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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우리 사회 '가난'에 대하여…(2)

쪽방촌 보배 이야기

[취재파일] 우리 사회 '가난'에 대하여…(2)
영등포에 역이 처음 들어선 건 1899년입니다. 꽃이 많았다던 시골마을은 이를 계기로 상공업의 중심지가 되었고, 일제시대에 들어서는 윤락가라는 이름이 더해졌고, 이후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는 독거노인이나 노숙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며 오늘날과 같은 도시 빈민 집단 거주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영등포 쪽방촌에 남아 있는 ‘청소년 출입금지’ 표지판은 과거에 이 곳이 집창촌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여전히 청소년 자녀들이 이 곳을 지나다니는 걸 달가워하지 않을 부모님은 많으실 겁니다. 골목을 오가다 보면 쪽방촌 주민들은 물론 노숙인 분들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데, 이 분들 중 일부는 대낮인데도 술에 취해 거리에서 웅크린 채 잠이 들거나 갈지자 걸음을 걸으며 행인들을 위협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윤락가가 사라진 지금도 이 골목들 사이에 서 있는 ‘청소년 출입금지’ 표지판이 왠지 어색해 보이지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곳에 보배가 살고 있습니다. 쪽방촌은 주민의 상당수가 독거노인이거나 정신적 육체적 질병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아 어린 아이를 데리고 있는 가구는 거의 없습니다. 제가 찾아갔을 때에도 보배는 영등포 쪽방촌에서 지내는 유일한 아이였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부가 한 쌍 더 있긴 했지만, 추운 겨울이 되어 그 가정의 아이는 할머니에게로 보내진 상태였습니다. 두 살 보배는 얼마 전까지 이 곳에서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살았지만 어머니가 집을 나간 이후 지금은 아버지가 유일한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집에 머무르는 서너 시간 동안 보배가 엄마를 찾거나 떼를 쓰는 건 보지 못했습니다. 아직 말은 유창하게 못 하지만 좋고 싫고 의사표현이 분명하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는데, 보배 아버지가 ‘엄마 보고 싶어?’라고 물을 때마다 ‘아니’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했습니다. 대신 아버지가 집을 비울 때마다 하루 이틀이고 일주일씩이고 보배를 맡아 돌봐주는, 전에 이웃에 살던 아주머니를 아버지만큼이나 잘 따랐습니다.

보배 아버지는 막노동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거의 놀다시피 했습니다. 겨울이 되면서 일감도 찾기 어려워졌고, 당뇨 등으로 인해 몸 상태도 좋지 않아 일을 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조금 더 버텨보다가 시골 부모님께 가서 신세를 지겠다는 게 보배 아버지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곳 사람들이 모두 보배를 알고 귀여워하기 때문에 쪽방촌의 생활이 보배에게 나쁠 것도 없다는 게 보배 아버지의 생각이었습니다. 보배 아버지의 말처럼 보배의 얼굴에서 구김살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쪽방촌의 차가운 방에 앉아 TV를 쳐다보고 있는 보배를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던 건 그 작은 뒷모습에 겹쳐진 가난의 그림자 때문이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지난해 발표 자료를 보면 빈곤층이었지만 노력을 통해 빈곤에서 벗어나는 가구의 비율, 즉 빈곤탈출율이 우리 사회에서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2000년에는 48.9%였던 빈곤탈출율은 2006~2007년에는 33.2%로, 2008~2009년에는 31.3%로 해가 갈수록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특히 이런 현상은 최저소득 계층에서 더욱 뚜렷해, 절대빈곤층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현실적으로 봉쇄되어 가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보배가 어른이 됐을 때쯤 우리 사회의 빈곤탈출율은 또 얼마나 더 곤두박칠 쳐 있을까요? 빈곤의 한 가운데에서 태어난 보배는 그 그늘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최근 우리 사회의 양극화나 가난의 대물림 현상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면 브레이크가 고장 난 채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수레처럼 보입니다. 가난의 대물림을 막는 방법은 빈곤층 지원책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특히 빈곤 계층의 영유아와 청소년에 대한 지원이 절실합니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났든지 아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적절한 보호와 교육은 필수적입니다. 안타깝게도 아이의 부모나 보호자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해 낼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면 사회가 그 역할을 기꺼이 맡아줘야 할 겁니다. 8시 뉴스에서 보배의 사연이 나간 뒤 메일 등을 통해 보배를 돕고 싶다는 시청자 분들의 연락을 적지 않게 받았습니다.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보배 같은 아이들을 지원하는 일이 개개인의 따뜻한 온정에 의지하기보다는 사회적 안전망 속에서 안정적이고 일관성 있게 이뤄진다면 더 좋을 겁니다.

p.s. 보배를 포함해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을 돕고 싶으신 분은 영등포 쪽방상담소(전화 02-2068-4353)로 문의하셔서 이야기 나누실 수 있습니다. 또 사단법인 기아대책(후원계좌 국민 524901-01-135734 / 전화 02-2085-8322 / childlove@kfhi.or.kr)을 통해서도 이 겨울 추위에 떨고 있는 소년소녀 가구를 지원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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