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 재미있는 동영상이 하나 올라와서 소개드립니다. 물론 보고 즐거운 그런 내용은 아닙니다. 다만 올해도 북한 관련 뉴스가 적지 않을 것 같으니, 북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그런 동영상입니다.
현학봉 영국 주재 북한 대사가 스카이뉴스TV와 30분 넘는 긴 인터뷰를 했습니다. 신선호 주 유엔 대사에 이어 지재룡 주 중국 대사가 기자회견을 했는데 이번에는 영국입니다. 지구를 한 바퀴 빙 돌아가며 나름대로 '글로벌' 한 선전전을 벌인 셈입니다.
회견은 영어로 진행됐습니다. 비교적 또박또박 자기 주장을 잘 펼쳤습니다. 오늘 외신 기사로 '장성택이 총살을 당했다'는 기사의 출처가 바로 이 인터뷰입니다. 진행자가 '장성택이 개에게 잡아먹혔다는 얘기도 있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껄껄 웃으며 총살당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법에 총살형이 규정돼 있다고요. 잔혹한 것이 아니냐고 하자 나라마다 모두 저마다의 법제도가 있는 것이며 북한도 마찬가지라고 잘라서 말합니다. 어쨌든 인터뷰가 그렇게 다잡아서 따지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 대사가 억지든 뭐든 얘기를 한참 하면 약간의 보충 질문만 하고 다음으로 넘어갔습니다.
▶ [31일 8시뉴스 다시보기] 北 외교관 "장성택 총살…가족 처형 여부 몰라"
전체 인터뷰의 상당부분에 걸쳐서 한미 군사훈련 등 한반도의 긴장 얘기를 했습니다. 시종 일관 미국 때문에 한반도의 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이며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중단하지 않는 한 '핵 개발'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현 대사는 키리졸브와 독수리 훈련 같은 한미 합동 군사훈련은 일상적인 군사 훈련이 아니라 공격 연습이라는 주장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한국군 만이 아니라 일본은 물론 미국 본토에서까지 군대를 동원하고 갖가지 무기(구체적으로 전략 폭격기와 스텔스기, 핵 잠수함 등까지 거론을 했습니다)를 동원할 뿐만 아니라 훈련 내용 중에 평양을 어떻게 장악할 것인가 등이 포함되어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더군요. 따라서 말은 훈련이지만 공격 연습이라는 겁니다. 한·미 합동 군사훈련에 대해 북측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한 위협을 느끼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반도 상황에 대해서도 억지 주장을 하는 부분은 적지 않습니다. 남북 분단과 대치 상황을 모조리 미국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나, 지금까지 북한 핵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했던 여러 합의에서 미국이 자기들이 해야 할 것은 전혀 이행하지 않고 북한에만 선결조건 운운하며 행동을 요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하도 얼굴 표정도 바꾸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얘기를 해서, 잘 모르는 제3자가 들으면 진짜 그런 줄 알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게 이른바 군사 훈련 취소를 내걸고 전세계적으로 선전전에 나선 이유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사실 조금만 사실관계를 따지고 들어가면 말이 뒤바뀌는 등 허술한 측면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장성택의 가족들도 처형당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질문하자 그건 한국과 일본 등의 대중 매체들, 즉 '적'들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을 합니다. 그러자 사회자가 그럼 장성택의 가족들은 안전하다는 거냐고 되묻습니다. 현 대사는 약간 말을 더듬다가 장성택이 처벌받은 것은 알지만 그의 가족들이 처벌받았는지는 모른다고 깨끗하게 물러섭니다.
억지 내지는 일방적 주장은 여러 곳이지만 특이한 대목도 있었습니다. 총살형 등에 대해 '고유의 사법제도'를 강조하자 진행자가 북한에 있다는 사법제도에 'Labor Camp'(노동수용소)가 포함되느냐고 불쑥 묻습니다. 그러자 'Labor Camp'는 없고 그저 'Educational Camp', 즉 '교육 캠프'는 있다고 말하더니 금방 '교육하는 장소'라고 말을 돌립니다. 모처럼 진행자가 영국 같은 곳에서는 기자들이 어디든 돌아다니면서 그런 게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 북한에서는 기자들에게 그렇게 마음대로 다니면서 확인을 해보도록 허용하지 않지 않느냐고 지적합니다. 그러자 현 대사의 명답이 나옵니다.
"기자들이 그냥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나 전하면 되는 것이지, 어떤 것이 있는지 조사하는 '정치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언론인의 윤리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이죠.
기자 생활을 하다보니 언론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면 대충 그 사람(또는 집단)의 정신 세계가 어떨지 상상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현 대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론인이 아니라 '보도 일꾼'이 뭐 하러 공화국을 돌아다니며 노동수용소가 있는지를 조사하는 '정치적' 행동을 하느냐는 얘기니까요. 참으로 편리한 발상이죠. 그 대목이 압권이더군요. 북한의 현실을 아주 알기 쉽게 설명을 해주는 것이죠. 역시 이렇게 직접 그 사회에 사는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은 오늘의 북한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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