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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면서도 어진 남주"…김남주 시인 20주기

'김남주를 생각하는 밤' 행사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온몸을 던진 김남주(1945~1994) 시인을 떠나보낸 지 벌써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5주기, 10주기, 15주기 추모 행사가 이어졌지만, 고인에 대한 기억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았다.

김남주 시인 20주기를 맞아 28일 저녁 서울 연희문학창작촌 미디어랩실에서 열린 '김남주를 생각하는 밤' 행사는 그의 벗을 비롯해 지인들이 경쟁적으로 털어놓은 고인에 대한 회고와 추억으로 따뜻했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의 기억은 김남주 시인을 처음 만났던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고인이 전남대 영문과 학생 때 전국 최초로 반유신투쟁 지하신문인 '함성'과 '고발' 지를 제작·배포한 혐의로 8개월간 투옥됐던 1972년까지 이르렀다.

박 이사장은 김남주 시인이 1974년 여름 계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한 것은 전남대 학생 시절 자신의 집에 자주 들른 고인이 자신이 구독하던 '창작과비평'을 접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창작과비평' 편집인인 백낙청 문학평론가는 고인에 대해 "과묵하고 부드럽고 흔히 하는 말로 어진 성품을 가졌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는 "물론 고인이 많은 군중을 모아놓고 '조국은 하나다'라는 시를 읽으면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선동하는 투사적인 모습을 목격했다"면서 "그의 투사로서의 진정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그런 면모를 볼 때 잊기 쉬운 남주의 착하고 부드럽고 어진 면이 있었다는 걸 말씀 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창비에서 고인의 시전집과 평론집을 최근에 출간하게 돼서 저희는 이를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남주의 치열하면서 어질고 착한 정신을 이어받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남주의 시 519편을 망라한 '김남주 시전집'과 평론 모음집 '김남주 문학의 세계'를 임홍배 서울대 독문과 교수와 함께 엮은 염무웅 영남대 명예교수는 "가끔 자신을 반성할 때마다 김남주를 떠올린다"고 털어놨다.

그는 "어떤 사람은 감옥에 가고 그곳에서 병을 얻어서 일찍 세상을 떠났는데, 제도권 학교로 돌아간 자의 부끄러움이 있었다"면서 "한세상 벅찬 삶을 산 사람으로서 그를 기억하고 그를 세상에 알리는 게 제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설가 황석영은 "남주는 시골 무지렁뱅이였지만 시는 굉장히 모던했다"면서 "전라도 사람들의 정서와 함께 도시적이고 근사한 서구 시의 맛이 있었다"고 짚었다.

그는 고인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 한 토막도 소개했다.

과거 김남주가 쫓기는 신세가 됐을 때 둘은 수유리 인근 여인숙에서 같이 지냈다고 한다. 한번은 황석영이 밖에 나가서 돈을 구해 올 테니까 그동안 영화를 보고 있으라고 했다.

그런데 일이 늦게 마무리되면서 황석영이 밤 11시가 돼서야 도착해 보니 그때까지 김남주가 극장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황석영이 "왜 여인숙으로 돌아가지 않았느냐"고 묻자 김남주는 "서울은 복잡해서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단다.

그래서 황석영이 "혁명을 한다는 놈이 서울 지리를 몰라서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김남주의 말이 가관이었다. "괜찮아요. 나중에 제가 부숴버릴 거니까"라는 대답이었다.

황석영은 "인상에 남는 것은 남주가 감옥에서 나온 뒤 '나도 이제 생활을 만들어야지'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그 생활이 뭔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고인의 대학교 동창인 이강 씨는 "남주는 어수룩한 면부터 혁명가의 면모까지 다종다양했다"면서 고인이 광주제일고 2학년 때 중퇴를 한 배경에 관한 후일담도 들려줬다.

그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징역살이할 때 '창작과비평'이 감옥에서 돌았다"면서 "'진혼가' 등 남주의 시가 민청학련 사람들에게 엄청난 에너지와 위안을 선물했다. 남주의 벗이라는 것을 보람있게 느꼈던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김남주기념사업회장인 김경윤 시인은 9월 중에 고인의 고향인 전남 해남을 중심으로 김남주 추모 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김남주 생가를 방문자 숙소로 활용하겠다는 계획도 전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사랑한 시인 김남주'라는 제목의 영상이 상영됐고 김남주의 시 '이 가을에 나는', '학살2'가 고인의 육성에 실려 낭독됐다.

임경섭 시인은 '혁명의 길', 김사이 시인은 '시의 요람 시의 무덤', 김근 시인은 '조국은 하나다'를 가슴 먹먹하게 낭송했다.

고인의 아내인 박광숙 여사는 참석자들에게 고마움을 담아 인사를 전했다.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인 이시영 시인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한국작가회의가 주최하고 창비, 연희문학창작촌이 후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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