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의 사소하게] "당신께 오마주합니다"?

이주형 기자 joolee@sbs.co.kr

작성 2014.02.02 12:21 수정 2017.02.14 18:5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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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남짓 8뉴스 진행을 맡다 보니 뉴스 시간 앞 뒤로 붙는 광고를 눈여겨 보게 됩니다. 몇년 전과 비교해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수입차를 비롯한 자동차 광고가 부쩍 늘었다는 겁니다. (어떤 날에는 'TV광고운행 의뢰서'에 後CM 4개 중 3개가 자동차 광고일 정도입니다)

자동차 구매력이 가장 높은 계층에게 자사 자동차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기에는 지상파 TV뉴스 광고가 가장 적당하다고 광고주 쪽에서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만듦새가 좋아지고 가격도 낮아져 최근 출시 이후 호평받고 있다는 기아차의 2014 K9 광고도 요즘 많이 전파를 탑니다.

굽이굽이 고갯길을 돌아 올라 마침내 산 정상 부근에 다다라 중후한 세단을 세워놓고 정상을 바라보는 한 중년 남자, 그의 얼굴 위로 이런 광고 카피가 떠오릅니다.

"당신께 오마주합니다"

이 광고가 저의 시선을 끌었던 이유는 '오마주'란 단어와 (당신)'께'라는 조사 때문입니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TV광고에서 '오마주'라는 일상적이지 않은 개념을 끌어온 것도 색달랐지만, 보통 우리 말에서는 대개 '~를 오마주하다', '~에 대한 오마주'(hommage to~)라는 식의 용례만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히치콕을 오마주하다", "영원한 젊음 까뜨린느 드뇌브에 대한 오마주".(시네프랑스 2월 프로그램 카피입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오마주'(hommage)란 중세 봉건제에 어원을 둔 프랑스어 명사로서 '경의', '존경'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상적인 의미에서 존경의 뜻으로 쓰인다기 보다는 예술 분야, 특히 영화에서 후배 예술가가 창조적인 업적을 남긴 선배 예술가에 대해 존경을 나타내는 뜻으로 그 선배 예술가의 스타일과 문법 등을 자신의 영화에 일정 부분 본따 반영하는 행위 등을 가리킵니다. (적어도 처음에는 이렇게 쓰이기 시작했던 말이 요즘에는 다방면의 분야로 점점 퍼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미션 임파서블'(1996)을 연출했던 할리우드의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드레스드 투 킬'(1980)에서 히치콕 감독의 유명한 '사이코'(1960) 샤워실 살인 장면을, '언터쳐블'(1987)에서는 에이젠슈타인 감독의 '전함 포템킨'(1925) 오뎃사의 계단 씬을 오마주한 것 등이죠. 아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이 많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도 자신이 연출한 많은 영화에서 오우삼 감독, 이소룡 등에 대한 오마주 장면을 포함시켰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보통 "타란티노가 오우삼의 "'첩혈쌍웅'을 오마주했다", "타란티노가 이소룡에 대한 오마주로 노란색 츄리닝을 여 주인공인 우마 서먼에게 입혔다"는 식으로 표현해왔습니다. 그런데 K9 광고에서는 "당신께 오마주합니다"라고하니 아무래도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겁니다.

만일 단순히 '오마주=존경'이라는 뜻으로 썼다고 하면 "당신께 존경합니다"란 말이 되니 부자연스럽습니다. 그렇지 않고 누군가의 스타일을 본 따 존경의 표시를 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뜻으로 썼다면 "당신을 오마주합니다" 또는 "K9은 당신에 대한 오마주입니다"라는 식으로 써야하는 것 아닐까란 생각이 드는거죠.

덧붙여서 저는 그저 조사 하나쯤 맞고 틀리고하는 문제를 넘어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래 '오마주'란 것이 상대를 잘 알아 그 사람만의 스타일, 문체, 성취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그 사람 고유의 스타일을 창조적으로 또는 모방해서 따라하는 것인데, 도대체 K9은 구매자에 대해 얼마나 잘 알기에 구매자를 '오마주'할 수 있을까 하는 겁니다.

K9은, 한 때 차를 사고 싶다는 사람의 성취와 사회적 지위 등등을 가려서 판 적이 있다(BMW로 넘어간 지금은 아니랍니다)는 롤스로이스가 아닙니다. '포디즘'(Fordism)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몰개성적 현대적 대량 생산의 가장 대표적인 산물인 자동차가 어떻게 한 사람도 똑같지 않은 개별 구매자에 대해 '오마주'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K9 광고는 "당신께 오마주합니다"란 광고 카피에 앞서서 '승진, 안정, 리더 : 오늘을 만든 시간들'이라는 '두루뭉술한' 카피로 (오마주의) 조건이랄까, 배경이랄까 아무튼 자신들이 왜 구매자를 오마주하는지 밝힙니다. 그러나 제 소견으로는 그 사람이 왜 승진했는지, 어떻게, 어떤 리더가 됐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전제되지 않은 오마주란 그저 'K9을 살 수 있는 재력 또는 화폐의 보유'에 대한 오마주라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오마주를 받을 만한 그 사람만의 스타일을 차에 반영해야 진정한 오마주인거지, '승진, 안정, 리더' 이렇게만 말해놓으면 그건 그냥 "K9을 살 수 있는 화폐에 오마주합니다"란 뜻에 다름아니지 않을까요. 뭔가 트렌디해보이고 있어 보이는 '오마주'란 외래어의 후광에 기댄.

이쯤에서 저는 이런 추측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이 광고 카피는 아마도 당신을 오마주하고 싶어도 도무지 뭘 오마주해야할 지는 모르겠고(카피라이터가 이걸 어떻게 알겠습니까만) 고객에 대한 '묻지마 존경심'은 표시해야하는 고민에서 온 건 아닐까…. 더불어 이 광고를 보면서 무엇보다도 '우선 출세하고 화폐를 많이 보유해야(비싼 차가 아니라) 오마주를 받을 수 있겠구나' 하고 사람들이 무심코 생각하도록 결과적으로 유도하는 부작용은 혹시 없을까 하는 기우를 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광고를 그렇게까지 복잡하게 생각하면서 보지 않을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