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만 톤씩 불어나는 의료폐기물
의료폐기물 증가세가 무섭습니다. 병원 이용이 늘면서, 배출량은 한해 1만 톤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1년 12만 5천 톤이 소각 등 처리됐는데, 7년 만에 3배나 늘었습니다. 의료폐기물엔 다 쓴 붕대나 거즈 등 일회용 의료기기는 물론, 혈액이나 인체 조직 등 감염 위험이 큰 것들도 포함됩니다. 국내 처리 시스템은 매일 수집 운반업체가 병원 위탁을 받아, 폐기물을 수집해 소각시설로 매일 옮겨주는 방식입니다. 2011년 발생량의 94.7%가 소각 처리됐습니다.
의료폐기물은 감염 등의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보건 환경의 보호를 위하여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고위험성 폐기물로, 폐기물 관리법 2조 5항은 이렇게 정의합니다.
“보건·의료기관, 동물병원, 시험·검사기관 등에서 배출되는 폐기물 중 인체에 감염 등 위해를 줄 우려가 있는 폐기물과 인체 조직 등 적출물(摘出物), 실험동물의 주검 등 보건 · 환경 보호 상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폐기물을 말한다.”
이런 폐기물은 무조건 이동거리가 짧아야 좋습니다. 교통사고로 말미암은 폐기물 유출 위험이 적을수록 2차 감염의 위험이 줄어듭니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수집운반 차량의 내부 적재함 역시 영상 4도 이하의 냉장 보관이 원칙입니다. 차량 내부는 사용 때마다 청소와 소독이 의무화돼 있습니다.
이달 초 8 뉴스 기동취재에서 청소와 소독 실태를 점검했습니다. 단속반과 함께, 경기도의 한 소각시설에서 운행이 끝난 차들을 점검했습니다. 소독이 제대로 안 된 차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혈흔이 묻어 있고, 다 쓴 주사기와 약병이 나뒹구는 차도 발견했습니다.
(2월 7일 SBS 8뉴스, 나뒹구는 주삿바늘…의료폐기물 처리 '꼼수')
서울시 민생사법경찰이 지난해 하반기 확인한 실태는 더 심각합니다. 지난해 10월 S 산업 서너 군데 병원서 의료폐기물을 거둬간 뒤, 한 개 상자에 다시 담아 재포장했습니다. 문제는 이 상자가 종이상자라는 점입니다. 주사기나 바늘 등 사람이 찔리면, 간염 등 바이러스성 질환을 유발하는 것들은 손상성 폐기물로 지정돼 있습니다. 사고에 대비해 플라스틱 밀폐용기로 옮기게 돼 있습니다. 플라스틱이라 찔릴 위험도 없고, 한번 닫으면 열리지 않는 용기입니다. 하지만, 이 업체는 붕대 같은 일반 의료폐기물과 손상성 폐기물 6개를 1개의 상자에 한데 모아 운반했습니다. 심지어 태반 등 조직 물류폐기물 역시 종이상자에 옮겨오다 적발됐습니다.
이런 위험천만한 꼼수의 목적은 단 하나, 비용절감입니다. 플라스틱 밀폐용기는 7배나 비싼데, ‘어차피 소각될 거 값싼 종이상자로 옮겨만 주면 된다.’라는 식입니다. 용기가 비싸니까 재사용도 빈번합니다. 서울 소재 Y 업체는 2011년 7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650개 병원에서 나오는 손상성 폐기물 21톤을 재사용한 용기로 날라 오다, 형사 입건됐습니다.
적발된 업체 가운데는, 냉동 태반을 녹여 한데 합쳐 처리한 곳도 있었습니다. 시 민생사법경찰은 “조직 물류폐기물인 동태 반을 불법 개봉하여, 상온에서 녹인 뒤 다시 한곳에 합쳤고, 이렇게 합친 걸 주삿바늘이나 거즈, 붕대와 함께 운반한 곳도 있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런 불법은 차량 내부나 임시 창고에서 자주 반복됐습니다. 그나마 사용된 밀폐용기는 대부분 재사용 용기였습니다. 시 민사 경은 “2차 감염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매일 200km 넘게 달려 소각… 규제는 없다
의료폐기물은 매년 늘고, 운반 실태 역시 심각하지만, 위탁 처리시설은 일부 지역에 편중돼 있습니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실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2012년 병원폐기물 배출량 상위 2,000개 병원의 처리실태를 분석했습니다. 상위 2,000개 의료폐기물은 전체 폐기물의 88.4%를 차지합니다. 분석 결과, 11만여 톤의 병원폐기물 발생량 가운데, 42.1%인 49,088톤이 소각을 위해 100km 넘게 차로 옮겨지고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21.2%인 2만 4천여 톤은 이동거리가 200km를 넘었습니다.
실제 서울 북부에 있는 한 대형 대학병원은 경북에 있는 소각장으로 매일 아침 병원폐기물을 보내고 있습니다. 반대로, 부산에 있는 한 대형병원은 280km 떨어진 경기 남부 소각시설로 병원폐기물을 운반해 처리하는 실정입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의료폐기물의 장거리 운송·처리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의료폐기물을 배출하는 병원들은 비용만 싸다면, 전국 어디든 폐기물 처리를 맡기는 실정입니다.
주무부처인 환경부의 입장은 뭘까요. 요약하면 ‘잘 관리되고 있으니, 대책 마련이 절실하진 않다.’라는 겁니다. 환경부는 “의료폐기물의 발생량이 지속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나, 운반과정에서의 안전관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갖춰져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규정상 2중 전용용기에 넣어 밀봉 상태로 4℃ 이하 밀폐된 냉장 차량으로 운송하도록 의무화돼 있는데, 이는 외국의 운반기준과 유사하거나 강화된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국회와 시민단체의 인식은 정반대입니다. 먼 거리를 달리는 수송차가 많은 탓에, 폐기물 누출이나 전염병 확산 등 장거리 운송으로 말미암은 2차 사고 위험이 커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선 의료폐기물의 권역별 처리제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전국을 서너 개 권역으로 나눠, 권역 내 폐기물은 그 안에서 이동과 소각을 하도록 제한을 두자는 겁니다.
현재 의료폐기물 지정소각장은 경기지역 3개, 경북엔 5개가 있습니다. 그 밖에 충남엔 2개, 경남과 부산, 전남, 울산, 충북엔 1개뿐입니다. 인근 지역 주민의 반대로, 십수 년째 새로 생긴 폐기물 소각장은 거의 없습니다.
환경부는 왜 소극적인가
환경부는 그러나, 이런 논의에 대해서도 부정적입니다. 의료폐기물 처리시설이 일부 지역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권역별 처리제를 도입하면 원활한 처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EU, 일본 등 선진국도 권역별 처리를 하지 않고 있고, 세계보건기구(WHO)도 이동거리 제한을 권하진 않는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환경부의 소극적인 입장은 타당한 걸까요. 의료폐기물의 급증세에 비춰볼 때, 규제를 강화하고 제도를 손질할 필요는 없는 걸까요. 환경부의 이런 입장을 두고, 업계에선 15년 전 폐기물 규제 강화의 역사를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지난 1999년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의원을 중심으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선 병원폐기물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폐기물 관리법 개정이 추진됐습니다. 병원폐기물은 감염의 위험이 큰 폐기물이기 때문에, 다른 폐기물과 사업장과 시설을 완전히 분리하여 별도로 처리해야 한다는 게 골자였습니다. 당시 환경노동위 여야의원 대부분 공동발의에 동참했습니다.
하지만, 이 법안에 대해서도 당시 환경부는 반대했습니다. 다른 산업폐기물과 함께 처리해도 병원폐기물 안전관리에 문제가 없고, 외국에도 그런 규제가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결국, 법안은 통과됐고, 병원폐기물 규제는 강화됐습니다.
의료폐기물 권역별 처리제는 이번 국회 환경노동위의 뜨거운 감자입니다. 15년 전처럼 의원 대부분이 법 개정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도 역시 법 개정의 필요성을 호소합니다. 우연인지 몰라도, 15년 전 폐기물 규제 강화를 반대한 주무과장은 지금의 윤성규 환경부장관입니다. 국민 안전이 현 정부 최대 화두인 지금, 환경부가 이 문제를 계속 미적지근하게 내버려둘지, 여러모로 관심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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