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마지막이 아름다운 인생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추모하며

[취재파일] 마지막이 아름다운 인생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어떤 이는 초년의 입신양명 신화로, 어떤 이는 중장년의 성공으로, 또 어떤 이는 말년의 성취로 그 이름을 후세에 전한다.  아름답고 향기가 널리 퍼지기는 말년의 성공이 남긴 이름이 으뜸일 것이다. 지난주 향년 81세로 세상을 떠난 대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젊어서도 유명한 음악가였지만, 남들이 전성기가 끝났다고 생각한 이후에 더 많은 업적을 남겼다.

아바도는 지휘자로서는 젊은 나이인 56세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장이 된다. 역시 81세로 세상을 뜬 제왕적 거장 카랴얀의 후임이었다.  전임자가 사상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거장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젊은 천재였다지만 아바도가 느끼는 압박감은 숨쉬기도 어려울 정도였을 터였다.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을 여러가지로 바꾸어 나갔다.  말년의 카라얀이 쌓아올린 황금빛 번쩍이고 기름기가 자르르한 사운드는 보다 담백하고 투명하고 기민한 사운드로 변화시켰다. 우리가 지금 들을 수 있는 베를린필의 사운드는 아바도가 기초를 잡아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전임자가 눈길을 주지 않았던 현대 작곡가의 작품도 레퍼토리에 과감하게 집어넣었다.  “음악의 역사는 푸치니에서 끝나지 않는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장으로 선임된 뒤 아바도는 이렇게 선언했다.

그는 온화한 성품과 수평적 리더십으로 변화의 과정을 이끌어 나갔다. 지금에야 아바도가 음악 무림의 천하제일인처럼 신격화되어 추앙받지만, 당시에는 그렇지만도 않았다.  이탈리아 사람이 나타나서 독일의 전통을 허무느냐는 식의 비판과 험구를 적잖게 들어야 했다. 아무리 소신있는 천재라 해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상임지휘자가 된 지 11년만에 위암을 진단받고, 베를린필의 포디움을 내려오게 된다.

그런데, 그 이후 아바도의 인생이 그 이전보다 더욱 찬란한 것이 될 줄, 당시에 누가 알았을까.

2000년 위암 투병 이후의 아바도에 대해, 그의 후임으로 베를린필의 상임이 된 사이먼 래틀은 며칠전 이런 추도사를 페이스북에 썼다.

“(전략) Ten years ago we all wondered whether he would survive the illness which has now claimed him, but instead, he, and we as musicians and public, could enjoy an extraordinary Indian Summer, in which all the facets of his art came together in an unforgettable way.

10년전, 우리는 과연 아바도가 병을 이겨낼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결국 그 병에 쓰러졌지만, 그와 우리들 모두는 보기드문 ‘인디안 서머’를 즐길 수 있었다. 이 '인디안 서머' 동안에 아바도 예술의 모든 면면이 잊지 못할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 ‘인디안 서머’=이미 가을로 접어들었는데, 갑자기 여름처럼 더운 날씨가 다시 찾아오는 것)

He said to me a few years ago, “Simon, my illness was terrible, but the results have not been all bad: I feel that somehow I hear from the inside of my body, as if the loss of my stomach gave me internal ears. I cannot express how wonderful that feels. And I still feel that music saved my life in that time!”

아바도는 몇년 전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사이먼, 내 병은 끔찍해. 하지만 결과는 그리 나쁘기만 한 것만은 아니었어. 나는 내 몸 안에서 음악을 듣는다고 느껴. 마치 위를 들어낸 것이 내 몸 속에 귀를 달아주기라도 한 듯이 말이야. 그 느낌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소. 그리고 지금도 나는, 음악이 그때 내 목숨을 구해주었다고 생각해!”

위암을 이겨낸 뒤 그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 모짜르트 등 새로운 악단을 창단했다. “아바도를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한여름 스위스 루체른 호반은 전세계 음악 애호가들이 순례를 가는 성지가 되었다. 그는 다른 악단들과도 많은 명연주 명음반을 남겼고,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명성이 쌓여갔다.

후진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구스타브 말러 유겐트 오케스트라 등, 젊은이들로 구성된 악단들의 지휘에도 공을 들였다. 베네주엘라 출신의 젊은 스타 지휘자 두다멜도 아바도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두다멜은 사이먼 래틀 이후 베를린필을 맡게 될 가능성까지도 거론된다. 신인 시절의 두다멜은 지휘 동작 자체가 아바도와 상당부분 흡사할 정도였다. 아바도는 빈민층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예술가를 길러내고 사회도 변화시키는 ‘엘 시스테마’ 프로그램의 위대한 후원자였다.




<사진: 아바도와 두다멜>

베를린필을 사임한 뒤 아바도의 삶은, 그의 천재성을 보다 널리,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의 삶과 예술이 남긴 향기가 전세계의 음악애호가들에게 더욱 큰 감동을 주는 것 아닐까 싶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