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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최연소 총리는 병든 이탈리아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젊은 총리여 빵을 주세요”

[월드리포트] 최연소 총리는 병든 이탈리아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마테오 렌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질문은 예상 외로 매우 논쟁적이었습니다. 기자는 로마의 한 노천 카페에서 30대 초반의 남녀들에게 이탈리아 총리가 된 렌치에 대해 물었습니다. 당연히 기대감을 표현할 거란 예상은 저만의 순진한 기대로 끝났습니다. 일행끼리 찬성과 반대, 긍정과 우려로 나뉘어 갑론을박 하더니 특유의 허탈한 표정을 짓고 서로 헤어지더군요. 제가 괜한 싸움을 붙인 셈이었습니다. 새 총리를 바라보는 이탈리아인들의 복잡한 심경을 따라가 봤습니다.

마테오 렌치, 올해 39살로 이탈리아 최연소 총리가 됐고 유럽연합에서도 가장 젊은 지도자가 됐습니다. 피렌체에서 태어나 줄곧 피렌체에서 활동했고 2009년부터 피렌체 시장을 지냈습니다. 국회의원은 아닙니다. 지난해 집권당인 이탈리아 민주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중앙 정치 무대에 공식 ‘등록’ 했습니다. 그의 별명은 ‘데몰리션맨’(파괴자)입니다. 끊임없이 기성 정치판을 비판하면서 얻은 겁니다. 로마의 복잡한 정치 양태, 부패와 거리가 있습니다. 종종 청바지와 가죽 자킷을 걸치고 자전거를 타는 정치인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웹, SNS에 능통합니다. 트위터 팔로워는 85만명에 달합니다. 자유분방하고 젊은 층과 소통할 줄 압니다. 이런 정치 스타일 때문에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생겨났습니다. 스캔들로 얼룩진 이탈리아 정치판을 갈아엎어 달라는 거죠. 그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변화”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습니다. 첫 업무부터 참신함을 선보였습니다. 함께 일할 장관 16명을 직접 발표했는데, 평균 나이 47.8세로 역대 최연소 내각입니다. 남녀가 절반씩, 첫 남녀 동수 내각입니다. 첫 여성 국방장관도 등장했습니다.

그럼에도 민심은 ‘50 대 50’으로 갈려 있습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49%는 렌치 정부에 관심없거나 신임하지 않는다고 응답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선거 없이 총리가 됐다는 겁니다. 렌치는 개혁이 지지부진 하다며 전임 레타 총리를 몰아냈습니다. 집권당 내부 의사결정으로 총리를 바꿀 수 있어 법적 하자는 없습니다. 하지만, 유권자의 뜻을 묻지 않고 내부 권력 다툼으로 총리가 됐으니, 렌치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장본인이 된 셈입니다. 지오반니 오르시나 루이스 대학 교수는 “렌치는 선거 없이 총리가 된 원죄가 있다. 원죄는 그를 약화시킬 것이고 효과적인 통치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1992년 이후 렌치를 포함해 9명의 총리가 나왔는데, 2명만 선거를 통해 뽑혔습니다. 유권자들의 불만이 나올 법합니다. 경험 부족도 거론합니다. 행정 경험은 피렌체 시장이 전부입니다. 신임 장관들도 상당수가 행정부 경력이 없습니다. 외무장관은 유럽 외교 무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입니다. 정치적 기반도 취약합니다. 중도파들과 연립정부를 꾸리고 있습니다. 부패 청산을 외치면서도 역설적이게도 탈세로 쫓겨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와 연대해야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탈리아 국민은 렌치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지켜보겠다”는 말을 인터뷰 말미에 꼭 붙였습니다. 렌치가 어떻게 나라를 운영하는지 보고 판단하겠다는 겁니다. 정치 전문가들은 렌치에게 ‘속도전’을 주문합니다. 개혁의 성과를 빨리 보여줘야 정권 유지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확고한 지지기반이 없는 렌치는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100일 개혁’을 꺼내 들었습니다. 2월에는 선거법과 헌법, 3월 노동시장, 4월 행정분야, 5월 세제부문을 개혁하겠다는 겁니다. 이탈리아의 취약점을 하나씩 빠르게 손질하겠다는 겁니다. 선거 없이 총리가 됐지만 정책 능력과 개혁으로 정당성을 얻겠다는 의지입니다. 하지만, 페데리코 정치 평론가는 “개혁 프로그램이 모호하다. 몇 개의 아이디어를 선보였을 뿐 어떻게 실천할지 모르겠다”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렌치 총리는 절망에 빠진 이탈리아에 희망을 불어넣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트위터리안’ 답게 취임식 직전에 85만 팔로워들에게 “힘들겠지만 우리는 해 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청년들은 이 말을 그리 믿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이 한 수많은 약속들이 이탈리아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15살에서 24살 사이 이탈리아 청년의 42%는 직업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말씀이 아니라 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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