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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도다리 쑥국'보다 못한 증거조작 사건

[취재파일] '도다리 쑥국'보다 못한 증거조작 사건

증거조작 사건 쉽게 이해하기

김요한

작성 2014.02.26 16:22 수정 2014.02.27 16:1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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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도다리 쑥국보다 못한 증거조작 사건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의혹. 대한민국 사법사상 보기 드문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메이저 언론 대부분은 사건을 비중있게 다루지 않습니다. "도다리 쑥국이 봄을 알린다"는 소식을 전한 지상파 메인뉴스들은 증거 조작 사건을 단신으로도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이 도다리 쑥국 보다 뉴스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일까요? 이 사안은 그렇게까지 중요하진 않은 걸까요? 생각할수록 답답합니다.

이 사건은 <간첩>과 <증거조작>을 구분해서 봐야합니다. 전자는 이번 사건의 발단이고, 후자는 거기서 파생돼 나온 것인데 <유우성이 간첩이냐>와 <국정원이 증거를 조작했냐>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유우성이 간첩이든 아니든, 수사기관은 증거를 조작해서는 안 됩니다. 또 수사 기관이 증거를 조작한 것이, 간첩 활동의 면죄부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따라서 사안을 제대로 판단하려면 사실관계부터 명확히 확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검찰도 정치권도, 언론조차도 <사실이 무엇인가>보다는 <누구 편에 유리한가>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국익과 이념 논쟁에 사안의 본질이 가려지고 있습니다. 편 가르기를 잠시 그만두고 사건 내용부터 한 번 살펴봅시다. 판단과 지지는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 유우성은 어떤 사람인가?


유우성씨는 34살, 함경북도 회령 출신입니다. 부모가 화교(중국인 자손)여서 북한에 있을 때 중국인 학교에 다녔습니다. 공부를 잘했던 유씨는 2001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2004년 한국에 오기 전까지 회령의 한 병원에서 의사로 일했습니다. 의사이긴 했지만 월급과 배급이 형편없어 북한과 중국을 오가면서 밀무역과 송금브로커 등을 하며 돈을 벌었지요. 화교여서 중국인 신분을 이용해 비교적 자유롭게 중국과 북한을 드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지인의 권유로 한국행을 결심합니다.

유씨는 2004년 4월, 한국에 왔습니다. 하지만 입국하면서 자신이 화교라는 사실은 숨겼습니다. 화교는 탈북자 지원을 받을 수 없거든요(유씨는 2008년부터 4년간 탈북자 지원금을 2500만 원 정도 받았습니다) 북한 의사 출신인 유씨는 2005년 3월, 대구 가톨릭대학교 약학부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한 달 만에 휴학을 하고 2년 가까이 복권방, 막노동 등을 하며 돈을 벌며 생활했습니다.

2007년 3월, 유씨는 연세대학교 중문과로 편입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각종 탈북자 모임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2011년 연세대를 졸업하고는 서울시청 복지정책과 계약직(마급) 공무원으로 채용됐습니다. 탈북자 출신 1호 공무원이었죠. 그 후로는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 과정도 밟았습니다. 탈북자들 사이에서 유씨는 일종의 롤모델로 여겨졌습니다.


■ 유우성은 간첩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 단정할 순 없습니다. 국정원과 중앙지검 공안1부는 유씨가 간첩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습니다. 근거가 뭘까요? 유씨는 한국에 온 지 2년만인 2006년 5월, 북한에 남아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중국에 사는 외당숙이 연락을 해 왔습니다. 그러자 유씨는 곧장 어머니 장례를 치르기 위해 중국을 경유해 북한으로 들어갑니다. 일반적인 탈북자라면 불가능했을텐데, 화교라 가능했습니다. 중국인 신분으로(유가강) 북한에 들어간 거죠.

국정원은 유씨가 이 시기에 북한 보위부에 포섭돼 간첩이 됐다고 주장합니다. 북한에 들어갔다 붙잡혀서 7일동안 조사를 받다가, 간첩 활동 제안을 받아들여 3일간 정신교육을 받고 한국에 돌아왔다는 겁니다. 그리고 국내에 있는 탈북자 정보를 모아 북한에 넘겼다는 거죠. 국정원은 유씨가 연세대에 편입해서 각종 탈북자 모임에서 활동한 이유도 이 때문으로 봤습니다. 대북송금 브로커를 했던 경력도, 2010년 9월 유씨가 한국 이름을 유광일에서 유우성으로 바꾼 것도 미심쩍게 여겼습니다.

유씨는 1남1녀 중 장남입니다. 여동생은(유가려) 2011년까지 북한에 있다 중국으로 나왔는데, 유씨는 2012년 10월 동생을 한국으로 데려옵니다. 그리고 동생에게도 화교가 아닌 순수한 탈북자라고 얘기하도록 당부했습니다. 국정원은 유씨가 동생과 중국에 있는 친척 등을 통해 간첩활동을 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국정원과 검찰은 유씨의 간첩 혐의를 9가지로 정리해 재판에 넘겼습니다. 그러나 1심에서 9가지 모두 무죄가 나왔습니다. 딱 떨어지는 물증이 없고, 유일한 증거인 여동생 자백도 명백히 거짓말인 경우가 많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물론 재판부도 “유씨가 간첩활동을 한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며 여지는 남겨 두었습니다.(유우성 1심 판결문 45페이지) 다만 검찰이 증거로 입증을 못했으니, 의심만 가지고 유죄를 선고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 검찰 증거가 조작됐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작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아니라 하기엔 이해 안 되는 대목이 너무 많습니다. 일단 중국 정부가 조사한 뒤에 공식적으로 통보했습니다. 중국 대사관은 서울고등법원에 검찰이 제출한 서류 3개가 모두 위조됐다고 통보했습니다. 반면 유씨 측이 제출한 서류 2개는 위조가 아닌 진본이라고 했고요.( 사진 참조 클릭)  도대체 뭐가 어떻게 위조됐다는 건지, 복잡하실 분들을 위해 쉽게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증거조작
                                                 中 대사관 공문 사진


검찰은 1심 재판 도중 중국에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유씨가 북한에 드나든 <출입국기록> 보내달라고요. 하지만 전례가 없다며 거절당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국정원은 수사 초기부터 유씨 출입국기록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비공식적으로 구해서 그 기록을 기초로 수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공식 문서가 아니라 법원에 증거로 낼 수가 없었던 겁니다.

1심에서 무죄가 나자 국정원은 결과를 뒤집어 보겠다며 2심 재판부에 유씨 <출입국기록>을 냈습니다. 유씨 측은 문서가 위조됐다고 문제를 제기했고요. 수사 초기에 봤던 것과 내용이 달라졌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양쪽이 서로 “내 공문이 진짜”라며 중국 공문들을 추가로 내놓습니다. 그렇게 제출된 공문이 검찰 3개, 유씨 2개였습니다. 법원은 제출 서류를 몽땅 중국 대사관에 보냈습니다. 확인해 달라고요. 중국 정부는 조사 끝에 위조라고 결론내렸고요.(** 원칙상 북한은 국가가 아니니 출입경기록이 맞습니다만, 이해를 돕기 위해 출입국이라함을 양해바랍니다)


■ 뭐가 어떻게 조작됐나?

1. 전산 기록이 다를 수가 있나? <출입국기록>
국정원과 유씨는 서로 중국에서 유씨의 <중국-북한 왕래 기록>을 떼 왔습니다. 상식적이라면 전산기록이니 똑같아야 할텐데, 두 군데 내용이 달랐습니다.(2003.9.15 / 2006.5.27) 국정원 기록에는 두 날짜 모두 유씨가 북한에 <들어간> 것으로 돼있고, 유씨 기록에는 중국으로 <나온> 것으로 돼 있습니다. 둘 중 누군가는 프린트 된 기록에 손을 댄 겁니다.

2. 1회용을 두번 썼다고? <통행증 종류>
유씨가 낸 기록을 보면, 어머니 장례치르러 북한에 갈 때 사용한 통행증이 <1회용>이라고 적혀 있습니다.(을종) 1회용이기 때문에 북한에서 장례를 치르고 나왔다가, 그 통행증으로 다시 북한에 갈 수는 없다는 거죠. 하지만 국정원 기록에는 <원본이 없으면 1회용인지 알 수 없다>고 돼 있습니다. 두 공문 모두 삼합세관이(우리로 치면 출입국관리소) 발급한 건데, 완전히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거죠. 국정원은 유씨가 이 때 북한에 가서 간첩으로 포섭됐다고 했으니까, 유씨 주장대로 이 때 북한에 다시 안 간 게 맞다면 간첩 혐의 전체가 허물어지는 겁니다.

3. 그걸 왜 거기서 떼와? <공문 발급 기관>
유씨 출입국기록을 정상적으로 발급받을 수 있는 곳은 연변조선족자치주 공안국입니다.(쉽게 서울시청 쯤으로 이해하시죠) 유씨는 거기서 본인의 출입국기록을 발급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국정원은 화룡시 공안국에서 기록을 떼 왔습니다(서울시청에서 뗄 걸 강남구청에서 떼 온 것쯤 됩니다) 국정원은 출입국관리과 도장을 받아왔는데 화룡시 공안국에는 그런 과가 없습니다. 출입국관리대대가 있을 뿐. 더구나 삼합세관은 용정시 관할입니다(서울출입국관리소가 종로구에 있으니, 종로구청에서라도 받아왔으면 모르겠는데, 강남구청에서 받아왔다는 얘깁니다. 그것도 2군데나 내용이 바뀌었고, 있지도 않은 부서 도장이 찍혀있고… 감이 좀 잡히시나요?)

4. 진짜 중국에서 받긴 한 거야? <공문 생산자>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공문 3개는 모두 중국 심양 영사관의 이 모 영사가 보낸 문서입니다. 그런데 이 영사는 국정원 직원이거든요. 1심 선고가 나기 5일 전에 심양 영사관으로 발령을 받은 인물입니다. 이 영사는 공문을 어떤 경로로 누구한테 받았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진짜로 중국 측에 요청을 해서 받은 건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겁니다. 더구나 이 영사가 국정원에(검찰에) 보낸 3건의 문서 중에서 2건은 심양 총영사의 결재도 없이 전달됐습니다. 검찰도 국정원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딱 부러지는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부차적인 내용들이 더 있습니다만, 큰 줄기는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검찰이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사안인데...

과거 수사기관이 고문과 강요를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고문은 <정당한 증거>인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내 손에 직접 피를 묻히기는 싫고, 형식적으로나마 절차를 지키려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요즘 같은 시대에 수사기관이 직접 증거 자료를, 그것도 외국의 공문서를 위조해 법원을 속이려 했다면 이는 대한민국 사법체계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을만한 일입니다. 검찰총장과 국정원장이 옷을 벗는 것은 물론이고, 검찰 자체가 문을 닫아야 할만큼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참 이상합니다.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국정원은 물론이고 지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검찰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정치권도 언론도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를 애써 꺼리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그러는 사이 사안의 본질은 어디 가고 여느 때처럼 곁가지 공방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답답할 따름입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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