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물론,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아마 대다수는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하실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사회부 기자로 근무하면서 기가 막힌 사기범죄부터 흉악한 살인사건까지 두루두루 접했지만, 이번 사건은 적지 않게 당황스러운 게 사실이었습니다.
“시신이 어떻게 7년 동안 썩지 않을 수 있었지?”, “정말 온 가족이 시신을 살아 있는 것처럼 대했던 것일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일부 언론을 통해, “약사가 남편의 시신을 방부 처리한 뒤 보관해 왔다.”라는 보도가 나오며, 이 사건은 정신적으로 이상한 가족들이 벌인 일종의 ‘엽기적인 사건’이란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도대체 지난 7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이들 가족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7년 만에 집 밖으로 나온 남편
이 사건이 처음 세상이 알려진 건 지난해 12월 말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제보로 경찰이 이 집을 방문하면서였습니다. (당시 가족들이 집 문을 열어주지 않아, 경찰이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이 집안 거실에서 발견한 건, 어느 중년 남성의 시신이었습니다. 발견 당시 시신은 조금 부패한 상태였지만,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옷도 깔끔하게 다 입고 있었고 보존 상태도 매우 양호했습니다.
확인 결과, 숨진 채 발견된 중년 남성은 환경부 고위공무원(3급)을 지낸 50살 신 모 씨였습니다. 경찰조사 결과, 신씨는 지난 2007년(당시 43살) 간암이 심해져 요양이 필요하다며 휴직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1년 뒤인 2008년엔 증세가 더 심해 져 결국 직장을 떠난 것으로 기록돼 있었습니다. 경찰은 즉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 부검을 의뢰하고, 아내 조씨를 불러 상대로 신씨가 타살됐는지 등을 조사했습니다. 하지만, 어디서도 신씨가 누군가에게 타살됐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조사과정에서 아내 조씨에게서 충격적인 얘기를 듣게 됩니다. 조씨가 “남편이 살아 있다고 믿는다.”라고 진술한 것입니다. 조씨는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밥을 안 먹어서 이상했지만, 아파서 누워 있다고 생각했다 ‘라고 진술했습니다. 또, “기도를 열심히 하면 남편의 병이 나을 것으로 믿었다.”라고도 말했습니다. 실제로 조씨와 자녀 세 명(대학생, 고등학생, 초등학생), 시누이(숨진 신씨의 누나)는 등교하거나 외출할 때마다 “'잘 다녀오겠다.”라고 인사하는 등 시신을 실제 살아 있는 사람처럼 대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1. 남편 신씨는 언제, 어떻게 숨졌나?
국과수는 부검을 통해선 남편 신씨가 사망한 시기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병원기록을 토대로 신씨가 숨진 시기를 추정했습니다. 간암 말기 환자였던 신씨의 마지막 병원기록은 지난 2006년 상반기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치료받은 것이었습니다. 당시 의료진은 신씨가 짧으면 6개월, 길어야 1년을 넘기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이 무렵 남편 신씨는 병가 휴직을 냈습니다. 또, 2008년 초엔 가족이 신씨의 병이 심해져 더는 직장을 다닐 수 없게 됐다며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를 근거로 경찰은 신씨는 2006년 말에서 2007년 초에 숨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2. 약사인 조씨는 남편의 시신을 방부처리 했나?
숨진 지 7년이 지났는데도, 어떻게 시신은 미라처럼 썩지 않고 잘 보존돼 있었을까요? 경찰은 조씨가 약사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전문지식을 이용해 남편의 시신이 썩지 않게 약물 등을 투여하지 않았을까 의심한 겁니다. 하지만, 조씨는 이런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습니다. 국과수도 “부검결과, 타살이나 시신을 방부 처리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라고 밝혔습니다.
법의학 전문가들도 조씨가 시신을 방부 처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윤성 서울대 의대 법의학과 교수는 시중에서 방부 약품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설사 약품을 구한다고 해도, 굵은 혈관을 잘라 피를 다 빼낸 뒤 약을 투입해야 하는데 전문지식이 있는 약사라고 해도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으면 이를 시행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게다가, 방부 약품은 눈이 따가울 정도로 냄새가 독해, 만약 시신을 방부 처리했다면 가족들이 집안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기가 어려웠을 거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럼, 약물처리를 하지 않은 시신이 어떻게 썩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전문가들은 숨진 신씨의 ‘당시 건강상태’와 ‘숨진 시기’에 주목했습니다. 이숭덕 서울대 의대 법의학과 교수는 시신이 썩지 않고 미라처럼 되려면, 몸 안에 수분이 없고 주변 온도가 낮아 사망 초기에 부패가 진행되지 않아야 하는데, 신씨의 당시 상황은 여기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고 말합니다. 신씨는 당시 말기 암환자로 영양상태가 안 좋아 몸 안에 수분이 매우 적었을 것이며, 사망 추정 시기가 추운 겨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시신이 썩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현창림 제주대 의대 병리학과 교수도 당시 환자의 건강상태를 볼 때, 온도를 낮춰 몸 안의 세포가 썩는 걸 막았다면 시신을 원형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아울러 사망 초기에 시신이 미라처럼 말라버리면, 이후에는 특별한 조처를 하지 않아도 보관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외국은 물론 조선 시대 시신도 이렇게 미라로 발견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결국, 여러 정황으로 미뤄볼 때, 남편 신씨의 시신은 자연스레 썩지 않고 미라처럼 원형이 보존 된 것으로 보는 게 적합할 거 같습니다.
3. 가족들은 왜 신씨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앞서 설명해 드린 것처럼, 아내 조씨를 비롯한 가족들은 숨진 신씨를 실제 살아 있는 가족으로 대하고 지냈습니다. 아내 조씨는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이고, 자식들도 모두 대학생과 고등학생들로 가족의 생사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지적 수준이 낮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들은 신씨의 시신을 가족처럼 대하며 지냈을까요?
취재과정에서 저희가 주목했던 건 신씨가 운영하는 약국과 신씨가 직접 지었다는 집(빌라)의 이름이었습니다. 약국과 집의 이름은 성서에서 ‘예수가 부활한 이후, 두 제자를 만난 곳’이라는 뜻의 단어였습니다. 그만큼 이들 가족의 신앙심이 깊었다는 걸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들 가족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집 근처 성당을 열심히 다니고 있었습니다. 조씨도 경찰조사에서, “기도를 열심히 하면 남편의 병이 나을 것으로 믿었다.”라고 진술했습니다. 이웃들도 숨진 신씨가 매우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로 가족과 같이 성당을 열심히 다녔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토대로, 전문가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충격을 지나치게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생긴 일종의 ‘병적인 증세’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가족이 죽으면 시신을 처리할 일정한 시기가 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시기를 놓치면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숨진 신씨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신씨에 대한 애정 혹은 집착이 심해서 죽음을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아이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고모랑 엄마가 매일 시신을 닦아주고 말을 걸고 하면, 아이들 입장에서도 죽었다는 개념이 모호해질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살아 있다고 하니, 죽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인지 왜곡’이 발생하게 된다. 일종의 ‘네크로필리아’(시체 애호증)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인정하지 않게 된 것이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준영 서울대 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충격이 ‘분열형 성격장애’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큰 정신적 충격으로 잘못된 생각에 집착하게 되고, 비현실적인 ‘마법 같은 사고’를 집요하게 추구하고 결국, 왜곡된 현상을 ‘사실’이라고 믿게 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4. 7년 동안의 동거는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게 됐나?

“조씨와 성당을 함께 다니던 이 모 씨란 사람이 있다. 남편 신씨의 병이 깊어지자, 이씨가 조씨에게 기도를 열심히 하면 남편을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조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이씨의 말을 듣고 기도를 열심히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기도하는 횟수와 정도가 심해졌다. 여기에 조씨의 시누이(숨진 신씨의 누나)까지 기도에 빠지며 일이 걷잡을 수 없이 너무 커져버렸다. 결국, 이들은 남편 신씨가 죽지 않고 살았다는 환상에 빠지게 됐다.” 한마디로 남편을 살리기 위한 기도가 지나쳐 그릇한 믿음을 가지게 됐다는 겁니다.
이 제보자의 지인은, 경찰에 제보한 것은 이들을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말을 이었습니다. “2년 전쯤, 조씨의 남편이 숨진 사실을 나랑 제보자가 알게 됐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자고 조씨에게 얘기했지만, 이미 그때는 늦은 상태였다. 조씨는 남편이 살아 있는데 무슨 장례냐고 어이없어 했다. 결국, 경찰에 이 사건을 알릴 수 밖에 없었다.”
엽기적인 범죄 혹은 지극한 사랑
경찰이 신씨의 시신을 발견한 며칠 뒤, 조씨 가족은 남편이자 아버지인 신씨를 7년 만에 가족 품에서 떠나 보내줬습니다. 연말 차가운 칼바람을 맞으며, 조씨 가족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사실, 저희도 이번 사건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지, 취재하는 내내 고민이 많았습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가족들의 엽기적인 범행’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지 못한 가족들의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봐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어제 새벽 조씨 집 앞에서, 후배 기자와 이 문제에 대해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기자로서 시청자들 여러분께 객관적이고 정확한 사실관계만 전달하는 게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판단은 시청자 여러분들의 몫이라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한 마디 사족을 달자면, 엽기적이고 끔찍한 사건을 자주 접하며 차가워진 제 마음에도 아련한 바람이 불어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취재과정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 못 건넨 조씨 가족들에게도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경찰은 조만간 아내 조씨를 ‘시신 유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입니다.)
※ 취재과정에서 이윤성, 이숭덕 교수(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이준영 교수(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현창림 교수(제주대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이수정 교수(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곽대경 교수(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금주 교수(서울대 심리학과)의 자문과 화강윤 수습기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