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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토크] 코미디 영화를 보다 울다…영화 '수상한 그녀'

삶의 회한은 언제나 추억을 부른다.

긴 세월에 들러붙어 있는 삶의 더께들이 차곡차곡 쟁여져 그 어디에도 틈이 없을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벌어질 수 없을 것 같은 그 틈 마저도 마지막이란 순간에 다다르면, 떠억하니 주둥이를 벌린 채로 삶의 편린들을 와르르 쏟아 낸다.

기억에서 조차 없었던 그 삶의 흔적들이 왜 하필 이 순간에 또렷해질까? 늙었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특히 자식에게서 조차도 불편하고 내쳐져야 할 대상이 된다면, 지난 날의 회한은 흐르는 눈물 줄기만큼이나 크고 깊고, 또 지속적일 수 밖에 없다.

영정사진을 찍으러 가는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과거도 더 이상 과거가 아니다. 다만, 견디어 온 오래된 또 하나의 현재일 뿐이다. 파노라마같은 삶의 여정이 어찌 어제의 일일 수만 있을 것인가...

그 순간 영화는 묻는다. 인생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무심코 길을 걷다 우연히 영정사진을 찍기 위해 들른 청춘사진관의 사진사는 50년을 젊게 만들어 드린다는 약속을 하고, 사진관을 나선 오말순 여사(나문희)는 버스 차창에 비친 자기 모습에 기겁을 한다. 사진사의 약속이 지켜진 것이다. 오드리 헵번을 닮은 뽀얀 피부, 날렵한 몸매의 20살 '오두리(심은경)'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영화는 억척스레 이 땅의 격동기를 온 몸으로 겪으며 살아오신 우리네 어머니이기도 한 70대 할머니가 우연한 기회에 20살 처녀로 몸이 바뀌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와 가족애를 담고 있다. 이 영화는 우리네 피붙이들의 이야기이면서 한 인간의 이야기이다.

꼬깃꼬깃 접혀진 채로 한 켠에 버려 두었던 삶의 편린들이, 애써 감춰 놓았던 딱정이 밑의 상처들이 어느 순간 눈물을 만나 비늘을 일으켜 세우고 눈물 속을 헤엄치기도 한다. 그 삶의 상처는 부지불식간에 관객에게도 전이돼 자기도 모른 채 주르륵 눈물을 흘리고 만다.

영화는 이런 감정의 넘나듦이 있어도, 결국은 웃기기 위해 노력을 한다. 코미디 영화 특유의 과잉된 몸짓이나 어투, 설정 모두 웃기기 위한 장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영화 초반은 오말순의 독무대다. 이른 나이에 남편을 잃고 고분분투의 삶을 살은 그녀에겐 세상에서 제일 잘 난 국립대학교수인 아들이 있다. 그 아들의 잘남과 효성이 오말순이 살아가는 이유이고, 또 자부심이다. 하지만 아들도 어쩌지 못하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아내, 오말순에겐 며느리라는 이름이다.

시월드의 삶은 고단하고 팍팍하다. 그마저도 오해에서 비롯된 경우도 많다. 하지만 힘든 건 힘든 거고, 아픈 건 아픈 거다. 그런 아내와 엄마를 둔 아들과 손주는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기로 한다. 내쳐진 것이다.

절망한 오말순이 거리를 헤매다 우연히 들른 사진관에서 오말순은 20살 오두리로 태어나면서, 관객들은 20살 처녀 심은경의 천연덕스러우면서도 깜찍한 연기와 만나게 된다. 오두리는 오드리헵번의 한국식 차용이다.

오두리는 타고난 끼와 노래 실력으로 우연히 부른 노래로 인해 손자가 리더인 반지하 밴드의 보컬로 영입이 되고, 동시에 방송국 음악 방송의 PD에게도 눈에 띄어 음악 프로에 나가는 기쁨을 누리게도 된다.

그리고, 잘생긴 PD와의 러브라인도 만들어진다. 모습은 20살이지만 정신 세계는 70대인 할머니와 젊은 총각과의 러브라인이 갖는 한계도 인정하지만, 좀 더 아찔하면서 진한 감동이 있었으면 어떨까 싶다. 그랬다면 주책이었을까?

물론 오말순에게는 지고 지순한 박씨(박인환)가 있다. 박씨는 오말순 집안의 종으로 들어와 오말순을 보고 사랑에 빠져 지금까지도 아씨라 부르며 온갖 순애보를 다 바친다. 박씨의 순애보는 이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즐거움은 현대식 버전으로 편곡한 오두리역의 심은경이 부르는 7080 세대의 음악을 듣는 즐거움이 있다.

영화에서 관객들은 억척스럽게 고난의 세월을 이겨낸 우리네 어머니를 만날 수 있고, 현대 버전으로 편곡한 그 어머니의 추억같은 노래도 만날 수 있다. 이 노래들은 말순의 사연 많은 인생을 대변하며 정서적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78년에 발표된 세샘트리오의 <나성에 가면>과 김정호의 <하얀나비>, 채은옥의 <빗물>이 그 주인공이다. 노래가 맛깔나고, 오말순의 인생역경의 회한이 가득한 정서를 잘 전하고 있다.

노래가사는 언제나 추억만큼의 크기와 두께를 지니고 있다. '비가 내리면~~ 그 사람 생각이 나네~~' 긴 세월을 살아 냈다는 증거는 노래 가사를 받아들이는 태도에서도 만날 수 있다.
나이 든 인생에는 그 만큼의 사연들이 들어차 있어 이런 저런 이유로 눈물을 흘릴 이유도 많기 때문이다.

음악감독은 '가사 구절 구절과 음악이 가지고 있는 선율, 그리고 정서들이 잘 어우러진 곡'을 선곡하기 위해 노력했고, 옛날 노래라는 느낌이 안 나게 요즘 곡처럼 편곡했다'고 하는데 노래가 좋다.

<수상한 그녀>는 재밌는 영화다. 억지로 웃기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다만 그 웃긴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연기하는 그들이 웃긴다. 그리고 따뜻하다. 그래서 느낌이 좋다.

코미디 영화가 늘 그렇듯 어느 정도의 오버는 당연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심하게 오버하지는 않는다. 출연 배우 중에 성동일이 있다면 당연히 성동일은 웃길 거라 예상을 하지만 그는 너무 진지해 차라리 웃긴다. 이런 작은 반전이 새롭다.

영화를 보노라면 아쉽고 안타까운 순간이 온다. <수상한 그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두리는 오말순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이 온다. 결국은 발목을 잡는 건 피붙이이다. 그것만이 운명을 걸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삶의, 또는 상황의 막다른 갈림길에서 어려운 삶을 동행한 홀어머니와 뒤늦게 어머니의 변화를 눈치 챈 아들은 또 다른 피붙이의 아픔 앞에서, 외길의 선택 앞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흘린다.

'엄마는 엄마 아들 살려 냈듯이 내 아들은 제가 살릴게요'라고 아들은 울부짖지만 '아녀 괜챦아' 엄마의 대답은 한결같다. 엄마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다만 늙은 아들은 젊은 엄마의 희생이 아프다.

오말순은 독백한다. '신나는 꿈을 꾸었었다'고...

돌아보면 인생이야말로 한 밤의 꿈인지도 모른다. 즐거웠던, 하지만 더러는 아프기도 했던... 긴 꿈...

<마이파더>와 <도가니>를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워낙 사람 웃기는 걸 좋아해 코미디 영화는 자연스런 선택이다.'란다. 생긴 거와는 다르게 진지한 표정으로 자기가 하는 말의 반은 농담이라는데, 그래서 코미디 영화가 제격이라는데, 표정이나 생김새를 보면 '에이 설마'하는 반응이 당연하다. 그렇다니 그런가 보다 해야지 별 수가 없다.

게다가 그는 '감히'라는 단어를 여러 번 사용하면서까지 <수상한 그녀>의 재미와 작품성을 자랑한다. 여러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영화라고 방점을 찍는다. 제 자식 못났다는 부모가 없듯이 감독에게도 영화는 자식과 마찬가지이니 그렇다고 해 두자.

오말순 역의 나문희는 재미있고도 애잔하며 서글프고도 흐뭇한, 이 시대 어머니들을 위한 영화라고 평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문희의 평가가 적절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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