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서울시내 교통사고 사망자는 424명입니다. 하루에 한명 이상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중에서 길을 건너다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은 사람이 126명입니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29.7%입니다. 2009년부터 통계를 살펴봐도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매년 130명 가까운 사람이 길을 건너다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약 30% 수준입니다.
지난 2012년 서울시내 전체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40,827건입니다. 이중에서 보행자가 길을 건너다 일어난 교통사고는 4,120건입니다. 전체 발생건수의 10%수준입니다. 발생건수도 매년 약 10%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망률은 30%입니다. 발생건수의 3배입니다. 그만큼 치사율이 높다는 겁니다. 치사율은 사고 100건당 몇 명이 목숨을 잃는지를 알려주는 지표입니다. 이 치사율이 높다는 것은 보행자가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하면 목숨을 잃을 확률이 높다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보행자가 길을 건너다 일어나는 교통사고는 위험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길을 건너다 다친 사람의 비율은 오히려 낮습니다. 교통사고로 다친 사람은 2012년에 58,583명입니다. 이중에서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해 다친 사람은 4,322명입니다. 전체 교통사고 부상자의 7.3%입니다. 길을 건너다 다치는 사람의 비율도 매년 약 7%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보행자가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가 나는 건 차와 사람이 부딪히는 사고입니다. 보행자가 길을 건너다 나는 사고는 다칠 확률보다 목숨을 잃을 확률이 높은 위험한 사고임을 통계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길을 건너다 일어나는 사고의 원인은 다양합니다. 그중에서 무단횡단이 한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지난 2012년 무단횡단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83명입니다. 2011년에도 82명, 2010년에는 59명이었습니다. 매년 1,500백건 정도 무단횡단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무단횡단으로 매년 1,600~700명이 다치고 있습니다. 2012년 기준으로 무단횡단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약 65%입니다. 2011년에도 약 58%, 2010년에도 약 48%를 차지했습니다. 무단횡단은 자살행위입니다. 보행자의 과실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인도에 펜스를 만들어 아예 인도에서 도로로 넘어오지 못하게 하거나 단속을 강화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가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서울시는 오히려 보행자 중심으로 신호체계를 바꾸고 있습니다. 보행신호를 자주, 길게 줘서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을 줄이고, 차량의 속도를 낮춰서 사고를 줄이겠다는 겁니다.
♦ 바뀌고 있는 신호체계 “보행신호를 자주, 길게”
신호체계 변경의 핵심은 건널목에서의 보행자의 대기 시간을 줄인다는 겁니다. 그러면 보행자들의 무단횡단도 줄어들 것이라고 서울시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110초를 기다려야 보행신호가 떨어지는 4차선 도로에 있는 건널목이 있었습니다. 보행자들은 1분 40초쯤을 기다려야 보행신호 25초를 받고 도로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건널목의 신호체계는 50초에 25초 보행신호를 한번 주고, 35초에 다시 한 번 보행신호 25초를 주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자동차 주행신호였던 110초를 쪼개서 보행신호를 한 번 더 준겁니다. (주행신호 50초+보행신호 25초+주행신호 35초=기존 주행신호 110초) 보행자들은 건널목에서 50초만 기다리면 보행신호가 들어오고 35초만 기다리면 또 보행신호를 받아 길을 건널 수 있게 됐습니다. 다른 건널목은 80초를 기다려야만 보행신호 30초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주행신호를 50초로 줄였습니다. 또 다른 건널목은 보행신호가 무려 75초나 되는 곳도 있습니다. 건널목은 기본 7초에 1m에 1초씩 계산해 보행신호 시간을 산출합니다. 이 건널목은 8m이다 보니 보행신호 신호가 15초였습니다. 그런데 도심 가운데 있다 보니 보행자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무려 5배나 신호주기를 늘렸습니다. 서울시는 이런 방식으로 약 360곳의 건널목이 보행자 중심의 신호체계로 바꿨습니다.
♦ 차가 더 밀리는 건 아닐까?
차가 밀릴 것이란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통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신호체계가 바뀐 한 건널목을 선정해 시뮬레이션을 해봤습니다. 110초 주행신호를 후에 25초만 보행신호를 줄 때와 주행신호 중간에 보행신호를 한 번 더 줬을 때 건널목 전 교차로에서 건널목 후 교차로를 통과하는 시간을 비교했습니다. 해당 건널목에 대한 정확한 교통량 데이터가 없었기 때문에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한 시간 동안 서울시내 평균 교통량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 교통량은 교통흐름을 알아보는 시뮬레이션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수치입니다. 결과는 보행신호를 한 번 더 준다고 해서 정체가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주행거리는 이 구간의 총 거리는 855m었고 보행신호가 1번일 경우에는 약 573초, 2번일 경우에는 약 574초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시뮬레이션 작업을 진행했던 연구원은 건널목이 교차로와 교차로 사이에 있는 단일로에 있는데, 이런 경우의 교통량은 양쪽에 있는 교차로의 신호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단일로 중간에 있는 횡단보도의 신호는 교통흐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단지 한 번 더 서야하는 ‘불편’이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횡단보도 앞에 있는 교차로에서 차량들이 정체를 하기 때문에 횡단보도 한번을 주던 두 번을 주던 통행시간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모든 건널목의 보행신호를 자주 주거나 늘려도 정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취재팀이 의뢰했던 시뮬레이션도 가장 차가 밀리는 시간의 평균 교통량, 그리고 교차로와 교차로 사이에 있는 단일로에 있는 건널목, 긴 주행신호 등의 특정한 조건에서 얻은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조건이 조금만 달라져도 결과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신호주기를 짧게 입력했더니 보행신호를 두 번 줬을 때 10초 정도 교통흐름이 느려지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 차 VS 보행자 “도심지역 운전자 불편은 불가피하다"
이런 물음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차량흐름에 영향을 주면서까지 보행신호를 자주 길게 주는 게 얼마나 더 많은 이득이 있을지 회의적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씩 생각해 보겠습니다.
택시나 버스와 같은 업무 차량이 도로 정체 등으로 도로에서 허비하는 손실가치는 시간당 1만 8천 365원입니다.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차가 밀려 1시간 더 걸렸다면 1만 8천 365원을 길에 버린 셈입니다. 비업무용 손실비용도 시간당 5천 979원입니다. 교통 혼잡으로 인한 손실비용은 지난 2010년 기준으로 28조 5천억 원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통사고 1명당 드는 사회적 비용도 4억 1천 8백만에 달합니다. 부상자는 470만 원입니다. 물적 피해도 1건당 142만 원입니다. 2012년 기준으로 교통사고로 인해 전국적으로 연간 23조 5천 9백억 원의 손실비용이 든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결국, 차가 밀리면서 생기는 손실과 교통사고로 인한 손실이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겁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있는 교통전문가와 보행자 위주로 신호체계가 바뀌면서 생기는 손실비용을 계산해봤습니다. 신호체계가 바뀌면서 한 건널목에서 자동차에 15초정도 지체시간이 생겼다고 가정했습니다. 신호 1주기에 20대가 지체된다고 가정하면 연간 총 지체시간은 18,250시간입니다. 업무용 차량 기준으로 1개 건널목에 연간 3억 3천만 원의 손실 비용이 나오는 것으로 계산됐습니다. 이 손실비용은 자동차를 기준으로 한 손실비용입니다. 그런데 보행자들도 건널목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리느라 이정도의 손실을 그대로 감수해야 한다고 전문가는 설명했습니다. 보행자가 건널목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리느라 시간을 보내면서도 손실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보행신호 변경을 통해 차가 밀리면 자동차에게도 손실이 발생하지만, 그만큼 보행자와 교통사고로 인한 손실은 줄어듭니다. 결국 판단만 남았습니다. 지금까지 신호체계를 비롯한 모든 도로 정책은 차가 중심이었습니다. 건널목이 있으면 교통흐름이 방해된다고 지하에 지하보도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중심이 차에서 사람, 보행자로 변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2012년 기준으로 보행자 사망률이 39.1%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았다는 점을 다시 주목했습니다. 한 전문가는 아래와 같은 의견을 밝혔습니다.
“ 서울의 경우 좁은 면적에 많은 자동차와 보행자가 움직이기 때문에 보행자 사고율이 매우 높습니다. 보행자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자동차의 속도를 낮추고 보행자에게 필요한 안전체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동차의 속도를 낮추고” 이 언급이 사람중심의 교통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동차를 대체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차를 꼭 운행해야하는 이유가 많이 없어졌다는 겁니다. 서울시 교통정책의 큰 틀은 차의 운행을 억제해 차로 인한 환경오염과 교통사고를 줄이는 쪽으로 변함이 없어 보입니다. 어느 정도 체증을 감수하고도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혼잡 통행료를 징수하거나 보행자 전용 도로를 확대하는 등 보호자 중심의 정책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보행자 중심으로 신호체계도 바뀌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차량대수가 많은 교차로는 차량 지체시간이 증가하기 때문에 신호주기 단축이 불리하고, 보행자가 많은 횡단보도는 반대로 신호주기 단축이 유리하다고 진단합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신호체계를 개편한다고 하면서 각 건널목의 교통량, 건널목 보행량 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올해도 120개의 건널목의 신호체계를 변경하겠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과학적인 근거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야 보행자 중심의 신호체계 변경 정책이 힘을 얻고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지금이라도 신호체계 변경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건널목의 보행량과 교통량 조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