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전격 도피로 우크라이나의 정치권력이 야권 주도의 의회로 넘어간 가운데 야누코비치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한 상태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야누코비치 대통령 수배령을 내렸다.
야누코비치는 지난 21일 밤(현지시간) 수도 키예프를 떠나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인 동부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동남부 지역의 지지 세력을 결집해 수도와 서부 지역을 장악한 야권에 맞설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는 달리 아직은 어떠한 저항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23일 한때 야누코비치가 체포됐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내무장관 대행 아르센 아바코프는 이날 야누코비치가 남부 크림반도에서 체포됐다는 언론 보도를 부인하면서 "그러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 우크라 당국, 야누코비치 수배령…체포조 크림반도 도착
아바코프는 이어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야누코비치와 몇몇 공직자들이 민간인 대량 살해 혐의로 형사입건됐으며 그들에 대한 수배령이 내려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동안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도주 행로를 상세히 소개했다. 야누코비치와 경호원들의 통신 내역을 추적한 결과로 보였다.
아바코프에 따르면 야누코비치는 21일 대통령 행정실 실장 안드레이 클류예프와 함께 헬기로 키예프에서 동부 도시 하리코프로 날아갔다. 그날 밤을 하리코프의 대통령 관저에서 지낸 그는 22일 서둘러 현지 TV 방송을 통해 내보낼 대국민 영상 성명을 녹화한 뒤 곧바로 인근 도시 도네츠크의 공항으로 이동했다.
이날 하리코프에서 열린 동남부 지역 의회 연합 대회에 참석할 것이란 예상이 있었지만 대회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야누코비치는 대신 영상 성명에서 야권의 정권 장악 시도를 "쿠데타"라고 비난하면서 "자신은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으로 절대 사퇴하지 않을 것이며 우크라이나를 떠나지도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자신을 몰아낸 야권을 상대로 결사항전하겠다는 태도였다. 하지만 이후로 알려진 소식은 '실망스런' 것이었다. 도네츠크 공항에 도착한 야누코비치는 경호원들과 함께 헬기에서 내려 2대의 민간 전세기로 나눠 탄 뒤 출국을 시도했다.
국경수비대가 출국 서류 미비를 이유로 전세기 이륙을 저지하자 뇌물 작전을 쓰기도 했다. 국경수비대는 "무장한 사람들이 돈을 건네며 서류절차 없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탄 전세기를 출국시켜 줄 것을 부탁했다가 거절당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야누코비치 일행은 도네츠크에 있는 대통령 관저로 가 몇시간을 보냈다.
22일 늦은 밤 대통령 일행은 다시 교통경찰의 호위도 받지 않은 채 크림반도로 출발해 이튿날 반도에 도착했다. 현지에서 야누코비치 일행은 대통령 전용 휴양소가 아닌 민간 휴양소에 여장을 풀었다.
야누코비치는 이후 의회가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신임 의장을 대통령 권한 대행에 임명한 사실과 내무장관과 보안국 국장 권한 대행이 이끄는 체포조가 크림으로 출발한 사실을 알고 24일 새벽 휴양소를 떠나 반도 남부 세바스트폴의 '벨벡 공항'으로 향했다.
하지만 공항에는 이미 아바코프와 발렌틴 날리바이첸코 보안국 국장 대행 등이 도착해 있었다. 이를 눈치챈 듯 야누코비치는 벨벡 공항으로 가던 도중 크림반도 남부 발라클라바 마을에 있는 한 저택에 들러 경호팀을 모은 뒤 누가 끝까지 동행할지 누가 남고 싶은지를 물었다.
이후 공식적으로 국가 경호를 포기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클류예프 실장과 남은 경호원들만을 대동하고 3대의 차량에 나눠탄 뒤 어딘가로 떠났다. 야누코비치 일행이 모든 통신 장비를 꺼버려 이후 행적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 야누코비치, 러시아 망명 시도 중?
크림반도는 러시아계 주민이 많고 친러시아 성향이 강한 우크라이나 내 자치 지역이다. 반도 남부 항구도시 세바스토폴에는 러시아 흑해 함대가 주둔하고 있다. 따라서 야누코비치가 현지에 숨어지내면서 러시아 망명을 시도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정권을 되찾기 위한 결사항전은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끝까지 자신을 따를 것으로 믿었던 지지세력들이 결연한 저항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심지어 등을 돌리는 사태까지 벌어진 상황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야누코비치의 지지 기반인 동남부 지역에선 몇몇 정치인들이 새로 권력을 잡은 기존 야권 세력에 저항하고 있고 일부 주민들이 이들을 지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대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더욱이 야누코비치가 이끌어온 지역당은 이미 그를 배신자로 비난하면서 등을 돌렸다.
지역당은 23일 의회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도주와 소심함, 그의 배신을 비난한다"며 "평범한 시민과 군인, 장교들을 곤경에 빠트린 그의 범죄적 명령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또 "우크라이나는 배신당했으며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야누코비치와 그의 측근들에게 있다"고 선을 그었다.
야누코비치 권력을 떠받쳐 온 '전위대'의 이같은 반응은 그가 이미 대다수 지지 세력으로부터도 버림받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동시에 야누코비치가 취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크게 좁혀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실각 후 도피'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어디에
지지기반 동부지역 도피 후 행방묘연…러시아 망명 시도 중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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