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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선 음악저작권협회장 "1천 200억 징수액 회계 공개"

"문턱이 낮은 만만한 협회가 돼야합니다. 베일에 가려진 철옹성은 더 이상 안됩니다."

20일 한국음악저작권협회(KOMCA, 이하 한음저협) 신임 회장에 취임한 작곡가 윤명선(47) 씨는 4년 임기 동안 회원들(작사, 작곡, 편곡자)이 신뢰할 수 있는 친절한 협회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마포에서 인터뷰한 윤 회장은 "1천 200억 원 규모의 저작권 징수액 회계를 오픈하고 직원 교육을 강화하는 등 회원이 바라는 100가지를 고쳐 임기 내 일본의 (저작권 단체) 자스락(JASRAC)을 능가하는 신뢰와 믿음의 협회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협회를 쇄신하려면 자신부터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협회장의 임금을 30% 삭감하기로 했다.

해외 출장 시 비행기 좌석과 숙박업소 등급을 낮추고 휴대전화료 지원을 반납하는 등 회장의 경비와 업무추진비도 삭감했다.

취임 전 한 달 동안 협회를 단장하며 직원들과 함께 빗자루도 들었다.

"제가 빗자루를 들고 화장실 청소를 한 건 직원들이 1만 7천 명 회원들을 위해 이렇게 뛰어달란 마음에서였어요." 또 최근 서태지컴퍼니를 찾아가 과거 서태지가 한음저협과 신탁 계약을 해지한 과정에서 아티스트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점을 사과했다.

서태지는 협회가 자신의 노래 '컴백홈'을 패러디한 가수의 음반을 사후 승인하자 반발해 2002년 협회에 계약 해지 의사를 밝혔고 2003년 법원에서 신탁관리금지 가처분결정을 받아냈다.

윤 회장은 "앞으로 새롭게 바뀔 협회를 믿어달란 차원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이번 선거에서 내건 공약의 핵심은 1천200억 원의 저작권 징수액 회계를 매월 협회 홈페이지에 공개해 투명한 분배 시스템을 실현하겠다는 것.

그는 "음악저작권을 관리하는 비영리 신탁 단체여서 영업 비밀보다 회원들의 알 권리가 우선"이라며 "협회 회계를 투명한 유리관 안에 넣어 회원들이 자신의 저작권료와 협회가 떼는 수수료가 어떻게 산출되는지 등의 명확한 답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12월 '대한음악저작인연합회'(대표 백순진)를 음악 저작권신탁관리업 신규 허가 대상자로 선정해 올해는 독점 구조에서 경쟁 체제에 돌입하는 시점이다.

그는 "대응책은 오직 신뢰뿐"이라며 "저작권 징수 시장 확대를 위해 새 단체와 힘을 합할 부분은 공조하는 등 음악 저작권자들을 위해 발맞춰 갈 것이다. 선의의 경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 시대에 발맞춰 저작권 미래 연구소를 만들 계획이다.

그는 "미래의 저작권을 분석하고 예측할 젊은 연구원들을 육성해 (저작권 징수액) 3천억 시장을 달성하는데 기여하고 협회가 나아가야 할 로드맵을 그릴 것이다.

현재 20여 개 해외 저작권 단체와 상호 계약을 맺고 있는데 K팝의 해외소비가 많은 만큼 중국 등 저작권이 미비한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40대에 협회장에 당선된 윤 회장은 이번 선거에서 젊은 회원들의 표심을 사로잡았다.

그가 작곡가뿐만 아니라 가수, 매니저, 음반제작자 등 음악업계 다양한 직업을 두루 거쳐 현실을 잘 파악한다는 평가였다.

그는 장윤정의 히트곡 '어머나'를 비롯해 이승철의 '서쪽 하늘', 김장훈의 '허니', 이루의 '까만 안경', 윤미래의 '떠나지마', 슈퍼주니어T의 '로꾸거!!!' 등을 작곡했다.

그러나 다양한 이력으로도 유명하다.

경기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그는 재학 시절인 1987년 'MBC 신인가요제'에 나가 장려상을 탔고 1988년 1집 '윤명선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이러한 경력으로 1988년 12월 해군홍보단에 입대해 35개월간 복무했다.

당시 내무반 동료들이 김건모, 추가열, 김용만, 지석진, 심현섭 등이다.

그는 '제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은상 출신 가수 정혜선(지금의 아내) 씨를 만나며 제작자가 돼 여자 친구의 음반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992년 '아껴둔 사랑을 위해'를 부른 이주원의 매니저로 입문했다.

이후 배우 장동건과 최진영, 방송인 김승현 등을 거쳐 1994년 박진영의 1집 '날 떠나지마' 때부터 박진영의 매니저로 일했다.

당시 그의 별명은 '경옥고'였다.

음반 홍보를 위해 1년간 오전 6시30분에 나가 전 방송사를 다니며 한방 음료 경옥고를 돌렸기 때문이다.

1999년 그는 김사랑의 1, 2집 제작에 손댔다가 실패하고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했다.

그전에도 작사는 했지만 작곡 데뷔작은 2001년 발표된 심수봉의 '진실 그 사랑'.

이 밖에도 그의 노래를 부른 가수는 조용필('빛'), 김현정('나보다 널'), 장나라('물망초'), 보보('청혼'), 김혜연('화난 여자') 등 수십 명이다.

한창 곡을 쓰면서 그는 아트 매니저로도 일했다. 설치미술가 장승효를 전속 예술가로 계약해 작품 중계 일을 4년간 했다.

2001년 광주 도자기 엑스포, 2002년 오송 국제 바이오 엑스포 등에 그의 작품을 설치했다. 이후에도 그는 그룹 삼총사, 가수 이불, 마골피 등의 음반을 제작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는 작사, 작곡가들을 비롯해 가수, 매니저 등 음악 업계에서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인 이들을 숱하게 봤다.

그는 "대한가수협회, 한국연예제작자협회 등의 음악 단체들과 손잡고 업계 종사자들을 위한 '한류 복지'를 구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원로 선배님들뿐만 아니라 작사·작곡가, 가수, 매니저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요계 종사자들이 많아요. 업계와 힘을 합해 이들을 위한 복지 재단 설립에 나설 겁니다.

연예인의 재능 기부를 유도해 공연 등을 통해 재단 예산을 확보하는 등 민간 차원에서 복지를 해결하는 시도를 해볼 겁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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