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 법인을 세웠습니다. 홍보물도 뿌렸습니다. 정보에 어두운 업체들을 돕겠다는 선의도 있었습니다. 내부망에 들어갔습니다. 지원금을 받을 수 있지만 신청하지 않고 있는 개인과 기업을 뒤졌습니다. 찾아가 상담해줬습니다. 지원금을 탈 수 있게 도왔습니다. 지원금의 30%는 기부금 명목으로 챙겼습니다. 그래도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과 기업이 많았습니다. 뿌듯했습니다. 날로 소문이 퍼졌고 명사가 됐습니다. 책도 써 팔고, 기업과 대학 강연도 다녔습니다. '스타 공무원'이 된 겁니다.
사업은 날로 번창했지만 법이 사업을 가로막았습니다. 자신이 해온 국가지원금 사무 대행업은 사실 노무 법인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최 씨는 결심했습니다. 옛 동료에게 노무사 명의를 빌렸습니다. 2011년, 노무 법인을 세웠습니다. 불법입니다. 아내, 딸, 친형, 동생, 조카까지 친인척을 끌어들였습니다. 법인을 5개로 늘렸고, 직원은 300명까지 불었습니다. 영업사원들은 열심히 일했습니다. 최 씨가 USB 저장장치 또는 이메일로 전달해준 일감(개인정보)으로 업체 4천800곳을 뛰어다녔습니다. 기부금으로 받아오던 돈은 이제 합법적인 '수수료'가 됐습니다. 58억 원을 벌었습니다. 165제곱미터짜리 호화 오피스텔을 두 채 샀습니다. 자신의 경조사비를 회사 돈으로 챙겼습니다. 2013년 10월까지 최 씨가 뒤진 개인과 기업정보가 800만 건, 빼돌린 개인정보가 12만 8천 건입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1천700만 건이 넘는 노동자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으로 개인정보를 빼돌리고, 무자격으로 국고보조금 신청 업무를 대행한 혐의로 최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민감한 우리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공무원으로서, 최 씨도 개인정보의 무게를 모르진 않았을 겁니다. 경찰 말마따나 최 씨 입장에선 '블루오션'인 사업이었을지 몰라도, 최 씨의 선의를 100% 믿더라도, 최 씨가 벌인 사업은 명백히 불법이었습니다. 최 씨는 "정보를 빼낸 것은 잘못"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자신은 노무법인과 관련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최 씨에 대한 영장실질 심사는 다음 주 목요일(13일)에 열립니다.
그런데도 현재 대부분 공공기관이 형식적인 서약서와 보안 교육 말고는 별다른 정보유출 대책이 없는 실정입니다. 고용노동부 역시 최 씨의 '일탈'을 몰랐습니다. 최 씨 상관은 "집단적으로 벌인 일도 아니고 혼자 한 일을 일일이 알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무원 조직의 상하 수직적 특수성으로 상-하급자 사이 정보 유출 감시가 힘든 것도 문제입니다. 최 씨는 5급 사무관이었습니다. 아래 많은 직원들이 최 씨의 비위를 알았던들 용감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없었을 겁니다. 시민의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공무원 스스로 철저한 윤리의식을 갖추고 정보 접근 권한을 가진 공무원에 대해 직급별 내부 보안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시급합니다. 저들의 '블루 오션'이 우리에겐 재앙의 씨앗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