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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복지는 '적발'이 아니라 '발굴'이다

핀란드를 통해 본 우리의 복지 철학

[취재파일] 복지는 '적발'이 아니라 '발굴'이다
2006년 초니까, 정확히 8년 전입니다. 당시 대학교 4학년이었는데, 운 좋게 복지국가로 유명한 핀란드의 헬싱키로 6개월 동안 교환학생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처음 도착한 곳이 핀란드 중앙역, 우리로 치면 서울역인데, 서울의 풍경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역전에 흔히 있는 노숙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풍경이 인상적이란 제 말에, 현지 핀란드인의 답은 이랬습니다. “노숙인이 발견되자마자 정부가 아파트를 주거든.”

물론 핀란드에 노숙인이 없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통계를 보니, 제가 있었던 2006년 당시 핀란드의 노숙인은 대략 7400명, 300가구 정도였습니다. 보건복지부가 반기별로 발표하는 전국 노숙인 수가 보통 1만 2000명 정도인 걸 감안하면, 핀란드의 노숙인 숫자는 인구비율로 따졌을 때 우리보다 훨씬 많습니다. 핀란드의 인구는 500만 명 정도로 우리의 10분의 1입니다.

그런데, 핀란드에서 말하는 노숙인(Homeless)의 개념은 좀 더 넓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노숙인을 역이나 거리를 배회하는 ‘부랑자’에 국한시키고 있다면, 핀란드는 심지어 가난 때문에 친구나 친척 집에 신세를 지고 있는 사람까지도 노숙인으로 칩니다. 핀란드 정부는 2010년 노숙인의 수를 7877명으로 계산하고 있는데, 구성을 보면, 보호시설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약 1000명, 자동차나 재활시설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약 1500명, 빈곤 때문에 지인의 집에 얹혀살고 있는 사람이 약 5000명입니다. 결국,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노숙인, 그러니까 거리 부랑자는 거의 없는 셈입니다. 노숙인이 생기면 집을 준다는 핀란드 친구의 말은 과장은 아닌 듯합니다.

실제, 핀란드는 2015년까지 노숙인을 완전히 없애겠다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노숙인에게 집을 주는 '주택우선정책', 이른바 하우징퍼스트(Housing First)입니다. 복지의 최일선에 있는 빈곤 계층에게 가장 효과적인 복지는 거처를 제공하는 것이란 취지로 시행된 이 정책은, 핀란드 뿐 아니라 프랑스와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일까요. 통계 추이를 봐도, 1990년에는 1만 5000명이었던 노숙인은 2000년에는 1만 명 정도로 줄었고, 2010년에는 8000명 수준이 됐습니다. (앞서 설명 드린 핀란드 노숙인 현황이나 통계, 하우징퍼스트 등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영문으로 된 핀란드 하우징퍼스트 정책 홈페이지(http://www.housingfirst.fi/en)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도 핀란드식 노숙인 정책이 필요하다, 이런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나라마다 재원이 다르니 복지국가와 단순 비교를 하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핵심은 복지를 바라보는 핀란드의 철학입니다. ‘주택은 복지의 시작이다.’라는 정책적 슬로건이야 어느 정부나 내걸 수 있지만, 거리 부랑자뿐 아니라 돈이 없어 친척과 친구 집에 신세를 지는 사람까지 발굴해 지원하겠다는 정책의 섬세함, 그리고 그 적극성은 인상적입니다. 복지 국가의 진면목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발굴’의 복지입니다.

우리의 복지는 어떤가요. 내가 직접 나서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해야 하고, 장애인 등록을 해야 합니다. 신고하지 않으면 먼저 찾아오는 법이 없습니다. 몰라서 신고조차 못하는 계층도 많지만,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부는 신고하지 않으면 혜택을 주지 않습니다. 선거철만 되면 찾아가는 복지를 외치지만 지나면 그만입니다. ‘신고’의 복지입니다.

현금 관련


예산 편성은 어떤가요. 뉴스에서 보도해 드렸습니다만, 복지 예산 100조 가운데 공적 연금 지원이 36조 원, 주택 대출 지원 18조 원으로 54조 원이 직접적인 복지와 동떨어져 있습니다. 반면, 교육 급여는 14%, 장애인 의료비는 43%, 여성 장애인 지원은 63%가 삭감됐습니다. 실질적인 복지 혜택은 줄었는데, 예산만 늘었습니다. ‘복지 아닌’ 복지입니다.

그 예산은 또 어떻게 마련한다고 하나요. 증세가 아니라 '지하경제 양성화'입니다. 지금까지 내지 않았던 세원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거두겠다고 합니다. 세액공제 해택 줄이고, 아파트에서 나온 분리수거까지 세금을 매깁니다. 최근 강화된 교통 단속이 범칙금으로 세원 충당을 하기 위한 것이란 불평까지 나왔습니다. 서민들 사이에선 증세나 다름없다는 비아냥이 나옵니다. ‘적발’의 복지입니다.

‘적발’로 재원을 마련하고, 그렇게 마련된 재원은 ‘복지 아닌’ 곳에 절반이나 집어넣고, 심지어 ‘신고’하지 못하면 혜택도 못 받는 우리 복지의 현실. 어떻게든 소외계층을 찾아 지원해 내고야 말겠다는 핀란드의 ‘발굴’ 복지와 너무나 대비됩니다. 물론 복지는 돈이고 예산입니다. 하지만 이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철학이 그대로라면 복지도 바뀌는 게 없습니다. 복지 예산 100조 원 시대라는 정부, 하지만 그 말이 서민들 피부에 별로 와닿지 않는 이유입니다. 복지를 접근하는 정부의 철학부터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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