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만에 받은 판결문엔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자살 방조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무죄 판결문을 받아든 남자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그는 1990년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서대필’ 사건의 주인공 강기훈이었다.
그가 아무리 아니라고 외쳐도 묵묵부답이었던 사법부는 23년 만에 사건의 진실에 귀를 열었다. 재심 재판부는 강 씨에게 유서 대필자라는 낙인을 찍었던 당시 재판의 증거가 대부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스물아홉 살 청년이었던 강 씨는 동료의 유서를 써주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했다는 자살 방조자라는 손가락질을 20년 넘게 받으며 살아 왔다.
강 씨는 판결 이후 단 하나의 바람이 있다고 담담히 이야기했다. 자신에게 유죄를 내렸던 수사, 재판 관계자들이 유감의 표시라도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현재 강기훈 씨는 간암 판정을 받고 투병중이다. 그는 취재진에게 이 모든 걸 잊고 하루라도 빨리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은 끝까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재심 판결 1주일 만에 대법원에 상고를 결정했다. 무죄 선고의 기쁨도 잠시. 그는 또 언제 내려질지 모르는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며 지난 세월의 고통을 곱씹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현장 21>은 무죄 판결 그 후에도 끝나지 않은 유서대필 사건의 논란을 취재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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