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스케이트장에는 이동식 대기질 측정장비가 있습니다. 미세먼지의 양을 측정해 대기질이 나쁘면 스케이트장 운영을 중단시키는 판단기준을 제공해 주는 장비입니다. 이 장비는 스케이트 대여소 인근에 있습니다.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던 날, 이 장비로 가다가 우연히 대여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스케이트 신발을 반납 받아서는 그냥 바닥에 두는 겁니다. 그리고 그 신발을 다시 바로 대여해 줬습니다.
아무래도 저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뒤 돌아 보니 아이들이 신고 있는 신발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용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위생관리가 되지 않은 신발을 신어야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케이트장에 있는 부모님들의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제대로 말리는 지,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니까 불안하죠”
“저는 양말을 3켤레 가지고 왔어요. 쉴 때마다 갈아 신겨요. 더러울 거 같아서요”
이런 반응을 보며 궁금했습니다. 정말 얼마나 더러울까. 문제가 있을까. 그래서 검사해 보기로 했습니다. 가톨릭의대 미생물학과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일단, 신발의 오염을 어떻게 측정하느냐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표면 오염도라고 하는 단위가 있습니다. 휴대용 장비를 통해 표면에 묻어 있는 유기물질의 양을 측정하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유기물질이 뭔지를 모른다는 겁니다. 세균일 수도 있고, 세균이라면 죽은 세균일 수도 있고, 살아있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단순히 먼지일 수도 있고, 단지 뭔가가 표면에 있다는 정도만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 수치는 장비업체마다 그 값이 다를 수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정도 검사만으로는 스케이트 신발의 위생이 나쁘다고 판단할 수 없을 거 같았습니다. 그래서 시료를 채취해 배양하기로 했습니다. 시료를 채취해 배양하면 정확히 살아 있는 세균의 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살아 있는 세균 중에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병원성 세균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과 노력은 더 걸리지만 좀 더 정확한 방법으로 검사하기로 했습니다.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에서 대여하는 스케이트 신발이 위생관리가 부실하다는 전제였기 때문에 위생관리를 하고 있는 스케이트장에서 대여하고 있는 스케이트 신발을 찾아야 했습니다. 찾아보니 위생관리를 하고 있는 스케이트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울광장 스케이트장 신발과 위생관리가 되고 있는 스케이트장 신발의 시료를 채취했습니다. 그리고 미생물학과 연구실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48시간이 지났습니다.
결과는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위생관리의 여부에 따라 극명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서울광장 스케이트 신발에서는 1ml당 최고 약 7천 6백 마리의 살아 있는 세균이 검출됐습니다. 하지만 위생관리가 되고 있는 스케이트 신발에서는 1ml당 210마리의 살아 있는 세균이 나왔습니다. 30배 차이가 났습니다. 살아 있는 세균이 30배나 더 많이 있다는 것은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병원성 세균이 더 많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서울광장 스케이트 신발에서는 병원성 세균인 ‘황색포도상구균’이 검출됐습니다. 반면, 위생관리가 되고 있는 스케이트 신발에서는 병원성 세균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검출된 ‘황색포도상구균’은 모낭염, 연조익염, 농가진 등을 일으킬 수 있는 병원성 세균입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고름이 생기는 농가진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연조지염은 남자들에게는 봉와직염으로 친숙한 피부질환을 일으킵니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라면 군화독이 올라 봉와직염으로 다리가 퉁퉁 부어 고생하는 전우를 본 경험은 누구나 한번은 있을 겁니다.
단, 황색포도상구균이 신발에 있다고 모두 감염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양말이 있고 피부가 있기 때문에 쉽게 감염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조그만 상처가 있거나 피부가 약한 어린아이들은 감염되기 쉽습니다. 특히 아직 부주의한 아이들이 스케이트를 타고 나서 발을 만진 후 얼굴에 손을 대면 감염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문의는 세척을 강조했습니다. 병원성 세균이 있는 만큼 신었던 양말은 새 양말로 갈아 신는 것이 좋고, 무엇보다 손을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 충분히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여기서 논의의 초점을 정리하겠습니다. 비록 일반화시킬 수 있는 모집단에서 나온 결과는 아니지만,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에서 병원성 세균이 검출됐다는 사실은 확인했습니다. 비교군을 통해 관리가 된 스케이트장에서는 병원성 세균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결국 위생관리가 핵심입니다. “서울광장 스케이트 신발이 더럽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서울광장 스케이트 신발은 위생관리가 되고 있지 않다”가 논의의 초점입니다.
논란이 될 만한 부분도 언급하고 지나가겠습니다. 바로 이용요금입니다. 서울광장 스케이트장 이용요금은 시간당 1천원입니다. 반면 관리가 되고 있는 스케이트장은 시간당 약 4천 6백 원입니다. 4배가 넘는 차이입니다. 이용요금을 그만큼 많이 받으니까 관리하는 것이고, 이용요금이 적으니까 그만큼 위생관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혜택을 똑같이 누릴 수 없다는 겁니다. 비용을 낸 만큼 서비스를 받는 다는 논리인 겁니다.
5배가 넘는 비용을 낸 부자는 비즈니스클래스에서 누워서 비행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코노미석에서 좁은 의자에 몸을 웅크린 채 비행시간을 인내해야하는 게 현실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은 영리를 위한 시설이 아닙니다. 서울시가 시민들의 예산을 들여서 운영하고 있는 일종의 공공시설입니다. 공공시설이기 때문에 공중위생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서울시의 당연한 책무입니다. 서울시의 정책을 시장논리로만 접근하는 것도 올바른 접근방법은 아닐 겁니다.
다시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의 위생문제로 돌아가겠습니다. 서울광장 스케이트장 대여실에 들어가 봤습니다. 대여실에 있는 위생관리 시설은 탈취제 분무기 2개와 탈취제가 들어있는 드럼통, 그리고 건조할 때 사용한다고 주장하는 온열기가 전부였습니다. 취재팀이 2~3일 대여소 근처를 다니면서 취재했지만, 탈취제를 사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스케이트장 관계자도 실제로 위생관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반면 위생 관리가 되고 있는 스케이트장은 반납한 신발에 탈취제를 뿌리고 강풍기로 말리고 살균소독기로 소독했습니다.
이렇게 소독하는 데 드는 비용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탈취제는 연간 100만원, 강풍기는 한 대에 30만원, 서울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스케이트 신발 1천 족 이상을 소독할 수 있는 살균소독기는 1천만 원이면 충분했습니다. 서울시가 연간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에 사용하는 예산은 10억 원입니다. 이중에서 1천만 원이면 그리 많은 돈이 아닐 겁니다. 관심인 겁니다. 관심만 있었다면 스케이트장을 이용하는 시민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충분히 위생관리에 신경쓸 수 있었던 일인 겁니다.
서울광장 스케이트장 한편에는 ‘북카페’라는 통유리로 된 조그만 카페가 있습니다.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을 이용하는 시민들을 위한 편의시설입니다. 북카페는 공정무역협회가 자체 예산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카페가 있는 공간은 시민들의 공간인 서울광장의 일부분입니다. 서울시가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을 조성하면서 북카페를 운영하겠다는 방침이 있었기 때문에 공정무역협회가 들어올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 결정 과정에서 위생관리는 배제돼 있었던 겁니다. 서울시는 공정무역협회에게 1억 원짜리 예산의 북카페 운영을 허가주면서 이 예산의 1/10이면 살균소독기를 들여놓고 할 수 있는 위생관리를 외면했던 겁니다. 살균 소독기와 북카페의 차이는 눈에 보이느냐와 보이지 않느냐입니다. 북카페는 이용객들의 눈에 보이고 추운 날씨에 광장에서 따듯한 차한잔을 마실 수 있는 공간이라 시민들에게 직접적인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시설입니다. 반면, 살균소독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굳이 없어도 누가 지적하지 않으면 그냥 모르고 넘어가는 가는 숨어있는 서비스인 겁니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만약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예산이 없었다면 이런 방법은 고민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서울광장 연간 스케이트장 운영 예산 10억 원 중 서울시 예산은 절반인 5억 원입니다. 나머지 5억 원은 서울시금고인 우리은행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이미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을 운영하는데 지원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지원받으면 되는 겁니다.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은 하루에 3000~4000 명이 오는 서울의 명소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 기업들이 광고하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스케이트장 펜스만큼 좋은 광고판은 또 있을까요. 스케이트장 운영하는 2달 동안 100만 원씩 10곳의 광고만 받아도 충분히 위생관리 할 수 있습니다. 시민들의 공간인 서울광장에 기업 광고가 웬말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특정 기업의 서울광장 월드컵 응원전의 논란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특정사의 수익과 이익이 연결된 것이 아닙니다. 광고 수익의 목적이 분명합니다. 광고 수익으로 위생관리에 쓰겠다고 하는데 그게 문제가 될까요. 또 광고가 꼭 기업 광고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정부의 공익광고도 충분히 있습니다. 방법의 문제이고 고민의 문제이고 설득의 문제입니다.
감동은 사소한 것에서 나옵니다. 당장 반응이 나오지 않고 효과가 없을지 몰라도 세심한 배려와 노력에서 진한 감동은 연출됩니다. 정책도 마찬가집니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비록 작은 것이라도 겉으로 치장하고 화려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더라도 시민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은 이미 성공한 정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앞으로 계속 겨울이면 많은 시민이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을 찾을 겁니다. 명실상부한 서울의 자랑으로 거듭날 겁니다. 그래서 더 준비해야 합니다. 크기를 늘리고 겉을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나 사소한 것, 기본적인 것부터 챙겨야 할 시점입니다. 대여실 한 구석에 자리 잡아 보이지도 않을 살균 소독기가 시민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단순히 “위생관리를 합니다”라는 것은 아닐 겁니다. 시민들에게 작은 감동을, 감동을 통해 신뢰를 주는 사소하지만 강한 정책적 메시지를 던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