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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우리 사회 '가난'에 대하여…(1)

쪽방촌 이용규 할아버지 이야기

[취재파일] 우리 사회 '가난'에 대하여…(1)
성인 한 두 명이 누울 정도의 작은 방이 다닥다닥 이어져 있는 동네, 쪽방촌을 아시나요? 연말연시 혹은 무더운 여름날이면 자주 방송이나 신문 지상을 통해 소개되기 때문에 아마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겁니다. 보증금 없이 한달 10~20만원대의 월세만 내면 머물 수 있기 때문에, 열악한 주거환경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도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주거지가 됐죠. 하지만 그 곳에 살지 않는 분들은 쪽방촌 안으로 들어가게 될 일이 많지는 않을 거예요. 사회부에서 복지 분야를 담당하게 된 지 넉 달 만에 저도 이번 겨울 처음으로 쪽방촌, 그 속으로 들어가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간 곳은 서울 영등포 역 옆에 자리 잡은 ‘영등포 쪽방촌’이었습니다. 롯데백화점, 타임스퀘어 같은 대형 쇼핑센터 사이 섬처럼 자리 잡고 있는 이 곳 쪽방촌에는 쪽방 540여 개가 있고, 그 안에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영등포 역에서 나와 역전파출소를 지나 조금만 더 걸으면 '청소년 출입금지'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입니다. 쪽방촌에 들어섰음을 알려주는 표지판인 셈입니다. 골목에 들어섰다면, 끼니 때마다 표지판 근처까지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따라 들어가면 그 끝에는 한 기독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급식소가 나옵니다. 바로 건너편엔 천주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작은 병원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미로 같은 골목들로 연결된 쪽방촌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취재기간 동안 그 곳에서 여러 분들을 만났고 그 중 몇몇 분의 이야기를 방송에서 소개했는데, 일부 사연을 지면을 통해 좀 더 자세히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전해드리고 싶은 사연은 이용규 할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는 만성 신부전 환자예요. 병을 앓은 지 벌써 십 년이 다 되어간다고 합니다. 가족도 있었지만 병을 앓게 된 뒤 사업도 기울고 일도 하기 어려워지면서 현재는 모두 헤어지고, 동생하고만 연락하며 지낸다고 하셨습니다. 부인, 자녀 분과 어떻게 헤어지게 됐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더 묻지 못했고 그래서 저도 할아버지 가족의 사적인 이야기를 더 자세히는 알고 있지 않아요. 다만 시간이 꽤 흘렀어도 할아버지가 기억에 남는 건 눈물 때문이었습니다. 치료의 고단함과 난방비 문제 등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할아버지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셨습니다. ‘취재’라는 명분 아래 누군가에게 가슴 아플 수도 있는 이야기를 꺼내놔 달라고 부탁하고, 그런 과정에서 누군가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건드리게 되는 건, 기자 일을 한 지 13년이 더 지난 지금도 여전히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인지라……할아버지의 눈물을 보는 제 마음도 아팠습니다.

그리고 느릿느릿 할아버지가 눈물의 이유를 이야기 할 때는 저도 더 이상은 눈물을 참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할아버지는 한 때 ‘남들처럼’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병을 얻기 전에는요. 하지만 병을 앓게 된 뒤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은 멀어졌습니다. 이제 할아버지는 아무런 희망도 없이 외롭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고 털어 놨습니다. 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과 그로 인해 시작된 경제적 고통, 그리고 외로움이란 정서적 고통까지, 60대 환자인 할아버지가 매일같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 슬픔이 전해져 오는 듯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가난은 가난한 사람 본인의 문제 때문이라고 말하고, 어떤 이들은 사회적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느 경우에나 반드시 들어 맞는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사회도 최소한 사람들이 질병으로 인해 가난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건 막아줄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부에서는 4대 중증질환 보장성을 강화한다고 하고, 특진비나 상급병실료, 간병비 같은 3대 비급여 문제도 개선책을 찾겠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큰 질병에 걸릴 경우 일자리를 잃고 경제적으로 파탄을 맞게 될 가능성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또 그로 인해 가정이 붕괴되고 삶의 질이 추락할 것을 염려합니다. 심각한 질병에 걸려 있다면 돈이 많은 사람도, 돌봐줄 가족이 있는 사람도, 근심과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병으로 인해 절대빈곤으로 내몰리지는 않도록,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고독과 절망을 상대로 혼자만의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그 분들에게 경제적 정서적 지원을 해주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인간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면, 이제 ‘인간답게 투병하는 것’을 위해서도 우리 사회가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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