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우리 사회 '가난'에 대하여…(3)

연탄가스 중독사고로 가장을 잃은 가정의 이야기

[취재파일] 우리 사회 '가난'에 대하여…(3)
지난 해 11월 22일, 충북 청주에 있는 한 가정에서 연탄가스 중독사고가 일어나 60살 가장이 숨졌습니다. 방 두 칸짜리 작은 집에는 두 개의 방 사이 커다란 연탄난로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사건이 일어난 밤 이 난로 연통 틈새에서 가스가 누출된 겁니다. 남편의 동료가 아침 일찍 함께 일을 나가려고 이 집에 들렀다가 온 가족이 가스에 중독된 채 쓰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고 합니다. 모두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남편은 깨어나지 못한 채 숨을 거뒀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쯤 지난 지난 해 12월 그 가정을 찾아갔습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 아닌가 싶어 조심스러운 마음이 컸는데, 홀로 남겨진 부인은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응해 주었습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다 보니 고인에 대한 추모와 슬픔의 시간은 빨리 흐르고 대신 생존에 대한 고민과 근심이 눈 앞에 성큼 다가와 있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고인의 부인은 긴 한숨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지역난방이 들어오지 않는 집에는 등유보일러가 설치돼 있었지만, 고물상 일을 하던 고인의 벌이로는 보일러 기름값을 도저히 감당해낼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늘 기름은 한 번에 2만원이나 3만원어치씩 사다가 꼭 필요할 때에만 조금씩 아껴 사용하고 난방에는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 새어 들어오는 외풍을 막기 위해 창과 문마다 에어캡을 붙이고, 창문 위에는 두꺼운 겨울 옷들을 겹겹이 걸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냉기를 몰아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추위를 피하려고 연탄난로를 들여놨는데,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진 것이었습니다. 필리핀 출신으로 결혼 후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는 고인의 부인은 남겨진 십대 딸 둘과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고 했습니다. 사고 이후 이 가정에서 위험한 연탄난로는 사라졌지만, 그 빈 자리에는 차디찬 냉기가 가득했습니다.

이렇게 한겨울 추위에도 난방을 하기 어려운 저소득층, 달리 말해 난방이나 취사 등 에너지 구입에 쓰는 비용이 가구 소득의 10%가 넘는 이른바 ‘에너지 빈곤층’이 우리나라에 200만 가구에 육박합니다. 겨울철 일정 수준 이상의 난방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빈곤 가운데서도 ‘에너지 빈곤’의 문제를 따로 들여다 봐야 한다는 게 선진국들의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문제는 저소득층일수록 단열이 제대로 안 되는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여 있는데다 지역난방 등 비교적 저렴한 난방수단이 지원되지 않는 곳에 사는 경우가 많아, 저소득층이 오히려 고소득 중산층보다 에너지 구입비용을 더 많이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겁니다. 게다가 등유나 LPG처럼 저소득층이 주로 사용하는 난방 연료의 경우 근래 몇 년 동안 가파르게 가격이 상승해 가난한 이들의 시름을 더 깊게 하고 있습니다.

대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에너지 구입비용을 지원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해 주택의 에너지 효율을 끌어 올리는 것입니다. 정부도 관련 사업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지만, 그 대상이 너무나 제한돼 있어 정책의 효과를 체감하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다른 많은 복지 문제도 그렇지만, 필요한 건 보다 많은 예산과 효율적 집행입니다. 그리고 예산을 제대로 마련해 집행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공감대와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일부 산동네에 연탄만 가져다 주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더불어 에너지 빈곤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이 너무 적고 느리다면 민간 차원에서도 이들의 겨울나기를 돕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을 겁니다. 추운 겨울 밖에서 꽁꽁 언 몸이 집에 들어가는 순간 따뜻한 온기와 만날 때 저는 작은 행복을 느낍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그런 작은 행복을 주변의 소년소녀 가장들, 홀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 혼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그리고 장애인 가정에 나눠줄 수 있다면 이 또한 정말 따뜻하고 보람 있는 나눔이 되지 않을까요?

p.s. 사단법인 기아대책 (후원계좌 국민 524901-01-135734 / 전화 02-2085-8322/ childlove@kfhi.or.kr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