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58억 벌어들인 공무원 최 과장의 '블루 오션'

[취재파일] 58억 벌어들인 공무원 최 과장의 '블루 오션'
2008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고용노동부(당시 노동부) 재경지청에서 과장으로 일하던 최 씨는 여느 때처럼 노동부 내부 전산망에 접속했습니다. 그의 눈에 그동안 미처 못 보았던 사실이 들어왔습니다.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도 받지 않고 있는 기업들이 많았습니다. 대부분 국가 지원금 존재 자체를 모르는 영세 기업이었습니다. 신청 자격이 생겨도 3년간 신청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자격이 사라집니다. 30년 이상 공직에 있던 최 씨는 안타까웠습니다. '사업 구상'을 시작했습니다. "블루 오션"이었습니다.

비영리 법인을 세웠습니다. 홍보물도 뿌렸습니다. 정보에 어두운 업체들을 돕겠다는 선의도 있었습니다. 내부망에 들어갔습니다. 지원금을 받을 수 있지만 신청하지 않고 있는 개인과 기업을 뒤졌습니다. 찾아가 상담해줬습니다. 지원금을 탈 수 있게 도왔습니다. 지원금의 30%는 기부금 명목으로 챙겼습니다. 그래도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과 기업이 많았습니다. 뿌듯했습니다. 날로 소문이 퍼졌고 명사가 됐습니다. 책도 써 팔고, 기업과 대학 강연도 다녔습니다. '스타 공무원'이 된 겁니다.

사업은 날로 번창했지만 법이 사업을 가로막았습니다. 자신이 해온 국가지원금 사무 대행업은 사실 노무 법인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최 씨는 결심했습니다. 옛 동료에게 노무사 명의를 빌렸습니다. 2011년, 노무 법인을 세웠습니다. 불법입니다. 아내, 딸, 친형, 동생, 조카까지 친인척을 끌어들였습니다. 법인을 5개로 늘렸고, 직원은 300명까지 불었습니다. 영업사원들은 열심히 일했습니다. 최 씨가 USB 저장장치 또는 이메일로 전달해준 일감(개인정보)으로 업체 4천800곳을 뛰어다녔습니다. 기부금으로 받아오던 돈은 이제 합법적인 '수수료'가 됐습니다. 58억 원을 벌었습니다. 165제곱미터짜리 호화 오피스텔을 두 채 샀습니다. 자신의 경조사비를 회사 돈으로 챙겼습니다. 2013년 10월까지 최 씨가 뒤진 개인과 기업정보가 800만 건, 빼돌린 개인정보가 12만 8천 건입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1천700만 건이 넘는 노동자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으로 개인정보를 빼돌리고, 무자격으로 국고보조금 신청 업무를 대행한 혐의로 최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민감한 우리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공무원으로서, 최 씨도 개인정보의 무게를 모르진 않았을 겁니다. 경찰 말마따나 최 씨 입장에선 '블루오션'인 사업이었을지 몰라도, 최 씨의 선의를 100% 믿더라도, 최 씨가 벌인 사업은 명백히 불법이었습니다. 최 씨는 "정보를 빼낸 것은 잘못"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자신은 노무법인과 관련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최 씨에 대한 영장실질 심사는 다음 주 목요일(13일)에 열립니다.

정보유출 캡쳐_50
카드사 정보유출 사태로 개인정보가 화두지만, 여전히 우리의 정보는 행정 효율이라는 핑계로 정부 안에 모이고, 또 쌓이고 있습니다. 일선 주민센터라면 우리의 주민번호와 주소는 물론 혼인 이력까지도 알 수 있고, 건강보험공단 담당자는 개인의 월급과 연금 등 모든 소득과 전·월세금에 보유 차종까지, 보험료 걷는 데 필요한 자산 정보를 모조리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보가 남한테 알려진다고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그런데 이를 다루는 공무원의 일탈에 우린 속수무책입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정보'가 처음 유출된 곳이 서초구청 민원센터였습니다. 지난해 말 세종시 교육청에선 감사실 직원이 비위 조사를 받던 간부에게 민원인의 신원을 알려줬다 적발됐습니다. '성추문 검사 사건' 때는 여성의 얼굴 사진이 유출됐습니다. 다른 검찰청 수사관의 소행으로 밝혀졌습니다. 모두 공무원이 벌인 일입니다. 최근 2년간 공공기관 6곳에서 유출된 개인정보만 439만 건입니다.

그런데도 현재 대부분 공공기관이 형식적인 서약서와 보안 교육 말고는 별다른 정보유출 대책이 없는 실정입니다. 고용노동부 역시 최 씨의 '일탈'을 몰랐습니다. 최 씨 상관은 "집단적으로 벌인 일도 아니고 혼자 한 일을 일일이 알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무원 조직의 상하 수직적 특수성으로 상-하급자 사이 정보 유출 감시가 힘든 것도 문제입니다. 최 씨는 5급 사무관이었습니다. 아래 많은 직원들이 최 씨의 비위를 알았던들 용감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없었을 겁니다. 시민의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공무원 스스로 철저한 윤리의식을 갖추고 정보 접근 권한을 가진 공무원에 대해 직급별 내부 보안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시급합니다. 저들의 '블루 오션'이 우리에겐 재앙의 씨앗일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