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높이면서 서방 측과 갈등을 빚자 러시아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온 독일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분석했습니다.
로이터는 유럽연합의 중추 국가인 독일이 일차적으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파병에는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봤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개입을 두고 '국제법과 인권 침해'라고 비판하는 등 목소리를 높인 것이 이를 방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독일은 러시아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언급이나 행동은 자제하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 가운데 하나인 러시아와의 관계를 해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이터는 독일이 이런 애매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경제·외교적으로는 물론 인종적으로도 러시아와 밀접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독일은 천연가스의 40%, 석유의 35%를 러시아로부터 공급받고 있으며 이는 EU 국가 평균을 훨씬 웃도는 수준입니다.
독일의 러시아에 대한 투자 액수는 지난해 10월 현재 220억 달러를 기록했고 독일 기업이 지분을 보유한 러시아 회사는 6천100곳에 달합니다.
또 러시아 국민 20만 명이 독일에 살고 있으며 독일계 혈통의 소련 출신 거주자도 250만 명에 이릅니다.
양국 정상들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로이터는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교민주당의 대연정 파트너, 사회민주당은 친러 정책을 지지해왔으며 사회민주당 당적의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 또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친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정치권 직계 후배라고 소개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 즉 KGB 요원 시절인 1980년대에 당시 동독 드레스덴에서 파견근무를 해 독일어에 능통합니다.
평소 독일 언론 반응도 꼼꼼하게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메르켈 총리가 학창 시절 러시아를 열심히 익혀 15세 때 학생대표로 러시아를 방문했던 이력과도 겹쳐지는 이미지입니다.
두 정상의 이런 배경 아래 EU회원국 중 가장 러시아와 가까운 국가로 꼽히는 독일은 이번 사태에서 EU·미국 등 서방과 러시아 간의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메르켈 총리는 푸틴 대통령과 거의 매일같이 통화하며 양측의 견해차를 좁히려 애썼고 슈타인마이어 외무장관도 러시아와 미국을 부지런히 오가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해 유럽안보협력기구가 이끄는 진상조사기구와 연락기구를 설치하자는 제안을 수용한 것도 메르켈 총리가 끌어낸 결과로 보입니다.
그러나 '조정자'로서 소프트 파워를 발휘한다는 독일의 전략은 적지않은 한계도 노출했다고 로이터는 지적했습니다.
독일은 2주 전 우크라이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과 반정부 시위대 사이의 중재안 도출을 이끌었지만 이런 노력은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도피와 정권 교체, 러시아의 크림반도 파병 등 사태가 급변하면서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독일은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서도 운신의 폭이 넓지 않습니다.
로이터는 우크라이나 사태 악화의 책임이 푸틴에게 있다는 논리에 섣불리 맞설 수 없는 상황에서 독일이 러시아에 실질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압력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EU 경제권을 떠받치는 독일로서는 EU 가입을 '당근' 삼아 우크라이나를 끌어들이려는 시도도 썩 달갑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가장 부패한 국가로 꼽히는 데다 율리아 티모셴코 전 총리 등 독일 처지에서는 크게 신뢰하기 힘든 정치세력이 구권력을 대체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싱크탱크 '카네기 유럽'에 방문연구진으로 있는 울리히 스펙은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독일 입장에서 가장 두려운 상황은 새로운 냉전이 펼쳐지는 것"이라며 "독일은 경제적, 지정학적으로 연결된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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