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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다보스포럼은 '성'(城)이었다…세계를 움직이는 네트워크

2014년이 남긴 한계와 미래

[월드리포트] 다보스포럼은 '성'(城)이었다…세계를 움직이는 네트워크
다보스포럼은 '성(城, castle)'이었습니다. 외형적으로 그랬습니다. 다보스는 해발 1500m가 넘는 높은 곳에 있습니다. 진입로는 꼬불꼬불 산길인데다 왕복 2차로로 좁았습니다. 고갯길에서는 군인과 경찰이 검문검색을 실시했습니다. 시내로 접어들면 산자락 아래 옹기종기 자리잡은 마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성벽만 없었을 뿐 요새나 다름없어서 포근한 느낌마저 줬습니다.

포럼 기간, 닷새를 지켜보면서 이런 상상이 떠올랐습니다. 중세시대, 군주가 각 지방 영주들을 성으로 초대했습니다. 군주는 영주들을 초대해 좋은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대신 충성과 세금 등을 요구했습니다. 필요하다면 영지에 대한 분할선도 새로 정했을 것입니다. 군주는 영주의 능력이나 활용도에 따라서 연회장과 응접실에 차등을 둬 자부심을 안겨주기도 하고, 낙심하게 만들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수직적 관계이면서 동시에 계약 관계였습니다.

수백 년이 흐른 지금, 다보스포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군주 자리에는 다보스포럼을 주관하는 슈밥 회장이 앉아 있습니다. 조직자(Organizer)이지만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 다보스포럼도 없었을 것이란 말처럼 포럼 주제를 정하고 초대 손님을 끌어오는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영주는 자기 돈을 내고 세계에서 모여든 파워 엘리트들입니다. 군주가 내놓던 술과 음식은 포럼 기간 250개가 넘는 공부 주제로 바뀌었습니다. 대신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참가자들에게 공짜 식사를 제공하기도 했고, 밤에는 곳곳에서 파티를 열었습니다. 군주-영주간 수직적 인간 관계는 엘리트간 수평적 네트워킹으로 바뀌었지만 본질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포럼에 참가한 리더들은 상대방의 영토(사업)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합종연횡해야 할지를 포럼 내내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웃는 낯으로 말이죠.

다보스는 산과 눈에 갇힌 작은 동네여서, 참가자들은 등산화를 신고 걸어 다니거나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며 가며 길거리에서 처음 본 사람들끼리도 스스럼없이 명함을 교환하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국적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지만, 국경을 넘어 협력하고 경쟁할 거리를 찾는 사냥꾼 같기도 했습니다. 역시 웃으면서요. 세계를 지배하는 자들과 그들만의 성이라면 중세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세계를 움직이는 강력한 네트워크, 허브라면 현대적인 비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보스까지 가는 길이 멀고 불편해도 그 나라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몰려 드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그런 다보스포럼이 올해 44번째 행사를 마무리했습니다. 2500여명이 참가해 흥행에는 역시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주제였던 '세계의 재편'은 해법이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졌던 문제의식이 흐릿해졌고, 새로운 화두를 꺼내는데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2012년에도 '거대한 전환'이란 주제로 올해와 비슷한 논의가 있었고, 이번 포럼을 포함해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논의에 큰 진전이 있었다는 평가는 없었습니다. 다보스포럼이 갖고 있는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거대담론은 있는데 미세조정에 필요한 대안적 논의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거대담론, 화두, 키워드 이런 말들은 역사적 전환기, 격변기에는 유효한 비전이 될 수 있지만, 금융위기 이후 길게는 6년을 끌어온 자본주의 위기, 경기 침체 국면에서는 너무 자주 들어서 '그 밥에 그 나물' 같았습니다.

다보스포럼의 공식 명칭이 세계경제포럼(WEF)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포럼은 경제 문제를 주로 논의하는 자리인데 올해는 정치적 이슈가 더 관심을 끌었습니다. 주최측의 의도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그랬습니다. 개막 전에는 스위스의 다른 도시 몽트뢰에서 열린 시리아 평화회담이 주요 관심사였습니다. 슈밥 회장도 시리아와 이란 문제가 다보스포럼의 이슈가 될 거라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개막 후에는 포럼에 참석한 아베 일본 총리의 '중-일 군사적 충돌 가능성' 발언이 가장 뜨거운 이슈였습니다. 아베 총리는 현재 중국과 일본의 관계가 1차 세계 대전 직전 영국-독일과 유사하다고 말해, 1차 세계 대전에 대해 가슴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서구 언론인들에게 큰 충격을 줬습니다.

망언임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는 중국의 지속적인 군비 증강과 호전성을 알리는데도 어느 정도 성공했습니다. 경제포럼이지만 정치 선전의 장으로도 충분히 이용가치가 있다는 걸 증명한 셈입니다. 포럼의 주최측과 각국 정치 지도자들은 이를 놓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정치가 자연스럽게 포럼의 한 줄기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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