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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소화전에 '주차금지' 써 있는데도…불법 주차

[취재파일] 소화전에 '주차금지' 써 있는데도…불법 주차
"지하식 소화전 위에 차를 대셨어요? 차 빼주세요."

"그게 하수구인지, 소화전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소화전이라고 써 있잖아요."

"누가 바닥을 보고 다닙니까?"

소방대원들과 동행한 불법주차 단속 현장. 단속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소방대원과 차주 사이에 험한 고성이 오갔다. 옆에서 마이크를 들고 있던 나까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가 침해라도 된 듯 차주들의 반발은 거셌다. 소방대원들은 애써 감정을 삭이며 다음 단속 장소로 이동했다.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해야 할 소방대원들이 거리로 나선 건, ‘불법 주차에 가로막힌 지하식 소화전’ 때문이었다. 도로나 인도 위로 솟은 지상식 소화전은 보행자나 차량 통행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땅 아래 지하식 소화전 매설이 늘고 있다. 그런데 이 지하식 소화전 위로 불법 주차 차들이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주차된 차들 때문에 정작 중요한 순간에 무용지물 신세가 되고 있다.
조을선 취재파일_5

조을선 취재파일_5

<사진 설명 : 지하식 소화전 위로 차들이 불법 주차돼 있다. 지하식 소화전 덮개에는 노란색 페인트칠과 함께 '소화전 주차금지'라고 써 있다.>

일일 소방대원이 되어 골목길을 다니는 내내 가슴이 턱턱 막혔다. 지하소화전이 있는 자리엔 어김없이 불법 주차 차량들이 들어섰다. 차를 빼달라고 전화하려고 해도 휴대전화 번호가 없는 경우도 있었고, 있다고 해도 세월아 네월아 나오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만약 불이 나서 당장 소화전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소화전은 반경 150미터 안에 하나씩 설치돼있다. 불법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제 때 소화전을 사용하지 못하면 소방대원들은 소방 호스를 들고 인근의 또 다른 소화전을 찾으러 가야 한다. 그런데, 또 다른 소화전 역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1분 1초가 급한데, 불법 주차 차량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면, 집 한 채 탈 게, 두 채, 세 채, 아니 골목길 전체가 탈 수도 있어요.”

소방대원의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순식간에 건물을 삼켜버리는 화마 앞에서 소방대원들과 피해자들의 애타는 심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대원들이 하는 가장 첫 번째 작업이 ‘소화전 확보’일 정도로 소화전은 중요하다. 화재 현장에서 소방차에 필요한 소방 용수를 공급하니, 더 이상 어떤 설명이 필요할까. 특히, 소방차가 여러 대 진입하기 어려운 좁은 길에선 용수 공급이 더 어렵기 때문에 소화전의 역할은 말할 수 없이 중요해진다. 그만큼 소화전 주변 불법 주차는 위험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조을선 취재파일_5


최근 정부가 각종 사고 현장에 빠르게 대응하겠다며 ‘골든타임제’라는 정책을 발표했다. 화재나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소방차나 구급차가 5분 안에 현장에 도착하는 비율을 지난해 기준 58%에서 2017년까지 74%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소방차가 6분 안에 현장에 도착하는 비율이 100%라고 하니, 한국에서 뒤늦게라도 정책이 나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5분 안에 도착해서 소화전을 사용할 수 없다면? 필요한 용수가 제 때 공급되지 않는다면? 빨리 도착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소방로 확보 문제와 함께 소화전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정부의 개선책이 필요하다.

취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 현장에서 불법 주차한 차주들의 적반하장식 태도가 떠올랐다. 순간 화가 아닌 부끄러움이 치밀어 올랐다. 그들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취재하다 급한 마음에 골목길에 차를 댔다 단속되면 혼자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들도, 나도 고작 ‘몇 분의 시간, 몇 푼의 돈이 아까워’ 가까운 골목길 한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 아래 누군가의 생명, 보금자리와 맞바꿀 수 있을 만큼 아까운 게 과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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