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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누가 '넛잡'을 미국으로 이끌어줬나?

[취재파일] 누가 '넛잡'을 미국으로 이끌어줬나?
한국 애니메이션 업체가 기획 제작한 3D 애니메이션 '넛잡(Nut Job)'이 지난 17일 미국 3,427개 극장에서 개봉했습니다. 많은 언론들이 '사상 최대 개봉'이라고 기사를 썼죠. 지난 24일부터는 상영관이 45곳 더 늘어나 3,472곳에서 상영 중입니다. 미국 내 전체 영화관 수는 5,600여개입니다. 통상 2,000개 이상 개봉하면 미국 전역 개봉(national-wide release)이라고 합니다. 3,472개는 규모가 매우 큰 것이죠. 극장을 많이 확보한 만큼 흥행수익도 좋습니다. 지난 17일-26일까지 4,006만 달러의 수익을 올려 2007년 심형래 감독의 '디워' 1,098만 달러 수익을 넘어섰습니다.
미국 애니메이션2
  넛잡의 첫 주말 성적은 1,942만 달러였습니다. 위 표를 살펴보면 '스머프'를 제외하고 제일 좋은 성적이군요. 지난해 3,802개 극장에서 개봉했던 '터보'의 첫 주말 성적 2,121만 달러(터보의 총수익은 8,301만 달러)와 비슷합니다. 넛잡이 최종적으로 어느 정도 수익을 올릴지 궁금하네요.

  그런데, 과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넛잡 제작사는 자본금 120억원 안팎의 중소기업입니다. 영업이익은 2010년 39억, 2011년 40억, 2012년에는 -51억원의 적자까지 봤습니다. 이런 회사가 순제작비 4,200만 달러(450억원 안팎)의 '넛잡'을 제작했다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합니다. 미국 내 마케팅배급(P&A) 비용 3,400만 달러(360억원 안팎)까지 합치면 우리 돈으로 거의 800억원대 프로젝트입니다. CJ E&M이 투자배급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의 경우 순제작비 4,000만 달러에 국내외 P&A비용으로 150억원 안팎을 사용했죠. 미국 진출은 돈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넛잡의 미국 진출을 도운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3D 모니터

  넛잡 제작사는 2000년대 중후반까지 특수 3D모니터(위 사진 참고)를 개발 생산했습니다. 이 회사의 모니터는 미국 국토안보부 등 주요 거래처에 수출됐죠. 그런데, 2007년초 뜻밖에 캐나다의 유명 애니메이션 감독인 '앤드류 나이트'(Andrew D. Knight/아래 사진)가 이 모니터를 보고 접촉을 해온 겁니다. 앤드류 나이트는 1997년 미국 디즈니에서 '미녀와 야수'를 감독했던 북미 애니메이션 업계의 거장입니다.
앤드류 나이트

   그는 "북미에 3D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업체들이 많은데, 너희 3D 모니터에 관심이 많다. 내게 북미 사업권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캐나다로 건너간 한국 직원들은 그 때 3D 콘텐츠 시장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 이 회사의 모니터는 3D영화 아바타 제작에 사용됐습니다.) 회사가 처음 손을 댄 작품은 앤드류 나이츠가 제작 중이던 3D TV애니메이션 '볼츠 앤 블립(Bolts & Blip/아래 그림)'입니다.
볼츠 앤 블립

  하지만, 2008년 앤드류 나이트가 뇌출혈로 갑자기 사망하면서 위기가 찾아옵니다. 회사는 포기하지 않고, 작품을 완성했고, 2009년부터 캐나다, 프랑스, 호주, 미국 등에 팔리면서 숨통이 트입니다. 애니메이션 사업, 특히 TV시리즈의 특징은 한 번 만들어 놓으면 수 년동안 전세계 곳곳에서 방영된다는 겁니다. (뽀로로도 2004년 처음 한국과 프랑스에서 방영됐는데, 지금도 방영 중이죠.)
안홍주

  2007년 회사에 합류한 '안홍주'(위 사진) 고문의 역할도 컸습니다. 안 고문은 월트디즈니코리아 이사와 KT 미디어콘텐츠 상무를 거친 콘텐츠 유통 전문가입니다. 안 고문은 '볼츠 앤 블립'에 이어 '넛잡'의 미국 진출을 위해 자신의 미국 내 인맥을 풀동원합니다. 그리고, 어렵게 할리우드 유명 스튜디오의 임원과 접촉에 성공합니다. 또, 그 사람이 다른 할리우드 인맥을 연결시켜주는 상황이 이어집니다. 결국 미국 주요 배급사 관계자들이 "작품을 한 번 가져와보라"는 연락을 해오게 됩니다. 다른 한국 콘텐츠 업체들이 프랑스 칸 미프콤(MIPCOM/영상콘텐츠박람회)나 아메리칸 필름 마켓(AFM) 등에 출품해 배급 업체를 섭외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입니다. 직접 할리우드의 인맥을 뚫은 겁니다. (뽀로로의 경우 2003년 MIPCOM에 사활을 걸었죠. 프랑스어 동시통역사 출신을 임원으로 영입해 전력을 기울인 결과 프랑스 최대 방송사 TF1과 방영 계약을 맺습니다. 이후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됩니다.)

   넛잡 제작사는 할리우드 배급사 몇 곳에 개별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습니다. 이어 지난해 4월 미국 내 배급사로 '오픈로드(Open Road)'를 선정합니다. 2011년 설립된 오픈로드는 미국 극장체인 1위 리갈(Regal)과 2위 AMC가 기존 배급사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만든 배급사입니다. 톰 오텐버그 오픈로드 회장(아래 사진)은 "처음 '넛잡'을 봤을 때는 제작 도중이었는데도, 흥행 성공을 직감했다"고 밝혔습니다.
오픈로드 회장

   오텐버그 회장은 '넛잡'의 미국 내 마케팅 배급(P&A) 예산 3,000만 달러 가운데, 2,300만 달러를 직접 투자하겠다고 나섭니다. 대신 P&A 투자 비용은 10% 미만의 이자를 붙여 관람수익 중 가장 먼저 회수(선리쿱/先recoup)해간다는 조건입니다. 모자란 P&A 비용 700만 달러는 한국 수출입은행에서 지원해줬습니다. 미국 배급사가 이 정도 규모의 배급 비용을 먼저 투자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죠. 넛잡 콘텐츠가 그만큼 좋았던 셈입니다. 오픈로드 측은 수 차례의 내부 시사를 통해 P&A 투자 규모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개인적인 평점은 ★★☆ 수준인데, 제가 미국 시사회에서 만난 미국 아이들의 반응은 훨씬 좋더군요.)

  북미 흥행 성적이 6,000만 달러를 돌파하면 넛잡 제작사와 오픈로드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기게 됩니다. 넛잡 제작사만 따진다면, 미국 내 DVD 판매 등을 고려할 때 3,000만 달러만 넘겨도 오픈로드의 P&A비용을 선리쿱해주고 수익을 낼 전망입니다.

  넛잡 제작사는 내년 우주 속 원숭이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스파크'와 2016년 '넛잡2' 개봉을 준비 중입니다. 여기에 할리우드의 인맥들이 다른 비즈니스도 제안해왔습디다. 현재 할리우드 관계자들과 함께 '걸프 스트림 픽쳐스(Gulfstream Pictures)'라는 회사를 설립했는데요. 이 회사는 워너브라더스 본사의 애니메이션 사업 일부를 따내 또 다른 성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넛잡 한 편이 전체 회사의 위상을 바꿔놓은 셈이죠.

  물론 콘텐츠 시장은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로 순간순간 바뀌는 곳입니다. 넛잡 제작사가 계속 성공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넛잡의 미국 진출 과정이 정답도 아닙니다. 오히려 좀 독특한 모델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을 하나하나 분석할수록 후발 콘텐츠 사업자들은 더욱 쉽게 미국에 진출할 수 있겠죠. 넛잡의 뒤를 이어 더 많은 한국 영화와 콘텐츠들이 미국 시장에서 인정을 받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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