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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왕따’가 된 ‘巨富’

- 걸프의 왕따가 된 카타르의 사면초가

[월드리포트] ‘왕따’가 된 ‘巨富’
카타르는 우리에게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 그리고 오는 2022년 월드컵 개최지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 3위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바탕으로 엄청난 국부를 끌어 모으며 최근 몇 십년 사이 걸프지역의 변화를 선도하는 국가로 부상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죠. 그런데 1인당 국민소득이 10만 달러를 넘는 그야말로 거부(巨富)인 카타르가 요즘 주변 국가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습니다.

◇ 국민소득 세계 1위 카타르…걸프의 '왕따'가 되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 에미리트, 바레인 등이 카타르의 자국 대사를 소환해 버렸습니다. 표면적인 갈등의 이유는 아랍권 대부분 국가에 펴져 있는 ‘무슬림 형제단’에 대한 시각차입니다. ‘무슬림 형제단’은 지난 1920년 대 이집트의 핫산 알반나라는 인물이 주창한 이슬람 운동의 일환으로 당시 식민지배와 억압적 사회체제를 이슬람 국가로 대체해야 한다는 이념으로 급속히 확산됐습니다.

한 때 무장투쟁 노선을 걷기도 했지만, 이집트에선 지난 2011년 무바라크를 축출한 시민혁명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합법적 집권 세력이 될 정도로 뿌리가 깊습니다. 하지만 이슬람의 태동과 함께 왕정 체제를 유지하면서 권력을 독점해 온 사우디 왕가 등 걸프 지역의 왕정국가들은 물론 이미 무너진 아랍권의 독재자들 역시 무슬림 형제단을 ‘이단’과 체제 전복세력으로 간주해 오랜 세월 무자비한 탄압을 지속해 왔습니다.

◇  갈등의 표면적 원인은 무슬림 형제단…시민혁명의 여진

그런데 지난 2011년 벌어진 ‘아랍의 봄’ 이후 상황은 급변합니다. 독재정권의 붕괴 속에 지방 곳곳의 모스크를 중심으로 단단한 풀뿌리 조직을 갖추고 있던 무슬림 형제단은 혁명 이후 단 기간에 정치적 영역에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세력이었고, 실제로 이집트 등에선 권력을 장악하기도 합니다.

이런 아랍의 봄을 바라보는 걸프국가의 시각차는 확연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 폐쇄적 왕정국가들은 혁명의 확산에 노골적인 불안감을 드러냈습니다. 지방의 작은 시위에도 경찰과 군병력을 동원했고, 사회불만의 확산을 막기 위해 왕가는 정부예산과 사재를 풀어 민주화 요구를 돈의 힘으로 찍어 눌렀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자신의 턱 밑인 바레인에서 연일 민주화 시위가 벌어지자, 자국 군대까지 파견해 진압에 나설 정도로 ‘아랍의 봄’ 확산을 막기 위해 전전긍긍해 왔습니다.

◇  '혁명의 확산'을 지지한 카타르의 전략적 선택

같은 왕정국가이지만 카타르의 행보는 다른 걸프국가들과 확연히 달랐습니다. 시민혁명이 시작되자 독재자들에 대한 저항을 곳곳에서 지원합니다. 리비아 반군과 시리아 반군 지원, 또 이집트 시민혁명 이후 선거로 집권했던 무슬림 형제단에 엄청난 현금을 제공하면서 관계를 돈독히 합니다. 카타르의 입장에선 아랍권의 혼돈과 새 질서의 확립 과정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혁명의 확산’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죠.

◇  이집트의 쿠데타…환호하는 걸프의 왕가들 

하지만 지난 해 이집트의 군사 쿠데타로 무슬림 형제단의 1년 천하가 막을 내린 뒤 상황은 다시 급변합니다. 이집트 군부는 무슬림 형제단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자 돈줄이던 카타르를 맹비난하며 무슬림 형제단을 테러단체로 지정해 버렸고, 무르시 대통령 시절 카타르가 제공했던 차관을 조기 상환해 버립니다. 이후 이집트는 카타르가 테러 단체인 무슬림 형제단을 지원하고 있다며 자국 대사를 소환합니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아랍메리트, 쿠웨이트 등 ‘혁명의 확산’에 전전긍긍하던 걸프 왕정국가들은 이집트의 군사 쿠데타를 두 팔 걷고 지원하고 나섭니다. 군부에 대한 강력한 지지의사를 표명하고 무슬림 형제단 집권 1년 간 카타르가 지원했던 자금의 2배가 넘는 돈을 이집트에 쏟아 붓습니다.

걸프 왕정국가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걸프 지역 곳곳에 뿌리 내리고 있던 무슬림 형제단 관련 인사들을 연달아 체포, 구금하는 등 압박을 대폭 강화합니다. 그리곤 아예 눈엣가시 같은 카타르를 굴복시키기 위해 공동전선을 구축해 대사 소환 등 외교적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세계 1위의 거부 카타르가 걸프 지역의 '왕따'가 된 셈입니다.

◇  카타르의 개혁 개방이 불편한 왕가들…'이 기회에 무릎을 꿇리자(?)'

그렇다면 카타르는 왜 주변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런 외교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일까요?

지난 90년 대 중반 자신의 아버지를 몰아낸 무혈 궁정 쿠데타로 집권했던 당시 하마드 국왕의 집권시절부터 카타르는 강력한 개혁 개방 정책으로 국가 전략을 바꾼 뒤 외교 행보도 현란해 집니다.

왕정 체제 하에서도 지속적인 민주화를 추진해 지난 2003년엔 국민의 법률적 평등과 집회,표현, 종교 자유, 그리고 걸프지역에선 금기나 다름없던 여성 참정권도 보장합니다. 물론 아직 선거를 통한 의회구성과 군주제와 정치의 완전한 분리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강력한 사회통제 속에 왕가가 독점적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주변 걸프 국가들을 불편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카타르 왕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랍의 CNN이라는 알 자지라 방송국을 설립하고 언론을 왕가의 선전도구 쯤으로 생각하던 기존의 걸프 국가들은 꿈도 꾸지 못했던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지난 2003년 알 자지라의 사우디 왕가의 부패 스캔들 보도는 사우디 아라비아를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이후 자국 대사를 소환한 뒤 5년 동안 돌려 보내지 않기도 했습니다.

◇  현란한 외교행보…생존을 넘어 맹주가 되려는 카타르

걸프지역 왕가들의 불만이 쌓여가자 카타르는 적극적인 친미 행보로 이를 돌파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위치해 있던 미군 공군기지를 자국 내 알 우데이드 기지로 이전하는 성과를 올리면서 안보 불안을 해소하고 다른 왕정국가들이 시아파 맹주라는 이유로 적대관계를 이어왔던 이란과도 적극적인 관계 개선에 나섭니다. 걸프만을 사이에 둔 이란과의 관계 개선으로 카타르에 불만이 가득한 사우디아라비아를 견제하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습니다. 걸프 국가 가운데는 이례적으로 이란의 핵 개발 권리를 인정하는 입장을 천명하기도 합니다. 생존의 전략인 동시에 걸프의 새로운 맹주가 되려는 카타르의 야심을 반영한 것이도 하죠.

결국 카타르를 겨냥한 걸프 지역 왕정국가들의 이번 대사 소환 조치 등 외교적 압박은 표면적으로는 무슬림 형제단의 지원을 둘러싼 시각차인 것처럼 보이지만, 오랜 기간 턱 밑에서 신경을 건드려 온 신흥 강소국에 대한 견제, 그리고 아랍권 내 민주주의 확산을 어떻게 자국의 이해와 결부시키고 있느냐에 따른 갈등의 폭발인 셈입니다.

◇  걸프지역의 균열과 변동…결론은?

카타르는 표면적으로 유감을 표하는 동시에 걸프 국가들의 이런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국들은 이 기회에 카타르를 완전히 주저 앉히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고 일각에선 경제 제재 이야기까지 흘리고 있습니다. 카타르와 주변국들의 불화는 변화를 막아내야 유지되는 권력과 변화의 파도를 즐기는 듯 한 권력 간의 힘겨루기인 듯 보입니다. 겉보기엔 새로 전학 와서 이것저것 공약하며 반장선거에 나선 아이를 그 반에 있던 다른 아이들이 한데 모여 까불지 말라며 겁주는 모양새입니다.

결론이 어떻게 날 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이번 ‘카타르 왕따’ 사건은 무력분쟁으로까지야 치닫지 않겠지만 시민혁명의 불길이 독재 권력 교체에서 종파분쟁과 사회개혁 요구로 아랍권에 내재화 되가는 과정 속에 벌어질 수 밖에 없었던 필연적 갈등입니다. 석유 자원을 무기로 비슷한 왕정 체제와 친미노선을 유지해 온 걸프국 사이에도 서서히 균열과 변동이 진행되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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