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육아휴직 누려~? 법보다 위에 있는 '눈치法'

김현우 기자 kimhw@sbs.co.kr

작성 2014.02.06 09:27 수정 2014.02.06 09:2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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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로 하는 건줄 알았는데 방송 인터뷰는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괜찮은데 아내가 방송에 나가는 것을 매우 반대하네요.”
“아내가 너무 심하게 말리네요. 인터뷰 때문에 부부싸움 하게 생겼어요.”
“주변 친척에도 제가 육아휴직이란걸 알리지 않아서 좀 어렵겠네요.”

남성 육아휴직자를 만나기 위해 여러 명에게 부탁했습니다.

“여성 육아 부담을 줄이고, 남성 육아휴직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부 대책이 발표됩니다. 현재 육아휴직 중인 남편들이 느낀 점. 좋은 점 한마디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좋은 취지의 인터뷰다, 짧게 한 마디만 해주시면 된다. 원하시면 신분 노출은 하지 않겠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 ‘죄송합니다‘ 였습니다.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가 다시 마음을 바꿔 거절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요즘은 방송 기사를 쓰려면 섭외가 가장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리포트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훌륭한 사례자를 섭외하는 일이 어떤 땐 취재보다 더욱 힘듭니다. 관련 부처나 기업 홍보팀을 통해서 쉽게 섭외되는 경우도 있지만 해당 사례가 특이하거나 노출을 꺼리는 경우 섭외는 어려워지고, 섭외 여부가 리포트의 질을 좌우합니다. 남성 육아휴직자 섭외가 그랬습니다. 남성 육아휴직이 무슨 죄도 아닌데 대부분 방송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거절 이유는 남자가 육아 휴직중인걸 알리는 게 부끄럽단 것이었습니다. 또 특이하게 남편보다 아내들의 반대가 훨씬 더 심했습니다. 인터뷰 성사단계까지 갔는데 아내의 반대로 무산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유는 본인 남편이 육아휴직인 걸 방송에 내보내고 싶지 않다는 거였습니다. 2014년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성 육아휴직은 가까운 친척에게도 알리지 못할 만큼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통계가 이를 말해줍니다. 지난해 전체 육아휴직자 69,616명 가운데 남성 비율은 3.3%, 2293명에 불과했습니다. 육아 휴직을 장려하고 모범을 보여야할 중앙 정부 공무원 역시 남성 육아휴직자는 756명에 그쳤습니다. 그만큼 아직 우리사회에서 육아휴직은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법으로 보장된 제도입니다. 어린 아이의 부모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이자 복지 혜택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여성조차 육아휴직을 꺼리는 게 현실입니다. 황현숙 서울시 직장맘지원센터장은 이를 ‘회사내 눈치法’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법보다 위에 있는 게 국민 감정법이란 말이 있듯이 회사에서 눈치보느라 대한민국 국민에게 주어진 당당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단 겁니다. 황현숙 센터장은 “여성들도 육아휴직을 쓰는 비율이 정규직은 26%, 비정규직은 10% 정도이다. 여성들도 이렇게 쓰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남성들이 육아휴직한다고 하면 ‘너는 직장 포기했냐’ 이런 얘기를 듣기 쉬운 데 누가 선뜻 육아휴직을 신청하겠냐”며 사회 분위기와 직장 문화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육아휴직을 길게 사용했다가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주변에서 들리다보니 부모들이 마음 편히 아기를 기를 수가 없는 겁니다. 고용 안정성이 더욱 불투명한 비정규직의 경우엔 육아휴직은 더 사치로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정부는 고용률 70% 달성의 핵심 과제로 여성 고용률 신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남성 육아휴직제를 활성화하겠다고 대책을 내놨습니다. 아내에 이어 남편이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현재 통상임금의 40%인 육아휴직 급여를 첫 달에는 100% 지급하겠다는 겁니다. 짧은 기간이나마 남편이 육아에 참여해서 여성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고 여성의 경력 단절을 막아보잔 겁니다. 취지는 훌륭합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 문제는 당당히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우리 사회 분위기와 편견입니다.

실제로 정부의 발표가 나자 기업들은 곧바로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성명을 통해  “기업이 정부의 이번 대책으로 여성인력에 대한 부담을 느껴 여성 고용을 기피할 수 있다며 이번 대책은 이해 당사자의 의견수렴 과정이 생략됐고, 기업의 현실과 근로자의 선호를 고려하지 못한 채 다소 성급하게 발표됐다"고 말했습니다. 육아휴직이 늘어나면 당연히 대체인력 비용이 늘어나고, 생산성도 떨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여성 채용을 더 꺼리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이런 시선은 육아가 여성의 몫이라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에 기인합니다. 김두식 교수는 <불편해도 괜찮아>란 책에서 “오늘은 내가 설거지 도와줄게” 라고 아내에게 말했다가 ‘그냥 하면 되지 뭘 도와주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합니다. 설거지는 아내의 몫이라고 당연히 여겼던, 무의식속 남녀 차별에 본인도 놀랐다는 겁니다. 제 주변에도 아이를 낳으면 여성이 출산휴가 이후 회사 눈치 보며 육아휴직하고 그동안 남편은 부지런히 직장을 다니고 밤늦게나 주말에 아기와 놀아주며 육아의 의무를 다한다고 느끼는 부부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는 건 부끄러운 일로 여기게 된 겁니다.

육아 블러

제도의 변화가 당장 현실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와 문화가 바뀌면 세상은 달라집니다. 남자도 당당히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회사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직장 문화가 퍼져나가야 부모가 마음 편하게 집에서 아기를 볼 수 있습니다. 기업도 단기적 이익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책임 분담 차원에서 직장맘들을 지원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애써 만든 새로운 제도가 빛을 발할 수 있고, ‘고용률 70% 달성‘이 목표에서 현실로 바뀔 수 있습니다.

끝으로 남성 육아휴직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인터뷰에 응해주신 두 아이의 아버지와 섭외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주신 고용노동부 직원분들, 제가 섭외 때문에 괴롭힌 모든 분들께 감사와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