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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녹차와 어우러진 일본의 11번째 '올레'

제주올레가 직접 자문과 선정…'길'이 가진 '소통'의 힘

[취재파일] 녹차와 어우러진 일본의 11번째 '올레'
'집으로 가는 (골목)길'이란 뜻의 제주방언 '올레'는 이미 한국의 대표적인 도보 여행길로 유명해졌습니다. 트레킹보다는 좀 강도가 약하고 단순한 산책보다는 약간 힘든 수준의 길입니다.

한국과 역사적 연관이 가장 깊은 일본 규슈는 이 제주올레를 지난 2012년부터 수입하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에 4개 코스를 열었고, 2013년에도 4개코스, 올해도 4개 코스를 열었는데, 지난 2일 12번째 '오시마 코스'를 마지막으로 규슈섬 7개 현 어느 곳에 가도 올레를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오늘은 하루 앞서 개장한 11번째 올레 '우레시노 코스'에 대해 말해볼까 합니다. 우레시(嬉)노는 규슈섬의 사가현이란 곳에 있는 마을입니다. 일본말로 '우레시이'가 기쁘다는 뜻인데, 그 곳 주민들은 '올레'를 개장한 것을 정말 기뻐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레시노는 일본에서도 유명한 녹차 생산지이며, 규슈 어느 곳과 마찬가지로 온천이 상당히 많습니다. 어느 곳을 가도 온천을 볼 수 있습니다.

우레시노는 한 번의 엄격한 시험을 봤지만 '탈락'의 고배를 마셨고 1년을 더 준비해서 이번엔 정식으로 '올레'를 개장하는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이런 권한은 사단법인 제주올레에 있으며, 엄격한 심사를 거쳐 승인해주고 상징적이긴 하지만 규슈로부터 자문료를 연간 100만엔씩 받고 있습니다.

사가 현은 일본에서도 '시골 중의 시골'로 불리는 곳입니다. 그 현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가 우레시노입니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버스로 2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습니다.

코스는 조그만 마을 옆길에서 시작합니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2백여 미터 걸어 올라가면 바로 산길로 접어드는데, 조금 가파릅니다. 걷다보면 일본은 산을 '방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원시림 가까운 숲이 펼쳐집니다. 공기는 '천연' 그 자체입니다.

1시간 정도 올라가다보면 고급 녹차의 생산지 답게 광활한 녹차밭이 펼쳐집니다. 우리나라 보성 녹차밭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이 곳에서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수고하셨습니다. 녹차 드세요'라며 반가운 인사를 합니다.


녹차 올레
녹차 생산지에서 녹차 생산자들이 직접 우려주는 녹차 맛은 정말 '환상'입니다. 주민들은 마을이 생긴 이래 '올레'란 게 들어서면서 최대의 외지인이 찾아온데 그저 고마울 뿐이니다. 잊혀진 시골 마을이 '관광지'로 거듭나길 바라고 있습니다.

녹차밭을 지나는데 1시간...동네로 접어들면 조그만 저수지가 펼쳐집니다. 저수지를 지나 마을길을 걷다보면 '정말 시골마을이구나'란 생각이 들 정도로 오래된 가옥들이 눈에 뜨입니다. 조용합니다.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멀리서 보면 저수지 위에 마을이 떠 있고, 그 위를 사람들이 조용히 걷고 있습니다. 멈춰진 시간을 혼자 헤쳐 나가는 시간 순례자의 모습입니다.

녹차 올레
마을을 지나 또다시 원시림. 한 사람이 겨우 지날 폭의 산길을 30여분 걷다보면 조그만 대피소가 나옵니다. 여기서도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든 크로켓과 술빵(사케만쥬)를 대접합니다. 꿀맛입니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이쯤이면 모두 친구가 됩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아는 듯합니다. 조금 시끌벅적합니다.

배를 조금 채우고 산길을 내려오면 아랫 마을로 흐르는 폭 30미터 정도의 강이 나옵니다. 강 옆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마치 청계천 같습니다. 다만 더 자연적이고 폭이 넓고 조용하고, 차도 다니지 않는다는 게 다릅니다.

2킬로미터 물소리를 들으며 내려가면 속세의 모든 것이 잊혀집니다. 자연스레 '힐링'이 되는 것 같습니다. 12킬로미터 정도의 코스는 빠른 걸음으로 4시간, 천천히 걸으면 5시간 걸리는데, 마지막은 '온천'입니다. 싼 입장료를 내고 전신욕을 해도 되고, 바쁘고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을 위해선 이곳 저곳에 '무료 족탕'이 준비돼 있습니다.

우레시노 올레는 개장일에 맞춰 제주와 부산 등 한국에서 100여명이 왔고, 일본 각지에서도 100여명이 모여 함께 걸었습니다.

우레시노에서 태어나 60년을 넘게 산 현지인 미케다씨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런 산길은 처음 걸어봐요. 이렇게 좋을 줄 몰랐어요. 그런데 이런 길을 만드려면 돈이 좀 많이 드는 건 아닌가요.하하하...놀라워요."

경기도 안산에서 온 박해연씨는 '걸으면서 생각하고 힐링하고, 일본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좋은 기회'였다고 느낌을 전했습니다.

시골길이 '올레' 란 옷을 입으려면 물론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있어야 한다는 게 최우선 조건이지만, 이외에도 '스토리'가 있어야 합니다. 지역의 먹을거리, 볼거리, 역사와 사연, 그리고 주민의 인정.

올레는 '무'에서 '유'를 창조합니다. 잊혀질 법한 길이 최고의 '관광지'로 거듭나고,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길'이 전해주는 '소통과 이해'입니다.

집으로 가는 길, 올레를 함께 걸으면 집에도 함께 갈 수 있는 친구,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길'이 이어주는 미덕입니다. 한-일 관계가 특히 좋지 않은 요즘, '올레'의 정신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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