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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정치인 사전에 'never'란 없다

'정치는 생물' 핑계로 잇단 말 바꾸기…개선책 없나

SBS는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하면서 2017년 대선 불출마 의사를 밝힐 것이라는 사실을 지난달 26일 처음 보도했습니다. 대권을 노리고 있는 정 의원이 차기 대선에 불출마 의사를 밝힌다는 것은 의미있는 팩트라고 생각해 8뉴스 리포트에 반영한 겁니다. 보도가 나가자 연합뉴스 등 다른 언론도 관련 사실을 다뤘는데, 평가가 재밌습니다.

<정 의원 측 관계자는 "정 의원은 2017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임기를 마치겠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전했다. 정 의원은 이 같은 입장을 출마선언 시 질의에 응답하는 형식으로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울시장 도전에 나서는 정 의원이 현재로서는 이 같은 원론적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으며, 대권도전에 강력한 의지를 가진 정 의원이 서울시장에 당선돼 2017년 대선이 다가오면 결국 태도를 바꾸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2월26일 연합뉴스)

불출마를 선언한다고 한들, 그걸 믿을 수 있겠느냐는 취지입니다. 출마 선언 이후 정 의원은 매일 각종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모든 진행자가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정말 2017년 대선에 나가지 않을 것이냐"고요. 정 의원은 2017년 불출마 의사를 거듭 확인하고 있지만, 과연 그럴지는 2017년 대선 국면에 가봐야 안다는 것이 정치부 기자들의 대체적인 관측입니다. 정 의원은 대선에 정말 나가지 않을 건데, 왜 믿어주지 못하는 거냐고 화를 낼 법도 한데 그럴 처지는 못됩니다. 정치 상황은 시시각각 시기와 처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고, 정치인의 선택도 그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7선의 중진인 정 의원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정 의원은 조선일보와 1월15일 인터뷰에서 "능력있는 당의 후보를 돕는 게 제 역할"이라며 서울시장 불출마 의사를 밝혔지만 한 달 여 만에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약속을 뒤집거나, 입장을 손바닥 뒤집 듯 바꾼 사례는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민정 이양 약속을 뒤집은 일은, 결과에 대한 평가를 별론으로 하더라도,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고, 우리 국민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정계은퇴 선언은 어떤가요.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 패배 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지만 1995년 복귀해 결국 대권을 잡았습니다.

공약 파기와 번복은 부지기수입니다.

이번 지방선거 국면만 하더라도 정치인들의 말바꾸기는 여러차례 포착됐습니다. 오늘 경기지사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알려진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은 지난달 12일 "내 선택은 지금 원내대표다. 차기 원내대표 선거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이라는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불출마로 받아들여질만한 말이었습니다. (단정적으로 출마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 적은 없으니 거짓말을 했다고 보긴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안철수 의원측의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거나 "연대는 없다" "17개 광역 지역구에 독자 후보를 내겠다"는 약속도 결국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출마 여부를 묻는 민주당 이찬열 의원의 질문에 아예 답변을 피해감으로써,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 정치인의 발언을 해독할 때 '진실' 여부를 판단하려는 것은 무모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거취에 대한 번복은 애교로 봐야할 정도로 정치인들의 '말의 무게'가 가벼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거취가 정치인 자신의 진퇴에 관한 약속이라면 '공약'은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약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이 뱉어놓은 말을 쉽게 뒤집을 수 있었던 데에는 그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유권자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말을 바꾸고 약속을 내팽겨쳐도 우리 지역 출신이니까, 우리 동문이니까, 우리 진영이니까 표를 줬고, 그건 정치인들에게 말을 뒤집는 데 대한 면죄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정치인들은 앞으로도 수많은 말을 내뱉고, 약속을 쏟아낼 것입니다. 그 중에 일부는 지켜질 것이고, 일부는 지켜지지 않을테지요. 정치인이 약속을 중하게 만드는 일, 그건 유권자 모두의 숙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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