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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6년 반 만에 다시 열린 주중 북한대사관…한국 언론 취재 허용

[월드리포트] 6년 반 만에 다시 열린 주중 북한대사관…한국 언론 취재 허용

윤영현 기자

작성 2014.01.30 13:4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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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6년 반 만에 다시 열린 주중 북한대사관…한국 언론 취재 허용
베이징 시내 중심가의 대사관 밀집 지역. 자주 지나치지만 특파원 임기 3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한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고 치외법권지역으로 북한 땅이라 들어갈 엄두도 못낸 곳이 있습니다. 바로 주중 북한대사관입니다. 북한에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찾게되는 곳이지만 대사관 안으로는 한발 짝도 들여 놓은 적이 없습니다. 아니 대사관 정문에 배치된 중국 경비병의 날카로운 눈초리 때문에 대사관 외경을 찍는 것도 눈치껏 요령껏 촬영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굳게 닫혀 있던, 한국 언론에게는 '넘을 수 없는 성벽' 같아 보였던 북한 대사관 문이 오늘 열렸습니다. 새해 들어 유화 공세를 펼치고 있는 북한이 유엔 무대에 이어 베이징에서 한국 매체를 포함해 외신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가진 것입니다. 주중북한대사관이 청사에서 외신 기자회견을 갖기는 6년 반만입니다.

애초 오늘(29일) 기자회견에 한국 언론은 초청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의 신화통신, CCTV와 환구시보 등 관영매체와 AP, 로이터 등 주요 통신사 그리고 NHK 등 일본 매체 등이 북한측으로부터 취재 초청을 받았습니다. 한국 언론 가운데 북측의 초청을 받은 곳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SBS를 포함한 일부 한국 매체들은 외신기자들이 들어가는 모습이라도 카메라에 담자,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자회견이 예정된 오전 9시 반 이전부터 대사관 정문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정문 앞은 금새 40~50명의 기자들로 북적였고, 북한 대사관 직원이 나와 안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신화사 왔습니까?,  CNN 왔습니까?" 초청을 받은 언론사를 부르기 시작했고 호명된 언론사 기자들은 한 사람 한 사람씩 이름을 적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북측 직원이 호명한 언론사 가운데 한국 매체는 당연히 없었고, 호명된 뒤 안으로 들어가는 외국 언론사 기자들을 한국 특파원들은 그저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민족끼리' 잘해보자고 할때는 언제고...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명단에 있는 언론사 기자들이 모두 들어간 뒤 북측 직원이 한국 취재진들의 입장도 허용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기다려보길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서둘러 청사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우리 언론뿐 아니라 외국 언론들도 북한 대사관에 들어온 게 대부분 처음이어서인지 취재 외에 서로 기념사진을 찍고 주위를 둘러보는 등 신기해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청사 내부는 대리석으로 잘 단장돼 있었고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계단에는 붉은색 카펫이 깔려 있고, 복도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생전에 활동했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김일성 주석이 마오쩌둥 전 주석, 저우언라이 전 총리와 함께 찍은 사진도 눈에 띄었습니다.

기자회견은 지재룡 주중 북한 대사가 직접 진행했습니다. 처형된 장성택 전 행정부장의 최측근으로 우리 언론에 자주 소개된 바로 그 대사입니다. 장성택이 숙청됐으니 그의 신변에도 변화가 생기는게 아니냐는 분석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만큼 그가 등장하자 카메라 플래시가 연신 터졌고 취재진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지 대사는 1시간 정도 진행된 기자회견 내내 진지하면서도 시종 여유 있는 모습으로 북한의 최고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가 밝힌 이른바 '중대제안'을 설명했습니다. 지 대사 양 옆으로는 중국어 통역 요원과 영어 통역 요원이 배치돼 순차적으로  통역했습니다. 나름 북한이 이번 기자회견을 위해 꼼꼼히 준비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간 관계를 이유로 질문을 한꺼번에 받고 한꺼번에 대답했습니다.

지 대사는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남북 관계 개선과 북한 핵문제 등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밝혀나갔습니다. 상호 비방을 중지하자는 북측의 '중대제안'을 의식해서인지 남한 정부나 대통령을 향한 거친 표현은 없었습니다. 온화한 비유를 통해 그러나 자신들의 입장은 단호하게 표현했습니다. 

"뚜껑도 열어보지 않고 볼 것이 없다고 좋은 책을 내던진다면 어떻게 되겠냐" 면서 최근 북측의 중대제안을  '위장 평화 공세'라고 평가절하한 남한 정부를 비판했고, 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한 6자회담이 재개되기 위해서는 '북한이 먼저'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는 미국 등의 요구에 대해서는 '조건 없는 재개'와  '동시 행동'을 강조하며 "6자회담이란 쪽배를 우리가 먼저 탔으니 나머지 나라들도 어서 타서 쪽배가 출항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지재룡 주중북한대사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은 사실 신선호 북한 유엔대사가 유엔에서 이미 밝힌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다르다면 북한 대사관측이 한국 언론에까지 이례적으로 취재를 허용한 점 그리고 다소 유화적인 북측의 태도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굳게 닫혀 있던 대사관 문이 이렇게 열리듯 진정으로 새해에는 남북간에도 서로에 대해 닫혀 있는 '신뢰의 문'이 다시 열리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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