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고가도로는 서울시내의 첫 번째 고가도로입니다. 아현고가도로가 건설된 시점은 1968년입니다. 당시 서울시 1년 예산이 252억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현고가도로 건설에 약 3억 원이 들었습니다. 적잖은 투자를 한 셈입니다. 아현고가도로가 당시에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62년부터 정부 주도하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추진했습니다. 1966년까지 이어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우리나라는 고도 성장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나라는 연평균 8.5% 경제성장을 이룩했습니다. 이후 1967년부터 추진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연평균 10.5%의 높은 경제성장을 이어갔습니다. 아현고가도로가 건설된 1968년은 고속성장이 속도를 내기 시작하는 시점이었습니다.
당시 경제성장의 동력은 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하는 옷, 신발, 가발 공장과 같은 경공업이었습니다. 도시에는 공장이 들어서고 일자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도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도시집중화 현상이 빠르게 일어났습니다. 사람이 몰리는 만큼 차도 늘어났습니다. 경기가 활성화 되면서 물류 이동도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서울의 도로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이런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늘어난 차량들을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도로를 늘려야 했습니다.
그 방법으로 고가도로가 선택된 겁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까지 한강의 기적이라는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냈습니다. 그만큼 서울도 급속하게 성장했고, 계속 도로를 늘려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현고가도로를 시작으로 서울 도심 곳곳에는 고가도로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고가도로는 모두 101개입니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고가도로는 근대화와 고속성장의 상징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습니다. 차가 많아지면 4차선 도로를 6차선, 8차선으로 늘려도 됩니다. 그런데 왜 고가도로를 100개 넘게 만들었을까요. 도로를 옆으로 늘릴 수 있는 여건이 안됐던 것을 비롯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당시 사회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1960년부터 시작된 근대화, 고속 성장의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는 ‘빨리 빨리’가 최고의 덕목이었습니다. 최대한 시간을 쪼개서 바쁘게 이동하고, 빨리 이동해서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잘 먹고 잘 사는 길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있었습니다. 급속하게 변하는 시대에 맞춰서 너나 나나 앞만 보고 빨리 달렸던 시대였습니다.
“길이 942미터의 4차선 고가도로가 개통되면서 이곳을 지나는 차량은 그대로 쭉 달리게 됐습니다”
아현고가도로 개통을 알리는 대한뉴스에 담긴 아나운서의 내레이션입니다. 신호도 없이 정체도 없이 그대로 쭉 달릴 수 있는 고가도로는 당시의 시대상과 맞아떨어진 겁니다. 교차로의 한 방향을 고가도로로 만들면 교차로에서 신호 없이 빨리 이동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도로위로 차선을 늘리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습니다. 이런 고가도로를 도로 위에 길게 만들면 정말 대한뉴스의 아나운서의 이야기처럼 도심에서 정체 없이 그냥 쭉 빨리 이동할 수 있는 겁니다. 결국, 고가도로는 당시에는 일종의 도심 속의 고속화 도로, 도심의 주요 지점을 빠르게 연결해 주는 당시 시대 가치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간선도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ㅇ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고가도로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가도로가 철거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철거된 서울 도심의 고가도로는 15개입니다. 지금 청계천 위에 놓여 있던 청계 고가도로가 2003년 10월에 철거됐고, 명동에서 서울역 방향으로 있었던 회현고가도로가 2009년 9월에 철거됐습니다. 철거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효용성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서울 도심의 고가도로는 앞서 언급했듯이 주요 지점을 연결하는 간선도로의 역할을 했습니다. 1980년대까지 도심은 4대문 안이었습니다. 서울의 도로도 거의 대부분 종로와 광화문 쪽으로 쏠려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현고가도로처럼 아현동에서 충정로까지 4대문 안의 약 1km를 교차로와 신호 없이 이어주는 고가도로는 간선도로로서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이 점점 커지면서 강남이 개발되기 시작하고 4대문 중심의 도심이 서울 전역으로 크게 확대됐습니다. 그러면서 도로도 더 많이 생겼습니다. 그만큼 교차로도 더 많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울역 방향에서 아현고가도로를 타고 신촌 방면으로 내려와도 다시 신촌로터리에서 신호와 정체에 발이 묶이게 됐습니다. 주요 간선도로로의 기능이 그만큼 떨어진 겁니다.
여기에 1980년대 후반부터 올림픽대로, 강변북로, 동부 간선도로, 북부 간선도로와 같은 서울의 곳곳을 연결하는 주요 간선도로들이 새롭게 건설되면서 고가도로의 역할은 더 축소됐습니다. 서울연구원에서는 실제로 남부순환로가 개통된 시점인 1999년 당시 약 152만대였던 서울 도심 교통량이 2012년에는 98만대로 약 30% 정도 줄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고가도로의 기능은 점점 약화되지만, 노후화로 인한 유지보수 비용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현고가도로만 하더라도 보수비용만 80억 원, 매년 유지비용만 4억 원이 들 것으로 서울시는 추산했습니다. 결국 예산을 들여 고가도로를 운용하느니 차라리 없애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하게 되는 겁니다.
두 번째는 교통 정책의 패러다임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교통 정책의 방향은 차 중심에서 사람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고가도로를 건설할 당시 교통 정책은 차가 중심이었습니다. 고가도로로 인한 분진, 이로 인한 환경오염, 고가도로 주변의 슬럼화, 고가도로로 인한 도심 미관 훼손 등은 외면당했습니다.
하지만, 교통 정책이 사람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차를 위한 시설물인 고가도로의 부작용들이 오히려 더 주목받고 있습니다. 사람 중심의 교통정책은 보행자와 대중교통이 중심이 되는 정책입니다. 최근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연세로입니다. 연세로는 올해 주중에는 버스만 다닐 수 있고 주말에는 사람만 다닐 수 있는 도로로 바꿨습니다.
서울시는 도심을 이렇게 대중교통과 사람을 위한 도로로 만든다는 큰 틀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정책 방향은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현고가도로를 철거하면서도 철거에 따른 차량의 정체보다는 철거를 통해 아현고가도로로 끊겼던 버스 전용차로를 이어서 대중교통의 흐름이 원활해지는 효과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겁니다.
올해만 아현고가도로를 비롯해 서대문고가도로, 약수고가도로가 철거됩니다. 내년에는 서울역고가도로도 철거될 예정입니다. 이렇게 사라지는 서울의 고가도로들은 성장 중심 시대의 종말을 예고하는 대표적인 또 하나의 표상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