정 지역으로만 몰리는 집중화 현상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불편’은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면 상당부분 해소되는 감정입니다. 그렇다고 불편을 감수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은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과 서로 입장을 조금씩 이해하고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