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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정부가 ‘찬성’하고, 정부가 ‘반대’하는 담배소송

담배소송을 둘러싼 부처 간의 미묘한 권력관계

[취재파일] 정부가 ‘찬성’하고, 정부가 ‘반대’하는 담배소송
건강보험공단이 추진하고 있는 담배소송 안건이 최근 공단 임시 이사회에서 의결됐습니다. 이제 국가 기관이 담배 회사를 상대로 흡연 피해자들의 치료비에 대한 손해액을 청구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공단은 3월 안으로 소송을 제기할 방침입니다. 사실 미국과 캐나다 같은 북미에선 주정부가 담배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한 적이 있었지만, 개인이 아닌 공공기간이 소송을 내는 건 국내 첫 사례입니다. 그런데, 이게 마냥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승소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소송 제기 자체가 어려울 것이란 회의론도 조심스럽게 나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정부 부처 간의 미묘한 권력관계

이번 임시 이사회의 구성원을 볼까요. 건보공단 이사회는 총 15명으로 구성되는 데, 김종대 건보 이사장을 비롯한 상임이사 5명과 감사 1명, 시민단체 관계자 6명, 그리고 정부 측 인사 3명입니다. 정부 측 인사는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안전행정부 대표 3명입니다. 안건이 올라오면 이사회가 안건을 심의하고 의결을 하는데, 과반 참석에 과반 찬성이면 안건은 통과됩니다. 담배 소송 안건은 15명 가운데 13명이 참석했고, 13명 가운데 11명이 찬성해 여유 있게 통과됐습니다.

그러면, 그 반대표는 누가 던졌을까요. 다름 아닌 정부 측, 구체적으로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인사 2명입니다. 좀 의아합니다. 정부는 줄곧 금연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특히 보건복지부는 금연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부처고, 지난해 7월에는 공중이용시설 전면 금연 정책을 의욕적으로 시행한 바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캡쳐_5
보건복지부의 지시·감독을 받는,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인 건보공단은 소송에 팔을 걷고 나서고, 정작 보건복지부는 소송에 미적거리고, 같은 정부 부처인 기획재정부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정부는 금연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뭔가 아귀가 안 맞습니다.

왜 그럴까요. 일단 기획재정부 얘기부터 해보죠. 국내 대표적인 담배회사 KT&G의 최대주주는 기업은행으로, 지분율 7%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업은행의 최대 주주는 바로 기획재정부입니다. 지분율이 70% 가까이 됩니다. 기획재정부가 담배 회사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결국, 지금까지 담배 회사를 상대로 한 개인 소송에서 기획재정부가 사실상 피고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소송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금연 정책 총괄 부서인 보건복지부의 태도는 의아합니다. 국민을 상대로 금연해라, 담배 위험하다, 끊어라, 하염없이 주장하면서 왜 소송에는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걸까요. 물론 겉으로는 "소송은 찬성하지만, 승소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 같다"는 논리를 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회 직전에는 건보공단에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이사회 의결에 부쳤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던 겁니다.

갑 중의 갑, 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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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고시 재경직 수석은 어느 부서를 선택할까요. 바로 기획재정부입니다. 오히려 다른 부처를 택하면 뉴스가 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입니다. 행정고시 성적이 가장 우수한 사람들이 모이는 정부 부처, 한국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엘리트 관료 집단, 정부 부처의 갑중의 갑. 이런 수식어만 보더라도 기획재정부의 위상은 두 말하면 잔소리입니다. "과장은커녕 기획재정부 말단 직원도 한 번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에요. 돈 줄을 쥐고 있으니 어쩔 수 없죠." 다른 정부부처 공무원의 푸념입니다.

복지 예산 100조 원, 복지는 곧 돈이 된 시대, 이런 상황에서 복지부도 기획재정부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는 겁니다. 무리하게 담배 소송을 진행해 밉보여봤자 결국 자기 손해니까요. 그래서일까요. 복지부가 이번 임시이사회에서 꺼내든 카드가 '신중론'입니다. 취지는 좋은데, 승소 가능성이 적으니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겁니다.

겉보기에 그럴 듯합니다. 워낙 대규모 소송이다 보니 신중할 필요가 있는 건 당연합니다. 소송비도 다 국민 혈세로 충당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법조계 일각에서는 승소의 전제로 담배 회사의 위법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 위법성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승소 가능성이란 말은 참 애매모호한 표현입니다. 누군들 승소 가능성을 예단해 소송을 제기하나요. 시민단체들이 이번 복지부의 태도를 두고 '신중론'이 아니라 '시간끌기'라고 지적하는 이유입니다.

정부의 지원사격 없는 담배소송?

결국, 이번 소송은 담배와 암의 상관관계, 담배 회사의 위법성 등 법리적인 부분이 쟁점이 되기에 앞서, 소송 과정에서 정부의 지원 사격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건보 공단도 그 점을 우려하는 눈치입니다. 사실 이번 소송의 핵심은 개인이 아니라 '공공 기관'이 나선다는 게 핵심인데, 정작 다른 정부부처가, 그것도 금연 정책을 주관하고 돈줄을 쥐고 있는 두 부처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면 그 취지가 퇴색될 수 있습니다. 나 홀로 고된 싸움을 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만일 공무원들이 다른 정부 부처보다 국민의 눈치를 먼저 봤다면 이렇게 대응은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국민 건강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 찬성-반대를 떠나 법적 선례를 만든다는 점에서 많은 국민이 이번 소송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설령, 패소하더라도 법적 선례를 만든다는 점에서, 그래서 또 다른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국민들도 소송 비용 정도는 감수하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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