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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증거조작 사건, 최악의 시나리오는…

진상조사팀의 용단을 기대할 수 있을까

[취재파일] 증거조작 사건, 최악의 시나리오는…
2월 18일, 검찰이 유우성씨 증거조작 사건의 진상조사팀을 꾸렸습니다. 주중대사관 파견 경력이 있는 노정환 외사부장이 팀장으로 임명됐습니다. 노정환 팀장은 대검 공안연구관을 거친 공안 검사인데, 공안연구관은 엘리트 공안 검사만 가는 자리입니다. 거기다 중앙지검 3차장 산하(특수부, 외사부, 공안부) 검사 4명이 차출됐습니다. 3차장 산하 역시 실력을 인정받아야 갈 수 있는 자리죠. 김진태 검찰총장은 진상조사팀에 중앙지검을 거치지 말고 대검에 직보하라고 지시했습니다.

■ <수사>와 <조사> 뭐가 다르기에

대학 입시의 최종 결론이 합격-불합격이듯, 검찰 수사의 최종 결론은 기소-불기소입니다.(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재판에 넘기는 것을 기소라고 합니다) 수사(搜査)란 기소할지 말지를 판단하기 위해 사람을 부르고, 증거를 모으는 절차를 말하죠. 진상조사팀이 지금 문서들을 모아다 감정하고, 관련자들을 불러 조사도 하고 있으니 지금 하고 있는 건 수사입니다.(입건이 안 됐으니 정식 수사가 아닌데 싶으신 분들은, 2012년 수사권 조정 결과를 참고하세요)

그런데 검찰은 대외적으로 <수사>라는 말 쓰기를 매우 꺼리고 있습니다. 포진된 검사들로 보나, 다루는 사건 내용으로 보나 <특별수사팀>이라 불릴 법한데도, 굳이 <진상조사팀>이라 강조합니다. 반드시 조사를 거쳐야만 수사를 할 수 있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검찰은 지금 마치 수사에 착수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조사라는 법률적 단계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죠. 이 행보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부담스러우니 좀 천천히 가자.”

모두 아시다시피 검찰은 지난해 국정원을 상대로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곤욕을 치렀습니다. (십 수 년 전 도청 사건 때도 그랬고요) 통상적인 수사 절차 과정에서도(관련자를 부르고, 증거를 모으는) 내홍을 겪었지요. 수사팀장은 쫓겨나 징계를 받았고, 중앙지검장은 불명예스럽게 검찰을 떠났고, 최고 책임자인 총장은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지경이 됐습니다.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만, 국정원과 정권에 부담이 될 수사를 강행한 대가라는 분석이 정설입니다.

그런데 1년 만에 또 국정원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것도 간첩 사건의 증거 조작 의혹이 말이죠. 국정원은 물론이고 정권에 타격이 될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여차하면 검찰에도 치명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수사를 강행해 기소해도, 수사를 덮고 기소를 안 해도, 상당한 후폭풍이 불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여론의 관심이 시들해질 때까지 최대한 늦게 가고 싶은 게 당연하지요.

■ 한 가닥 희망마저… 궁색해진 검찰

진상조사팀의 첫 활동은 문서 감정이었습니다. 검찰은 중국 정부가 위조라 회신한 문서를 법원에서 받아왔습니다. 대검 DFC에(디지털포렌직센터) 보내 정밀 감정을 실시했죠. 대조군이(비교할 제3의 중국 원본 공문) 없기 때문에 감정을 한다고 해도 위조 여부를 바로 알 수는 없습니다. 두 문서가 같은지 다른지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이지요. 검찰은 내심 두 문서가 같은 형식이기를 바랐습니다.

검찰은 줄곧 “문서 내용은 맞는데, 비공식으로 구했을 뿐이다”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두 문서의 형식이(글자체, 프린트 방식, 잉크 종류, 도장 등) 같다면 뭔가 변론할 여지가 있는 거죠. 발급 기관이 똑같은 문서는 삼합변방검사참에서(우리 출입국관리소) 발급받은 문서였습니다. 두 문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변호인이 낸 문서는 “통행증이 1회용이고, 유우성 씨는 북한에 1번밖에 안 갔다”는 내용이고, 검찰이 낸 문서는 “변호인 문서가 거짓말이다”라는 내용입니다. < 취재파일 1편 참조>

검찰은 특히 도장에 주목했습니다. 같은 기관 문서라면, 당연히 같은 도장을 사용했을 테니까요. 도장이 같다는 결과를 대비해 이런저런 논리도 마련한 듯 보입니다. 하지만 감정 결과는 서로 다른 도장이었습니다. 한 쪽은 확실히 위조라는 뜻인 겁니다. 감정 결과가 나온 시각,  법원에서는 유우성씨 재판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내용을 전하는 쪽지가 검사들에게 급히 전해졌는데, 두 검사는 잠시 고개를 들고 눈을 감고는 한숨을 깊게 쉬더군요. 검찰 지휘부 역시 감정 결과에 매우 당황했습니다.

■ 난감한 검찰 ‘카드가 없다’

사실상 재판은 끝났습니다. 중국 정부가 위조라고 공식 통보했기 때문에, 검찰 측 증거는 위법하게 수집된 것이어서 증거 능력이 없거든요. 두 문서의 형식이 같다고 나왔더라면 다퉈볼 여지가 생길지 모르겠으나, 이젠 그마저도 불가능해졌습니다.(만약 그렇더라도 중국이 입장을 철회하지 않는 한 증거로 채택되긴 어렵다는 게 중론입니다. 법정 밖에서야 진실공방이 일었을 테니 물 타기는 됐을지 몰라도)

뿐만 아니라 검찰은 “유 씨가 2006년 5월27일 어머니 장례를 마치고 북한에서 나왔다가 친척집에서 자고, 이틀 뒤 두만강을 몰래 건너 북한에 들어가 간첩이 됐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1심 때는 물론이고 2심 때도 말이죠. 그러던 도중에 유 씨의 북한 출입 기록을 증거로 내밀면서, “출입국관리소로 나왔다가 한시간만에 다시 북한에 들어갔다”며 주장을 바꿨습니다. 그런 내용으로 공소장을 변경하려다가 이 위조 공방이 벌어진 것이고요.

그런데 지금 와서 다시 두만강을 건넜다고 되돌아가자니 명분이 없지요.(1심 재판부가 이미 말이 안 된다며 무죄를 선고했으니) 그렇다고 계속 출입국관리소로 다시 입북했다고 주장하자니, 뒷받침할만한 증거가 하나도 없습니다. 재판은 거의 다 끝났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검찰 입장에서는 상황이 아주 엉망인 거죠

3월 28일에 마지막 재판이 열립니다. 지난 번 재판에서 변호인 측은 조목조목 검찰 주장의 모순을 지적하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입장 정리가 안 됐다면서 딱히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진상조사팀이 결론을 내릴 때까지 재판을 좀 연기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재판부는 진상조사와 재판을 별개라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원래는 지난번 재판이 마지막이었거든요. 법원 인사 때문에 2심 재판부가 새로 오는 바람에 1차례만 더 하자고 했던 거고요)

검찰의 고민은 이제 유 씨의 간첩 혐의를 입증하는 일보다, 증거조작 사건 수사를 어떻게 하는가에 쏠려있습니다. 검찰은 중국 정부에 수사공조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결론을 내린 중국 정부가 수사에 어느정도 협조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조사의 핵심이 국정원 직원들 진술일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작년에 몰아친 피바람을 생각하면 국정원을 대차게 몰아붙이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우려했던 대선개입 사건의 <학습효과>가 현실이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 최악의 시나리오는 ‘윈-윈’

1편에 밝혔듯 이번 사건은 <간첩>과 <증거조작>을 구분해서 봐야합니다. 내막을 들여다보면 검찰과 국정원도 이렇게까지 무리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겁니다. 유 씨가 간첩이라고 확신한 나머지 의욕이 앞서 선을 넘은 것일 수도 있고요, 별 생각 없이 했던 거짓말을 덮으려다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실체가 무엇인지는 검찰이 밝혀야 하는 상황이고요.

간첩 잡는 일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래도 수사기관은 증거를 조작해서는 안 됩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자는 것이 우리가 신봉하는 민주주의와 헌법의 기본 정신이니까요. 절차적 정의를 고수하지 못한다면, 내 맘대로 외삼촌을 끌어다 처형하는 북한과 다를 게 없습니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간첩의 실체가 무엇인가와 상관없이, 이번 사건이 용인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실체를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국정원도 당했고 검찰도 당했다>는 결론입니다. 국정원 직원의 부탁을 받은 ‘누군가’가, 조작된 문서를 국정원에 건넸고 그걸 검찰이 법원에 제출했다는 식의 결론입니다. 그 누군가가 중국인이 아니라면 외교적인 마찰도 피할 수 있고, 조작인 줄 몰랐던 국정원 직원과 검사들은 처벌을 피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다치는 사람 없이 사건을 끝낼 수 있는, 일종의 윈윈 전략인 셈이죠.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은 아무도 없습니다. 위조인지 몰랐다 하기에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으니까요.

각국 최고 엘리트들이 모여 정보전을 벌이는 심양에 파견된 국정원 직원이라면 역시 엘리트입니다. 공안 검사들 중에서 손에 꼽히는 사람들만 근무하는 중앙지검 공안부 역시 그렇고요. 앞서 언급한 윈윈 전략을 뒤집어 생각하면, 두 기관 최고 엘리트들이 허접한 위조문서에 놀아났다는 뜻입니다. 사실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봅니다만, 만약 사실이라면 매우 절망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진상이 밝혀질 거라 기대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아서 착잡한 마음입니다만, 부디 진상조사팀이 법률가의 양심과 자존심에 걸맞은 수사를 해 주길 바랍니다. 당장 조금 어렵더라도, 길게 보면 그것만이 검찰과 국정원을 살리는 길이 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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