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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징역 13개월’과 맞바꾼 ‘간첩죄 인정’…스티븐 김의 협상

인생을 건 모험 대신 13개월 수감을 선택하다

[취재파일] ‘징역 13개월’과 맞바꾼 ‘간첩죄 인정’…스티븐 김의 협상
지난 2010년 8월, 미국 정부는 재미교포 스티븐 김 박사(한국명 김진우)를 이름도 무시무시한 간첩법 (Espionage Act) 위반 혐의로 기소합니다. 처음엔 FBI에 체포가 됐었는데 1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집에서 25마일(약 40킬로미터 정도) 이내로 이동을 제한하는 조건으로 겨우 풀려났습니다. 최대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 국방 관련 정보의 불법 유출 혐의와 함께 최대 징역 5년 형을 받을 수 있는 허위 진술 혐의가 적용됐습니다.
스티븐 김 기소장
<미국 연방 검찰이 워싱턴 D.C. 법원에 제출한 김 박사에 대한 기소장의 일부>

당시는 매닝 일병이 위키리크스에 방대한 국방 외교 관련 자료를 유출한 혐의로 체포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이른바 내부 고발자 문제로 온 미국이 시끄러울 때였죠. 미국 연방 정부가 '정보 유출' 문제에 과민해지기 시작할 무렵입니다.

그럼 김 박사의 간첩법 위반 혐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미국 연방 법무부에 따르면 김 박사는 "미국을 위험에 처하게 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북한의 군사적 능력과 대비태세와 관련한 1급 기밀이나 민감한 정보를 기자에게 고의로 누출했다"는 겁니다. 적국이나 외국 기관 등에 정보를 넘겨준 것도 아니고 미국의, 그것도 매우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폭스 뉴스의 기자에게 북한 관련 정보를 알려줘 기사가 나오게 했다는 게 김 박사의 간첩법 위반 혐의라는 겁니다.

폭스 뉴스의 제임스 로젠 기자가 김 박사로부터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보도했다는 내용은 "북한이 유엔 결의안에 대응해 추가 핵미사일 실험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CIA가 북한 내 정보원을 통해 파악했다"는 겁니다. 이 기사가 김 박사의 이른바 '간첩법 위반'의 결과물인 셈입니다. 이런 보도로 미국이 위험에 처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고요.

사건 당시 미 국무부 검증·준수·이행 담당 차관보의 선임보좌관이었던 김 박사는 그동안 자신은 미국 국무부로부터 로젠 기자에게 북한의 2차 핵실험 실시와 관련해 설명해주라는 요청을 받고 그와 통화하고 이메일을 주고받았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특히 이런 내용은 신문에 매일 실리는 내용들에 비해 훨씬 덜 민감한 내용이라는 주장도 했습니다. 로젠 기자에게 해당 정보를 전해주고 돈을 받은 것도 아니고, 어떤 정보를 훔친 것도 아니라는 항변도 했습니다.

실제로 미국 연방 검찰은 김 박사의 혐의를 입증할 특별한 증거를 제시하지도 못했습니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할 거라는 건 국내 언론은 물론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거론되던 평범한 내용이었습니다. CIA가 북한 내 정보원을 통해 파악했다는 것도 수시로 북한 관련 정보를 공개하며 '인적 정보'(휴민트)를 통해 입수했다고 공개하는 우리 당국자들의 발언에 비춰보면 별로 민감할 것도 없습니다. 공직자들의 언론 접촉 과정에서의 정보 유출 가능성을 다잡으려는 정부 차원의 '의도'가 읽히는 대목입니다.
스티븐 김
특히 이른바 ‘내부 고발자’ 즉 'Whistleblower'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한 전략적 기소였다는 분석도 많이 나왔습니다. 첫 흑인 대통령으로, 인권 문제에서 진보적 태도를 취할 거라는 기대를 받았던 오바마 대통령이 오히려 개인정보 수집이나 내부고발자 문제 등에 있어서 전임 부시 대통령에 비해 나을 것이 없다는 비판이 점점 커졌습니다만 미 당국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스티븐 김 박사가 무죄 주장을 하며 강하게 반발하자 검찰은 재판을 질질 끌었습니다. 소송 비용은 하염없이 들어갔습니다. 한국의 부모가 집을 처분했고 가족들도 변호사 비용을 대느라 힘들어 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정부를 상대로 한 개인이 싸움을 벌이는 게 쉽지 않은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방어를 위해 필요한 자료를 제 때 제시하지 않아 소송이 지연되면서 공식 재판, 즉 Trial 일정도 오는 4월 28일로 잡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증거조사 등의 절차가 계속되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미국 당국이 스티븐 김 본인은 물론 기사를 썼던 로젠 기자의 개인 이메일이나 전화 통화 시간, 국무부 본부 건물 출입기록 등을 무차별적으로 추적한 사실이 지난해 5월 워싱턴포스트의 취재로 폭로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저인망식 표적 수사를 벌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검찰도 궁지에 몰렸습니다. 그의 구명 활동을 지원하는 사람들도 나타났습니다. 그를 후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홈페이지에는 다소 황당했던 수사 과정이 자세하게 소개돼 있습니다.
스티븐 김 후원 사
<http://stephenkim.org/ 위의 사진도 이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것입니다.>

결국 공식 Trial을 두 달여 남겨놓은 상태에서 김 박사와 검찰이 이른바 '플리 바겐(Plea Bargain)'에 성공했습니다. 현지 시간으로 2월 7일에 있었습니다. '플리'(Plea)는 재판에서 기소된 범죄 혐의에 대해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거나(Guilty Plea), 혹은 무죄 주장(Non-guilty Plea)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판사 앞에서 유죄 인정을 하면 바로 양형 절차에 들어가게 되는데 무죄 주장을 하면 증거에 대한 판단 등 사실 심리를 벌여야 합니다. 양측이 이렇게 판사 앞에서 어떤 '플리'를 할 것인지 미리 협상하되 구형량을 낮춰주기로 합의하는 것을 플리 바겐이라고 합니다. '유죄 인정 조건부 양형 협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감형조건부 유죄 합의'라고도 합니다.

김 박사에 대한 선고는 4월 2일에 이뤄집니다. 물론 판사가 이러한 플리 바겐을 수용해야 합니다만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수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김 박사는 구속 수감되어서 합의한 13개월을 교도소에서 지내야 합니다.

김 박사로서는 아무리 무죄를 확신하더라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재판을 계속하면서 엄청난 경제적 부담으로 온 가족이 고통받는 것을 감수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재판부가 유죄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면 최고 15년 형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도 큰 부담이었을 겁니다. 에드워드 스노든의 NSA 정보 수집 사건 폭로로 인해 미국 사회 전반이 정보 유출 문제에 대해 일종의 신경쇠약에 걸려 있는 점도 김 박사로서는 배심원단의 판단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김 박사의 변호인인 로웰 변호사는 김 박사의 입장을 설명하는 '언론보도문'을 냈습니다. 여기서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1917년에 만들어진 간첩법의 문제를 강하게 지적했습니다. 특히 이 법은 "결코 공무원과 기자 간의 대화에 적용하라고 있는 법이 아니다"라고 지적하면서 정부와 의회 차원의 해법 마련을 요구했습니다. "간첩법의 가혹한 벌칙과 연방정부에서 이 사건을 전담하는 엄청난 자원, 그리고 대중 폭로 문제로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최근 분위기로 인해 소송이 장기화될 가능성에 직면해 스티븐은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연방정부를 일개 개인이 상대해야 하는 어려움, 최근 사회 분위기가 재판에 미칠 영향, 그리고 소송 장기화에 따른 고통을 모두 함축한 설명입니다.
스티븐 김 언론보도
<변호인이 김 박사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낸 '언론보도문' 일부>

아무리 합의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일단 유죄 판결로 종결된다는 점에서는 그로서는 흔쾌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앞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간첩죄 유죄를 인정하고 실형을 복역했다는 것만 기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967년 생으로 이제 만 46세인 김 박사가 언제까지고 정부를 상대로 법정 투쟁을 계속하는 것도 참 막막한 일입니다. 징역 15년의 위험과 함께 언제 끝날지 모르는 25마일 이동 제한 속의 사실상의 구금 생활 대신 13개월이라는 고정 기간을 선택한 김 박사의 결정은 이런 면에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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