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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극으로 치닫는 한일 대립…일본의 노림수는?

[취재파일] 극으로 치닫는 한일 대립…일본의 노림수는?
설 연휴 직전인 29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과 서울 마포의 '우리집' 등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공동생활시설을 잇따라 방문했습니다. 정해진 일정에 없던 갑작스러운 방문이었습니다. 윤 장관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 "일본이 역사를 호도하고 있다"면서 "할머니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 한일 관계, 봉인 풀렸다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지만, 윤 장관은 이날 우리나라 외교장관으로서 처음 위안부 시설을 방문한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순간적으로 기가 막혔습니다. 처음 온 것이 맞는지 외교부에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위안부 할머니를 개별적으로 만났을 순 있어도, 이런 시설에 온 것은 처음이라고 확인해줬습니다.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화한 소녀상에도 공식행사를 통해선 간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간 왜 안 왔던 걸까? 그건 아마도 경제적, 정치적으로 주요 상대국인 일본을 되도록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하지만 이날 윤 장관의 방문으로 수십 년간 잠겨 있던, 한일관계의 중요한 봉인 하나가 풀렸습니다. 한일 간의 크고 작은 대립과 충돌은 늘 있어왔지만,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선을 넘나드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윤 장관도 이날 '저희가 취하고 있는 입장은 지난 20년 동안 취한 입장 중에서 가장 강한 입장'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전에 없는 다양한 방법으로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압박할 계획입니다.

우리 시간으로 30일 새벽엔 세계 1차대전 100주년을 맞아 <전쟁의 교훈과 영구 평화 모색>이라는 주제로 열린 유엔 안보리 공개토론에서 오준 대사가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교과서 왜곡, 군 위안부 강제 동원 부정 등 일본 지도층의 잘못된 역사 인식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또 2월 초엔 외교부가 만든 독도 동영상 영어판이 공개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2월 8~9일엔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군 위안부 심포지엄이 열립니다. 또 우리나라와 중국 등 일제 피해국들이 함께 <일본 제국주의 침탈 만행사>에 대한 국제공동연구를 진행하고 관련 책자도 발간할 예정입니다. 

■ 일본의 달라진 선제 공격

우리가 이처럼 대일 외교의 수위를 높인 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일본의 전에 없는 과거사 연속 도발 때문입니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전에는 주로 '망언'으로만 그랬는데, 최근엔 단지 말로 그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독도 국제사법재판소

우선, 지난해 10월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주장을 담은 독도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또 12월엔 독도 분쟁을 전담하는 '영토담당 대신직'을 신설했고요. 국가안보전략에 독도 관련 기술을 포함시켰습니다. 올해 1월 들어선 내각관방 밑에 영토주권대책기획조정실을 설치했습니다. 최근 독도 홈페이지를 개설한 곳이 바로 이 영토주권대책조정실입니다. 이곳에선 독도 뿐 아니라 중국과 분쟁을 겪고 있는 센카쿠 열도 분쟁도 담당합니다.

그리고 최근 중고교 교과서 해설지침 개정까지, 돌이켜보니 그야말로 마음먹고 전방위적으로 독도를 분쟁화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입니다. 급기야 아베는 30일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단독 제소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발언했습니다.

■ 언짢은 미국, 무릎꿇지 않는 일본

일본이 갑자기 왜 이렇게 나오는 걸까. 이건 한일관계뿐 아니라 미일관계를 함께 봐야 답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일본이 망언을 일삼으면서도 '선'을 넘지 않았던 건 미국 때문입니다. 미국으로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3각 공조가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범국가 일본이 지금껏 군사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도 어찌보면 미국의 든든한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고요. 만일 일본이 선을 넘는 우경화에 나설 경우 한일관계가 파탄 나면서 3각 공조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때문에 미국은 일본 우익의 목소리가 지나치다 싶으면, 지긋이 내리누르곤 했습니다. 일본 역시 미국 얘기라면 그런대로 존중해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본이 달라졌습니다. 아베 총리가 지난해 말 방일한 바이든 미국 부통령에게 "야스쿠니 참배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가 뒷통수를 쳤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만, 이제 일본은 미국의 테두리를 벗어나려고 합니다. 미국이 뭐라고 하건 자기 목소리를 내겠다는 겁니다. 

결국, '미국은 지는 해요, 중국은 떠오르는 해'라는 상황 판단을 일본이 한 것 아니냐 하는 얘기가 외교가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으로선 전범 딱지를 떼고, 혼자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되는 것이 지상 목표인데, 이제 미국에만 기대서는 목표 달성이 요원할 것 같다는 겁니다. 또 지난해 말 방공식별구역 사태 당시, 미국이 중국 대하는 걸 보니 딱히 중국에 맞서 일본 편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더란 거죠. 앞으로 중국과 미국의 힘은 더 엇비슷해질텐데, 가만히 있다간 일본이 세력확장은커녕 자기 밥그릇 하나 챙기기도 힘들어질 거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것이 당장 일본의 완전한 홀로서기 선언인지, 아니면 미국에 똑바로 하라는 경고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땐, 미일동맹이라는 틀을 갖고 가더라도, 일본이 자기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는 전과 다른 버전의 미일동맹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 독도 문제 어떻게?

다시 독도 얘기로 돌아오자면, 결국 일본의 과거사 도발에 대한 해법이 예전과는 달라져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우리도 일이 벌어지면 워싱턴 대사관만 바빠선 곤란하다는 얘기입니다. 일본이 미국의 영향력을 벗어난 독자적 변수가 되면,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입장에서 일본의 우선 순위는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이 전처럼 말을 쉽게 듣지 않을 테니까, 미국으로선 반드시 필요한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걸 일본에 해줘야 할 겁니다. 만일 미국이 일본에 해줘야 할 목록에 '독도' 문제가 오른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죠.

현재까지는 독도에 관한 미국 지도층 여론은 우리나라에 유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계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결국 미국에게는 한미동맹보다는 미일동맹이 훨씬 중요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벌이는 3대 연례 군사훈련 모두에 일본은 동참하지만, 우린 그 중 하나에만 참가할 뿐입니다.

우리 정부가 한·일 관계의 봉인을 풀고, 국제사회에서 적극적으로 독도 문제를 이슈화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독도 문제는 단지 독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소련 패망 이후 미국의 우세 속에 지금까지 유지돼온 동북아 질서가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독도와 센카쿠 혹은 댜오위다오가 있습니다. 한·일 외교전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더욱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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