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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2년 만의 '유서대필' 무죄…사법부는 언제 사과할까?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 대한 '당시 취재기자'의 기억과 변명

[취재파일] 22년 만의 '유서대필' 무죄…사법부는 언제 사과할까?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습니다. 재심 판결이 선고된 목요일 오후 지방을 다녀왔는데, 기차 속에서 계속 그 사건 생각을 했습니다. 이 글은 정말 오래 전 이야기, 그야말로 과거의 취재 기억에서 끄집어 낸 '취재 파일'입니다.

1991년, 처음 기자가 된 뒤 곧바로 법조에 배치되어 마주쳤던 게 바로 이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법조에 갔을 때는 이미 한창 재판이 진행 중이었죠. 당시 법조팀장이던 신경렬 선배가 저를 앉혀놓고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사건이라며 같이 실체를 밝혀보자고 열변을 토하던 기억이 납니다. 신 선배랑 같이 이른바 외곽 취재를 한다고 돌아다녔던 기억도 몇몇 장면만 납니다. 취재가 잘 안 되어서 절두산 근처 한강변에서 같이 강바람 쐬던 기억도 납니다. 그 때 누굴 만나 뭘 취재하려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말입니다. 저는 막 입사한 그야말로 신출내기 기자였고, 신생 SBS의 법조팀장이던 신 선배도 입사 6, 7년차 정도였던, 그야말로 아스라한 옛날 이야기입니다. 돌이켜보면 그 긴 시간을 강 씨는 유서를 대필해준 '자살방조범'으로 살았습니다.

서울형사지법 대법정에서 본 강기훈 씨는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변호인들도 왜 강 씨가 좀 더 법정에서 검찰의 논리에 좀 더 강하게 반발하지 않았는지 아쉬움을 토로할 정도였습니다. 자기들 같았으면 법정에서 소리도 지르고 펄펄 뛸 것 같은데 말입니다. 글쎄요. 그건 정말 사람의 성격 아닐까요.

어쨌든 강 씨는 지켜보는 사람들이 ‘설마, 설마’ 하는 가운데, 그렇게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1심을 맡은 서울형사지법 합의 25부 재판장은 노원욱 부장판사였습니다. 자료를 보면 강 씨가 유죄판결이 선고되자 재판장에게 “창피하지도 않느냐”며 고함을 질렀다는데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선고 내용을 최대한 빨리 기사로 쓰기 위해 당시 12층에 있던 기자실로 달려가야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1심 선고가 난 1991년 12월 20일은 라디오 방송만 하던 SBS가 처음으로 TV 방송을 시작한 지 이틀째였습니다.

그런데 불과 얼마 뒤에 강 씨 판결의 결정적 근거가 됐던 필적 감정을 한 국과수 김형영 문서분석실장이 다른 사건에서 돈을 받고 허위 감정을 한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항소심에서 강 씨의 유죄 판결이 뒤집어질 거라는 예상을 했습니다. 하지만 1992년 4월, 서울고등법원은 두 사건은 별개라며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당시 서울고법 형사2부 재판장은 임대화 부장판사였습니다.

저는 김기설 씨의 자살 이후 어수선한 공안 정국 속에 열렸던 1심보다 이 고법 판결이 이 사건에서 결정적이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몇 달 뒤인 1992년 7월, 대법원은 강 씨에 대한 유죄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당시 주심은 박만호 대법관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공소유지를 했던 검사들은 이후에도 승승장구했습니다. 당시 부장검사였던 강신욱 씨는 검찰 몫으로 대법관을 지냈고, 신상규 씨는 고등검사장, 남기춘 씨는 검사장을 거쳐 변호사로 일하고 있지요. 당시 지휘 계통을 통틀어 현역으로 공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 최고위 인사였던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입니다. 법정에서는 신상규 전 검사장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이후 이 사건을 잊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가끔씩 강 씨와 관련된 소식들이 흘러나왔지만 그때마다 재판 때 일을 잠깐씩 떠올리는 게 전부였습니다. 강 씨는 가석방 혜택도 없이 형기인 징역 3년을 꼬박 채우고 출소했고, 저의 관심 밖으로 멀어졌습니다. 그러다 그의 재심 관련 소식, 그리고 간암 투병 중이라는 소식, 병세가 깊은데도 대법원의 재심 여부에 대한 결정이 늦어져 애를 태우고 있다는 소식 등이 잇달아 전해졌습니다. 그나마 그 사건에 계속 관심을 놓지 않고 소식을 전해준 분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 대통령_500
안현수 선수의 러시아 귀화를 둘러싸고 ‘체육계 부조리’를 언급하고 이튿날 사회안전분야 업무보고에서는 ‘염전 노예’ 문제를 거론한 박근혜 대통령은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뒤흔들고 그 주변 가족과 친지들에게 돌이키기 어려운 고통을 준 이 유서대필 사건의 무죄 판결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이 없었습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 지금 자신의 비서실장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그래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권력의 작용으로 큰 피해를 당한 사람에 대해 안타까움이라도 표명하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요. 검찰이 재상고를 검토하고 있다는데 결국 이 사건은 다시 재심 결정을 포함해 세 번째로 대법원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어쩌면 그게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유죄를 확정했던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하는 것이 그나마 이 사건을 역사적으로 확실히 매듭지을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법원 캡쳐_500
재심을 맡은 서울고법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강 씨에게 아무런 유감 표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재판을 사람이 하는 한 오심 가능성은 항상 있습니다. 그래서 3심 재판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번처럼 재심도 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유죄가 무죄로 뒤바뀌는 경우, 당사자가 고의로 허위 자백을 하는 등 잘못을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억울하게 3년의 옥살이에 평생을 그 누명의 그늘에서 고통을 받은 사람에 대해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사법제도는 사과를 했어야 마땅합니다. 당시 검사들과 판사들, 그리고 검찰과 사법부의 사과는 무죄 판결이 확정된 뒤를 위해 잠시 미루어 놓은 것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강 씨가 검찰과 법원을 제외하고, 언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모릅니다. 애초에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재심 무죄 판결이 이 정도의 주목을 받는 데 그치고 있는 것에 별 신경을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수많은 기자들 중의 한 사람인 제가 이런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더욱 중요한 일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기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무기력하게 지켜봤던 이 사건이 그래도 이렇게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는 모습이 저에게 얼마나 큰 안도와 위안을 주고 있는지 모를 겁니다. 혹시라도 동료들, 특히 후배 기자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그들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 접할 사건들을 다룰 때 조금이라도 더 진실에 다가가려는 애착과 책임감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치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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